[하도겸의 맑고 밝은 이야기] 70 - 상실에 대하여

상실에 대하여

어느 순간인가 나도 모르게 나를 잃었다.
동시에 잃은 게 많다.
겸손함도 잃었고 사람에 대한 사랑도 잃었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많은 것을 잃거나 잊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가장 싫어하는 일들을 한 사람은 바로 나였고
남을 가장한 나에 대한 성급한 판단과 허위적인 날선 공격으로 인해
나는 더욱 나를 잃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건가?
어디에 서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 스스로를 보고 있는가?

그렇게 나는 나를 잃은 생활에 낯설지 않음을 느끼며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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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며(사진=하도겸)

상실에 대하여 2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만나고 있다.
어떤 때는 '밀당'을 하지도 않고 그냥 만나고 있다.
어떤 때는 악동같이 괴롭히면서도 죄책감이 없다.
다만 그렇게 다가가고 또 멀어짐을 지켜보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거꾸로 그러고 살았던 것 같다.
모든 게 인과응보라고 하기는 믿겨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마치 '전전생', 아니 숙세부터 지금까지 전해오는
나의 '원죄'와 같은 '악업'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하다.
난 과거에 산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전생들에 살고 있었다.

오늘을 살고 싶다.
그렇게 준비 없이 마구 사는 것이 아니라
일기일회하듯 정말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나 보다.
이런 이야기할 처지도 아니고 자격도 없다.
오늘도 아무런 준비 없이 또 사람들을 만난다.

언제나 쳇바퀴 돌듯 같은 고민과 게으름 속에 서 있는 내가 보이곤 한다.
난 상실을 말할 자격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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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에서의 차 한 잔(사진=하도겸)

상실에 대하여 3

사는 게 힘들다.
아니 너무 힘들다.

그러다 누군가 아니 스스로가 묻기도 한다.
"그렇게 힘드니?"
답은 언제나 "아니, 그렇게까진 힘들 건 아냐"였다.

삶은 고통스럽지만
나름의 묘한 매력이 있다.
가끔 행복감을 만끽하고 싶을 때
나는 사는 게 행복하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땐 너무 행복하다.
모든 게 내 손 안에 아니 내 주변에 모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는 완벽한 순간에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순간에 완벽해진다고 하는 게 그런 뜻인가 보다.

난 오늘도 잃어버린 행복을 찾고 있다.
정말 난 행복을 상실한 걸까?
아니라면 내가 정말 잃거나 잊고 사는 것은 뭘까?
항상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상실에 대하여 4
부모보다 빨리 죽는 아이가 참 불쌍하다.
살아남은 부모도 많이 불쌍하다.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한 분이 가시고
또 한 분이 가시고.
부모님을 잃는다는 것을
옛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진다고 했다.

맞다.
참으로 정확한 표현이다.
언젠가부터 '죽음'이 남에 대한 표현이 아님을 절감한다.
나도 언젠가 아니 어쩌면 얼마 안가 죽을지도 모른다.

먼저 가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먼저 가는 '불효'는 안 하게 해주셔서.

가끔씩 정말 어쩌다 한 번
부모님이 보고 싶다.
보고 싶긴 한데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불효'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볼 수 없어서 행복하기도 하다.

억지스럽지만,
항상 고통스러운 것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