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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의식에서 오계준수 서약 뺀 한국불교

진흙속의연꽃 | | 2016-08-31 (수) 11:15

[‘진흙속의연꽃’의 불교이야기] 93- “살아 있는 한 진실을 말하리라” 거짓말에 대해
“수행자가 깨달음 사칭하면 대망어죄로 간주해 승단에서 추방하는 것이 율장 가르침”

 
 
직원이 몇 명 되냐고
 
사람들은 거짓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하며 산다. 어떤 이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든 악의 찬 거짓말이든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모두 거짓말일 뿐이다.
 
거짓말을 종종할 때가 있다. 혼자 일하다 보니 가끔 직원이 몇 명 되느냐고 문의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직원이 많으면 회사가 큰 것이고, 큰 회사이면 믿을 만하기 때문이라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직원을 많이 두고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나 홀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인사업자도 다수이다.
 
일인사업자에게 직원이 몇 명이 되느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혼자 일한다고 정직하게 대답했었다. 그랬더니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몇 번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생각을 바꾸었다. 문의 전화가 오면 두 명 내지 세 명이라 말하리라 한 것이다. 마침내 문의 전화가 왔을 때 두 명 또는 세 명이서 일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오지 않았다. 거짓말을 해서 부풀려 말해도 연락이 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나 홀로 있음에도 두 세 명이서 있다고 한 것에 대하여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예 ‘없는 것을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에 해당되지만 조금 있는 것에 대하여 부풀려 말하는 것은 장사나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장사꾼이 “이 물건 밑지고 팔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얀 거짓말이라 하는데

 
일상에서 수 없는 거짓말을 목격한다. 학생이 지각했을 때 “교통이 막혀서 늦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 거짓말이다. 술을 밤새도록 마신 직장인이 다음날 지각했을 때 역시 교통체증을 핑계 대며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거짓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대로 믿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속아 줄 수도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달랠 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친구나 연인에게 약속시간 늦은 것에 대한 변명을 할 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 처럼 악의가 없는 선의의 거짓말에 대하여 사람들은 ‘하얀 거짓말’이라 한다.
 
거짓말은 경전에서도 볼 수 있다. 법화경을 보면 ‘화택의 비유(火宅喩)’가 있다. 억만장자의 집에 불이 났는데 아이들이 불난 줄도 모르고 장남감에 눈이 팔려 있다. 장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거짓말을 했다. 장자는 “너희들이 항상 원하던 양(羊)이 끄는 수레, 사슴(鹿)이 끄는 수레, 소(牛)가 끄는 수레가 문밖에 있으니 빨리 밖으로 나와라.”라고 소리친 것이다. 이 말에 솔깃하여 아이들은 불구덩이 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들은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약속한 양, 사슴, 소가 끄는 수레보다 더 크고 화려한 백우의 수레를 전부 나누어 주었다. 이에 아이들이 만족했다는 것이 화택유이다.
 
화택유를 보면 장자가 거짓말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법화경에서는 이를 거짓말이라기보다 방편으로 설명한다. 법화경에서는 성문, 연각, 보살에 대하여 ‘삼승’이라 하여 이를 양, 사슴, 소가 끄는 수레로 비유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승이라 하여 흰 소가 끄는 수레로 비유했다. 화택에 빠져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방편으로서 삼승을 설한 것이고, 사실은 일승을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삼승은 방편이고 일불승만이 진실이 된다.
 
일반적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설명이라 한다. 근기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다 보니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때로 속임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진리를 알려 주기 위한 방법이라 본다면 방편도 일종의 하얀 거짓말이 될 수 있다.

 



수행자는 있는 그대로 말할 뿐
 
사람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왜 그럴까?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깨닫지 못한 자의 모든 말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깨달은 자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금강경에서 “如來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狂語者 不異語者”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깨달은 자는 진실만을 말하며 있는 그대로 말함을 의미한다. 이는 일반사람들이 하는 말과 성자들이 하는 말이 다름을 말한다.
 
일반사람들은 탐진치로 살아간다. 그러나 수행자들은 무탐, 무진, 무치로 살아간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역류도를 추구한다. 말을 함에 있어서도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하지만 수행자들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세상 사람들은 구업으로 인하여 어떤 과보를 받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마구 뱉어 내지만, 수행자들은 행위의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말한다. 따라서 수행자에게 있어서 거짓말은 있을 수 없다.
 
수행자는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다. 이는 부처님이 “바히야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볼 때는 보일 뿐이며 들을 때는 들릴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될 뿐이다. 바히야여,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Ud1.10) 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하얀 거짓말은 있을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선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설령 그것이 방편일지라도 출세간적 관점에서 본다면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다.
 
욕망과 성냄과 사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거짓말은 일상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거짓말하는 것에 속한다. 점심 한 끼 사기로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면 거짓말한 것이다. 남을 속이는 행위도 역시 거짓말이다. 설령 그것이 선의이든 악의이든 거짓말은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주고 만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를 오계로서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법회에서 왜 오계서약을 하지 않을까?
 
한국불교에서 법회 할 때 법회순서가 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은 빠지지 않으나 오계를 독송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반면 테라와다 예불의식에서는 오계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아마 오계독송여부가 한국불교 예불의식과 빠알리 예불의식과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일 것이다.
 
빠알리 예불의식에서는 반드시 빠알리어로 오계준수를 서약하는 독송을 한다. 거짓말과 관련하여 “Musavada veramani sikkhapadam samadiyami”라 하여 “거짓말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라 한다. 이외에도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계,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계, 삿된 음행하지 않는 계,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물이나 술을 먹지 않는 계에 대하여 서약한다. 그러나 웬일인지 한국불교에서 법회 할 때 오계서약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한국불교에서 오계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불자들은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불자가 되고 오계를 준수함으로써 불자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계행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스님들이 계를 지키지 않아 종종 세간에 대서특필되기도 하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계행을 지키지 않은 스님들에 대한 보도가 나왔을 때 불자로서 사는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 모두가 법회의식에서 오계가 빠진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한국불교 법회의식에서는 변형된 삼귀의를 낭송하지만 오계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스님들이나 불자들은 오계를 예사로 여기는 것 같다. 오계에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입만 열면 거짓말 한다면 불자로 볼 수 있을까? 변형된 삼귀의와 오계 없는 법회의식을 한국불교에서 볼 수 있다.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은?
 
거짓말에 대하여 불교에만 오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 십계명을 보면 아홉 번째 항목에 바이블 구절을 근거로 “거짓증언을 하지 마라”라고 되어 있다. 천주교 역시 여덟 번째 항목에 “거짓증언을 하지 마라”라고 되어 있다. 마치 법정 증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거짓말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라 한다.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거짓말 하는 것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고” (M9) 라고 했다. 또 거짓말 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착하고 건전한 것이라 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떠나고, 진실을 말하고, 신뢰할 만하고, 의지할 만하고, 세상을 속이지 않습니다.” (M27) 라 했다.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은 반대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된다. 진실만을 말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경전에서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법정에 불려가거나 모임에 나아가거나 친지 가운데 있거나 조합에 참여하거나 왕족 가운데 있거나 증인으로서 질문을 받아, ‘오, 이 사람아,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하라.’라고 하면, 그는 모르면서도 ‘나는 안다.’고 대답하고, 알면서도 ‘나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보지 못하면서도 ‘나는 본다.’고 말하며, 보면서도 ‘나는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을 위하여, 혹은 타인을 위하여, 혹은 뭔가 이득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말을 합니다.” (M41)

 
 
종편방송에서 들은 말이다. 어느 변호사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거짓말을 하는 곳이 법정이라 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들었으면서도 듣지 않았다 말하고, 알면서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라 한다.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그는 모르면서도 ‘나는 안다.’고 대답하고, 알면서도 ‘나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대화하다 보면 드러나는 거짓말
 
거짓말 하는 자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을까?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그 사람과 함께 대화 하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확인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사람은 사람과 함께 대화를 통해 왕래하면서 이와 같이 ‘이 존자는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가 다르고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가 다르고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가 다르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가 다르다. 이 존자와 예전에 나눈 대화는 나중에 나눈 대화와 일치 하지 않는다. 이 존자의 대화는 청정하지 못하고, 이 존자는 청정하지 못한 대화를 나눈다.’라고 안다.” (A4.192)


이 말의 요지는 ‘거짓말’에 대한 것이다. 이 사람에 대한 한말 다르고 저 사람에 대한 한말 다르다면 일관성이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것이다. 똑 같은 말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한다면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경에서는 청정하지 못한 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대화하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한입으로 여러 말을 하다 보니 자신이 한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깨달음사칭에 대하여
 
오계에 불망어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계목이다. 설령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법정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왜 거짓말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보는 것일까? 이는 율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재가자와 달리 출가자에게 있어서 거짓말은 상상도 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이냐 하면 목이 달아날 정도로 큰 죄를 짓는 것이라 했다.
                                                                                                

불교에 바라이죄가 있다. 이를 승단추방죄라 한다. 일반적으로 오계를 근간으로 한다. 그런데 오계의 순서와 일치 하지 않는다. 오계에서 불음주항목은 승단추방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음주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음주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불선업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십악행에서도 빠져 있다. 오계를 근간으로 한 승단추방죄의 항목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1)성적교섭, 2)주지 않은 것을 빼앗음, 3)인체의 살해, 4)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 에 대한 것이다. 모두 네 가지 항목이다. 여기서 성적교섭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음행하는 것이 청정한 삶에 가장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율장의 2/3 가량은 음행에 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도둑질에 대한 것이고, 이어서 살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에 대한 것이다.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는 거짓말에 대한 것이다. 율장에서는 깨달음을 사칭하는 것이라 설명되어 있다. 출가한 수행자들에게 깨달음사칭은 대망어죄라 하여 승단추방죄라는 형식으로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경장에서는 볼 수 없고 오로지 율장에만 언급되어 있는 깨달음 사칭, 즉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인연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자, 우리가 재가자들에게 서로서로 인간을 뛰어넘는 상태를 성취한 것에 대해 이와 같이 ‘저 수행승은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흐름에 든 경지를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한번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거룩한 경지를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세 가지 명지를 성취한 자이고, 저 수행승은 여섯 가지 곧바른 앎을 성취한 자이다.’라고 찬탄을 합시다.”
(Uttarimanussadhammasikhapadā-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에 대한 학습계율, 승단추방죄법 제4조, 율장비구계, 전재성님역)
 

 
기근과 전염병으로 먹을 것을 얻을 수 없게 된 수행승이 한 말이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어지는 말을 보면 “이와 같이 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보시할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한 것에 알 수 있다. 재가자들이 보시하면 탁발음식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안거도 편히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수행승들은 재가자들에게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를 이야기하였다.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음에도 인간을 뛰어넘는 복전에게 보시를 한 것이다. 그 결과 “그 수행승들은 풍모가 나고 감관이 비대해지고 안색이 좋아지고 피부가 윤택해졌다.”라고 묘사 되어 있다. 깨달음을 사칭하는 것은 결국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깨달음을 사칭하는 자들

 
깨달음사칭은 ‘망어’에 해당된다. 그것도 대망어에 해당된다. 목이 달아날 정도로 큰 죄를 짓는 것이 되어 승단추방죄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오늘날 깨달음사칭을 종종 볼 수 있다. 부처님가르침 보다는 초월적이고 신비한 이야기, 그리고 사후세계 위주로 하는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천상과 지옥, 극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보시를 유도한다면 깨달음 사칭이라 볼 수 있다.
 
깨달은 자만이 깨달은 자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깨닫지 못한 일반사람들은 깨달은 자를 알아 볼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깨달음사칭을 하면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부처님은 부처님 눈으로 깨달음 사칭하는 자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안거기간 중에 깨달음을 사칭한 비구들에 대하여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은, ‘나는 빈방에서 고독을 즐긴다.’라고 생각할지라도 인간을 뛰어 넘는 것을 사칭하지 말아야 한다. 수행승으로서 악한 욕망을 가지고 탐욕으로 가득차고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 즉, 선정이라든지 해탈이든지 삼매이든지 성취이든지 길이든지 경지에 이른 것을 사칭한다면, 그는 수행자가 아니고 싸끼야의 아들도 아니다.” (율장대품 제1장 Vin.I.97) 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깨달음을 사칭하는 자들은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했다. 율장에서는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을 가진 자를 사칭하는 자라 했다. 그러나 오늘날 깨달음을 사칭하는 자들은 교주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어느 스님은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를 이야기하며 마치 신흥종교 교주처럼 행세하는 것을 보았다. 법문을 들어보면 ‘인간을 뛰어 넘는 상태’에 대한 말을 하고 있다. 새로운 종단을 만들어 마치 부처님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 가훈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언제든지 거짓말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번 거짓말을 하면 열 가지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면접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 당시 사촌형이 사람을 하나 소개시켜 주었다. 대기업에서 인사팀장을 담당하고 있는 사촌형 친구이었다. 면접에 대비하여 면접요령을 가르쳐 줄 것이라 했다.
 
면접요령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인사담당 팀장을 찾아 갔다. 그러나 전혀 다른 질문을 했다. 집에 가훈이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사실 집에 가훈이 없었다. 만일 면접장에서 “집에 가훈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아마 대부분은 잘 보이기 위하여 “예, 집에 가훈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질문은 틀림없이 “그 가훈내용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볼 것이다. 이럴 때 당황할 것임에 틀림없다.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물러 설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내어 ‘근면’ 이니 ‘성실’ 등의 말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면접관은 “그렇다면 그 가훈은 누가 만들었나요?”라고 계속 물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다.
 
면접관은 면접자에게 가훈이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는지 물을 수 있다. 대부분 여기서 막히고 만다. 없는 말을 만들어 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거짓말은 들통 나게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가훈이 없으면 “가훈 없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면접자는 이런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만일 거짓말하는 자를 뽑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회사에 손해끼칠 자라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거짓말하는 자는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본다면 정직하게 답변하는 것이 면접에서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사촌형의 친구이자 대기업의 인사담당과장은 이렇게 면접에 대한 교육을 시켜 주었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진실을 말하리라”
 
한 가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열 가지 거짓말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기꾼은 사람을 속여 먹기 위해서 여러 가지 거짓말을 준비 한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다 보면 들통 나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신뢰를 잃으면 그가 이전에 행한 일도 모두 의심하게 받게 된다. 그 결과 그를 믿을 수 없게 된다. 한번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혀 버리면 설령 그가 진실을 얘기해도 믿지 않는다. 마치 양치기소년의 거짓말 같은 것이다.
 
어떤 이는 신용을 잃은 자에 대하여 걸어 다니는 시체와 같다고 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어서 움직이긴 하지만 마치 유령 같고 좀비 같은 것이다. 사실상 죽은 자나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정직하게 말하면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믿음을 주게 된다.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석천의 일곱 가지 서원 중의 하나를 보면 “나는 살아 있는 한 진실을 말하리라.(Yāvajīvaṃ saccavāco assaṃ)”(S11.12) 라고 되어 있다. 이를 바꾸어 보면 “나는 살아 있는 한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가 된다. 살아 있는 한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든, 방편의 거짓말이든 어떤 거짓말이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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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경전에서인용 2016-08-31 13:10:43
답변 삭제  
"7.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 불자들아, 만일 너희가 자기를 칭찬하지 말고, 남을 비방하지 말며,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자기를 칭찬하도록 하지 말며, 남을 비방하는 원인이나, 비방하는 반연이나, 비방하는 업도
짓지 말아야 한다.

보살은 일체중생을 대신하여 남의 비방을 받고, 나쁜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좋은 일은 남에
게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자기의 공덕을 드러내고, 남의 착한 일을 숨겨, 다른 사
람으로 하여금 비방을 받게 하면 보살의 큰 죄가 된다."  범망경(梵網經)열 가지 큰 계율  중에서

'18. 아는 것 없이 스승이 되지 말라.

▣ 불자들아, 너희는 마땅히 열두 가지 경전을 배워야 하며, 계를 외우는 사람은 날마다 여
섯 번을 때맞추어 보살계를 외어야 하고, 그 뜻과 부처님의 성품까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보살이 한 구절의 경과 한 마디의 게송조차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계율의 인연도 알
지 못하면서 제가 아는 척하는 것은 자기와 남을 속이는 것이다. 일체법(一切法) 가운데 그
하나도 모르면서 남의 스승이 되어 계를 일러주는 것은 가벼운 죄가 된다.'범망경(梵網經)48가지 가벼운 계율 중에서.....
두문장의모순논리가안보이는지 2016-08-31 13:44:59
답변  
1.그럼에도 오늘날 깨달음사칭을 종종 볼 수 있다.

2.깨달은 자만이 깨달은 자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깨닫지 못한 일반사람들은 깨달은 자를 알아 볼 수 없다.
머가보인데 2016-08-31 16:09:53
답변 삭제  
<<두문장의모순논리가안보이는지/ [뎃글 주제 아이디]>>
⦁(깨달음사칭을 종종 볼 수 있다.)=(깨달은 자만이 깨달은 자를 알 수 있다고 했다.)=(깨달은 자)
<-- 모순 논리가 아니라 그냥 국어네요.

⦁(깨달은 자)≠(깨달은 자의 부정)≠(꽃님이 글 내용)
⦁(깨달은 자)≠(깨달음 사칭 자)

⦁(깨달음 사칭자)=(깨달은 자 아님)=(중생이 알아 볼 수 있음.)
⦁(깨달음사칭을 종종 볼 수 있다.)=(깨달은 자가 아닌 자)=(꽃님이 글)

어디가 모순인가??? 모순으로 인지하는 당신의 국어실력이 이 수준이지...
넘심플하네 2016-08-31 16:25:42
답변  
회사 동료 여직원이 제 딴엔 꾸미고 와서 '나 이뻐요?'라고 물었을 때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안 이뻐요, 못생겼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하나보다. 필자 말대로 솔직하게 말을 해서 동료들간의 팀워크가 무너지고 회사생활 꼬여도 좋다는 것인지.

만일 회사 동료가 아니라 회사의 주거래처 업자일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솔직하게 말을 해서 아마도 거래가 끊어지고 회사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쳐도 필자는 1%의 거짓말도 하지 않아서 만족했는지도 몰라도 회사의 막심한 손해는 누가 보상해 주나? 부처님이 보상해 주나?

나뭇꾼과 사슴 이야기가 있다.
사냥꾼에 쫓긴 사슴을 숨겨준 나뭇꾼은 사냥꾼에게 사슴이 가지도 않은 길로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필자 말대로 하얀 거짓말이며, 방편이며, 선의의 거짓말이다. 만일 필자의 주장대로 어떤 경우에도 나뭇꾼은 본대로 들은 대로 솔직하게 정직하게 말해야만 한다면 사슴을 살릴 방도가 없을 것이다.

자, 나뭇꾼이 독실한? 불자라고 가정해 보자.
1) 사슴을 살리기 위해 사냥꾼을 속이는 거짓말을 했을 경우 '불망어' 계율을 어긴 것이다.
2)불망어 계율을 지키기 위해 사냥꾼에게 본대로, 진실 그대로 사슴의 위치를 알려주게 되면 사슴은 죽게된다. 그렇게 되면 '불살생' 계를 어긴게 된다. 사슴을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사냥꾼으로 하여금 죽임을 당하도록 하였으니 계를 어긴 것이다.

필자에게 물어보자,
이 이야기처럼 두 계율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할 것입니까.
본글대로라면 어떤 선의의 거짓말이나 방편도 있을 수 없다는게 필자의 생각인 것 같은데 사슴은 그냥 나뭇꾼에게 죽어 마땅한가요? 불망어 계율 지키자고 불살생계를 어기는 것이 진정 타당한가요? 생명보다 거짓말 안하는게 더 중요한가요?
사슴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게 맞다면, 본글에서처럼 선의의 거짓말,방편 등은 어떤 경우에도 해서는 안된다는 님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지 않습니까?

필자를 보면 지나치게 단선적인 사고만 하는 경향이 있다.
무상상정신차리게 2016-08-31 21:46:04
답변  
이 글의 비유가 참 웃기는 국어여.

이글을 부처님한테 들이 밀면 머라고 답하실까?
yes까 no까 로 대답하실까?
이건 머 합리주의 공리주의로 가자는거잖아!!!
종교적 도그마가 부처님은 무기인데...

무상상=실론섬  정신차리시게...
수자따 2016-09-01 10:48:55
답변  
무상상님이 맞는말 했구만!
베꼬베꼬여!....이젠 연꽃에 대한 집착을 벗어 버려라!
연꽃이  단순하고 경직된 불교경전해석을 자꾸 되풀이 하는군!
당신이나 정신 차려!
먼상관이나 2016-09-01 23: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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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꼬베꼬=수자타=무상상

원불사랑 꽃님이 블러그 드나들던 그넘이거나
백두산 천지까지 팔아먹던 메뚜기들 아녀??
넘심플하네 2016-09-01 14:04:19
답변  
무상상정신차리게/

나는 무상상이 아니란다.
관리자는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내버려 두는가.
나와 무상상의 아이피 자체가 다른데도...
그럼 2016-09-01 23: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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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사 단현이신가???

그대들이 아이피 믿고 사나?? 피시방인가??? 피시방서 노숙하시나???

속이 들여다보인다...
아니라고는 2016-09-01 23: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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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줄 암서...
누구라고는 밝히질 못하나???

그넘이나 이넘이나 무슨 초상권이 있다고...
아넘이나 가넘이나 상관없다..
사띠 2016-08-31 17:33:43
답변  
연꽃은 더이상 주저리 주저리 말하며 기망하지마라.
'볼떄는 보여질 뿐이며' 는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이 있을 뿐이며'라고 전쟤성 박사가 오역헀다고 밝힌 글을 쓴 적이 있으면서 자신이 무슨 글을 썼는지도 모르며 생각나는 글쓰기 하는 것을 보니 웃음만이 나는구나!
이것도겨드랑이털이고 2016-08-31 21:49:40
답변  
진짜 웃음만 나온다...

나 누군지 다 알것제...
이것도겨드랑이털이고 2016-09-01 12:27:14
답변  
연꽃 신도
불교를 2016-09-01 23:15:19
답변  
합리주의와 공리주의와 편의주의와 아전인수식 국어로 하는

국어신도들...
불교를 2016-09-02 01:36:16
답변  
부끄러운 줄 모르는 편집증을 가진 연꽃 신도
부끄러움은 2016-09-11 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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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도 없으니까 오르는게 당연하고...
그대는 양심과 수치심도 모르는 무개념 무영혼 아닌가!!!
무상상 2016-08-31 17:37:35
답변  
이런 글을 쓴 부류의 사람들을 보고 "메마른 지식"을 가진 자들이라고 합니다.

붓다가 세계 인류에게 추앙받고 존경받는 것은 "그는 비록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인간을 뛰어넘고 신을 뛰어넘은 자 즉 모든 천인들과 중생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입니다." .....
만약에 붓다에게 인간적인 면이 전혀 없었다면 그의 지혜는 아마도 "메마른 지혜" 에 불과하여
일개 철학자나 또는 철학분파의 하나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인간과 신을 뛰어넘은 붓다였지만 그에게는 "자비희사"라는 사무량심이 있었기에 그의 지혜는
메마른 사막과 같은 것이 아니었고 모든 중생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야기한 것이지만 경전은 경전을 보고 이해하는 눈 즉 불혜/경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같은 물(경전)이라도 젖소가 먹으면 젖이 되지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어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

메마른 지식으로 경전을 볼줄 밖에 모르니 이따위 글을 버젓이 인터넷에 올리는 철면피의
모습을 보입니다.
넘심플하네 2016-09-01 01:47:34
답변  
여러사람이 쓴 글처럼 겨드랑이털 그만 뽑아날리고...
정말 메마른지식 대로에다 펴 놓고 그만 말리게...

정말 존 물 마시고 독을 만드는지 우유를 만드는 지 모르는 모양이네
무상상 글이 꿀단지라 생각하나?

<<...같은 물(경전)이라도 젖소가 먹으면 젖이 되지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어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무상상 뎃글 중]>>
<-- 이건 무상상 뎃글 이야기 아닌가!!
      자기의 글은 자기의 말에 포함이 안된다는 법공아유인가?? 이건 대승 막행막식론 아닌가?
경전에 있는 글을 보이는대로 보는게 아니라 그대가 보고싶은대로 보는 모양이지... 

참으로 가방끈이 길어서 염치도 끝이 없네... 가방끈이 긴 사람은 그런가?
젖소타령 그만하시게...
넘심플하네 2016-09-01 11: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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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드랑이 털같은 자야, 왜 남의 닉을 사칭하냐?
가관이군 2016-09-01 14:40:23
답변  
남 닉을 도용을?
넘심플하네 2016-09-01 15:04:40
답변  
남 닉을 도용하는 경우가 발생했는데도 관리자는 그냥 내버려 두네요 ㅠㅠ
닉도용이 욕설댓글보다 더 심한 범죄인데...
겨드랑이털이나 2016-09-01 23: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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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는 존재들이 닉을 전세냈나??
수자따 2016-09-02 10:38:52
답변  
연꽃은 이제는....전도몽상에서 탈피해서 , 단순한 자판두드리고,경전 베끼는 굴신
운동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마음으로 오계부터 지키고, 몸과마음을
청정하게하여, 그때비로서 얻어지는 지혜로서 단하나의 주제라도 일심으로 붙들고
이게 무엇하는 물건인고!하고  통찰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단순한 수박겉핦기식의 경전베끼기를 이젠~ 그만~ 하시고...
글고 화요일마다 명상센타에도 참석하시는걸로 아는데...좋은 결실 ! 맺으시길요!
부단단 노력~ , 결코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불방일만이 이 첩첩산중 칠흙같은
무명에서 벗어나고, 이생에서 전생의 한풀이 하러 왔다는 아름답지못한 이미지를
뱀허물 벗듯이 깔끔하게 벗으시길요!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동감 2016-09-02 15: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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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요
수자따 2016-09-07 10:52:18
답변  
다원씨? 다원씨는 네티즌들도 한결같이 ....당신의 무식한
댓글장난에 질려 버렸습니다.
왜? 이지경까지왔을까?조심스럽게...당신의정신상태는
불교경전공부보다 즉각적인 득단의 조치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폐경기 여성의갱년기증세의 ...조울증에 따른
정신과의사의거친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괜히 불교공부한다는
핑계로 여기서 분란일으키지마시구요....당신딸래미한테 부끄러운짖 이젠그만하시죠! 덕성스럽고, 좋은,그리고 착한엄마가
되시길!................당신이연꽃에게 집착할수록 정나미는 더 떨어집니다 글고,당신의업장도 더 두터워지고!
나는역사정신 2016-09-11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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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사<--->연꽃방 왔다갔다 하던 그 스파이 같은 모리배 수자따는 아니것지??

나는 당신같은 무개념... 영혼이 없는...  한여름 녹조류같은 시대정신은 없다...

그대나 질리지 않는 뱀다리나 열심히 뜯으시게나... 훌륭한 불자가 되도록...
도로아미타불이다 2016-09-02 22: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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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다 오계만 걸면 다나???
넘심플하네 2016-09-02 13: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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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나뭇꾼 이야기를 했다.
불살생계와 불망어계가 충돌할 경우 즉, 두 가지 계율을 모두 지킬 수 없는 경우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고 초기불교도들에게 물었다.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것인가.
진흙속의 연꽃을 추종하는 팬들은 적어도 댓글 달아야 하는 거 아닌가.
진흙속의 연꽃은 "어떤 경우에도" "조금 이라도 분노해선 안된다"면서 선의의 분노나 자비의 일환으로 내는 분노도 허용해선 안된다고 하여 논란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어떤 경우에도" 계율을 지겨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글을 썼다. 그런데 세상은 나뭇꾼의 예처럼 계율이 충돌할 때가 많다. 불망어 계율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해서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해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고 인간관계가 꼬이고 자신은 물론 자신 주변의 사람들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악의가 있어서도 아니고, 계율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혹시 모를 자신의 솔직함,정직함으로 인해 곤란하거나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여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필요한 고통이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얀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회사 동료나 거래처 관계자가 내 눈에 예쁘지 않더라도 예쁘다고 하고, 상대방의 명백한 잘못임에도 가급적 직설로 안하고 돌려서 말해주고 가족을 안심시키려고 실직을 숨기거나 건강이 나쁨에도 좋다고 하거나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 싫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부처님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신 전제에는 탐진치라는 욕망이 있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이기심의 발로로서의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경우가 아니다. 필자는 이런 전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여서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경전속의 말씀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복잡한 세상살이에 적용시키는 것이 과연 불교적으로 사는 것일까.

마음이 유연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다.
실례지만 필자는 굉장히 연세가 많으신 분같다.

그건 그렇고, 초기불교도들은 두가지 이상의 계율이 부딪치는 경우
모든 계율을 다 지키지 못할때, 어떤 계율을 취하고 어떤 계율을 버릴 것인가에 대해 각자 댓글로 달아주길 부탁한다.
넘심플하네 2016-09-02 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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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주제와 관련없는 댓글로 물타기 시전 거부합니다~
불교를소설로보나 2016-09-02 15: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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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같은 소리를 왜여기서?
사면기사 가서 해야지?
불교를소설로보나 2016-09-02 15: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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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소설로 보니, 신념의 노예가 되는것 아닌가?
동감 2016-09-02 15: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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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요
불교는 2016-09-02 15: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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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한풀이로 헛되이 소진하는,
신념의 노예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영약 아닌가?
넘심플하네 2016-09-02 17: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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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사냥꾼이 비현실적 망상?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 난민들이 있는 그런 현장에서 사슴-사냥꾼으 이야기들이 제현되고 있단다. 누군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쫓아오고 누군가는 쫓기는 자를 숨겨주려고 하다가 죽이고 죽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사슴-사냥꾼의 비유를 통해 어떻게 사유하는 것이 불교적 사유인지를 물어 본 것인데 불자된 입장에서 사유는 하지 않고 답변대신 회피하려고 비현실적 망상이라고 여기고 넘어가겠다? 그러면 진흙속의 연꽃을 변론한게 아니지.

너를 위해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각색해 줄께
어떤 여인이 복잡한 주택가 골목에서 오밤중에 강도인지 성폭행 범인지한테 쫓겨서 달아나다가 대문앞에서 그 여인과 마주쳤다고 치자. 그리고 멀리서 여인을 쫓는 발자국 소리와 고함소리가 마구 들려.....너는 여인을 사슴처럼 숨겨줄거냐? 강도이니지 성폭행범인지에게는 여인이 다른 쪽으로 갔다고 거짓말 할거냐? 두 계율이 충돌할때 어떡할거냐고 물어 보는 것다. 이게 왜 비현실적 망상이냐? 너에게 얼마든지 닥칠 수도 있는 선택의 기로다.

진흙속의 연꽃처럼 하얀거짓말, 방편, 선의의 거짓말은 해선 안된다, 그것은 불망어 계를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러면서 여인을 쫓아온 흉악한 자에게 이실직고 여인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꺼냐? 너나 진흙속의 연꽃같은 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 되게 싫어 할 것이다. 아마도 사실대로 일본순사들에게 다 말할 것이기 때문에....어디 무서워서 함께 거사를 도모하겠냐.
넘심플하네 2016-09-02 17:38:17
답변  
두 계율이 충돌할 경우 넌 어떤 선택을 할것이며
어떤 계율을 선택하고 어떤 계율을 버렸을 경우 그 행위의 논리가 어떻게 되냐고~?

뭔 소설타령이야? 진흙속의 연꽃이 "어떤 경우에도" 불망어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현실에서 지키내지 못하는 케이스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거냐 물은 거잖아.
불자로서 니 견해를 밝히면 되는데 왜 소설타령에 자승원장 타령으로 삼천포로 빠지고 그러냐?  그래가지고 진흙속의 연꽃 신도 자격이 유지 되겠냐? ㅎㅎ
연꽃신도 2016-09-04 0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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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구락이나 따라가라...
넘심플하네 2016-09-02 20: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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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네, 쇠귀에 경읽기ㅎㅎ
진흙이빠들 수준이라 그러려니 한다.
심플국어 2016-09-02 23: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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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계율이 충돌할때 어떡할거냐고 물어 보는 것다. 이게 왜 비현실적 망상이냐? 너에게 얼마든지 닥칠 수도 있는.../[넘심플하네 뎃글 중]>>
<-- 이러니까 국어지...
佛語는 아니지? 선택할 게 없잖아? 선택의기로에서 허깨비하고 술래하는 것이지...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을 어떻게 말하나?

가설은 국어잖아? 국어는 개념이고.. 개념은 견해이지 견해는 64견이고 64견은 유아론이잖아?? 이 유아론의 장이 곧 현재이니 고로 유아론이 佛語나??? 佛語는 무아잖아???????  나하고 말장난할래!!!
솜사탕이라니 2016-09-03 07: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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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물어볼까요?

불교가 소설이고 솜사탕이라고 비방하면서,
ㅇㅈ주변은 왜 기웃거리나?
만해 2016-09-02 17:04:25
답변  
돈 버는데는 장사가 최고다.
초기경전에 보면 붓다는 농사 보다는 장사를 장려했음을 알수있다.
아직도만해만해하나 2016-09-02 18: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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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붓다는 그 붓다가 아니고,
피해자 코스프레 붓다 아니요?.
에휴 2016-09-03 20: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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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똥판으로 만든 다원
진흙이는 좋겠다 이런 추종자가 물불 안가리고 방패막이를 해 주니 크흐흐
다원 2016-09-03 22:35:37
답변  
이 칼럼 내려라

더러운 다원이 글 보기가 역겹다

이런자를 몰고 다니는 사람의 글도 내려라

갈수록 역겨워진다
니는누구고 2016-09-03 23:58:09
답변  
(에휴)=(다원)=(이름도 닉도 못쓰는 넘)=(겨드랑이털)=역겨운 넘.

역겨운 짓은 골라서 하고 있지 않나?
역겨운 거 머하라 보고 있나?
칼럼을 내리라 마라??? 지가 안보면 되지 않나?
할 일 디게 없는 역겨운 넘이네.....

다원이는 아나?
니는 누구고...
니는누구고 2016-09-04 12:54:19
답변  
누구나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사회 환경이나 교육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갖을 수 있습니다

진흙속의 연꽃이나 다원씨의 의견이 옹호되어야 하는 것과 같이 진흙속의 연꽃에 대한 다른 의견을 올리는 사람의 의견 또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들과 당신은 아무런 원한도 감정도 없는 사람들이고 단지 서로 어떤 사안에 대해 당신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 일 뿐 입니다

그들을 폄하하고 무시하고 마치 악의 축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들도 당신을 그렇게 생각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흙속의 연꽃의 기고문에 대해서 다원씨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무상상이나 단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당신이 생각하듯 무상상이나 단현, 겨드랑이털은 아닙니다
아니라니까그러는데 2016-09-04 19:16:07
답변  
그러면 됬는데... 다원하고는 무신 싱관인가??
다른견해.. 존중을.. 다원이가 모르는 사람같아보이는가???
공자앞에서 문자쓰는 격이네...

무상상... 단현이 겨드랑이 털이 나미면 됐지...
자기 글이나 열심히 쓰고.
자기 이름이나 닉 바르게 쓰고..
필요한 글이나 열심히 읽으시게...

꽃님이 다원이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왜? 없겠나?
내가 견해가 다르다고 무상상이랑 단현에게 비판하는 걸로 보이나?

당신은 누군지도 알수없는 존재지만 당신이 다원이는 아나??
아는 것도 없이 모르는 소리도 좀 그렇지?? 뒷말은 생략 함세..

익명이라는 뎃글질이어서 무상상과 단현을 까는 것도 아니고..
무작위로 뎃글질에 냉소를 보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무신 유식한 말만 하신데요... 좀 주제가 웃기네...

무상상과 단현은 나와 무관한 인연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넘 잘아는 사이라 탈이네요...

아무튼 시방은 내가 귀신하고 차한잔 마신걸로 함세...
아니라니까그러는데 2016-09-05 10:18:54
답변  
무상상 단현이 다원과 무슨 인연이 있고 잘 아는 사이라면 공개된 불교 미디어에서 보기에 불편한 언사를 나눌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그 연을 이어가십시요

다원님도 불특정 다수인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인연은 당신들 간에 해결하도롤 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요

그 인연을 이곳에서 계속하고 싶으시다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를 공자앞에서 문자나 쓰는 귀신으로 만드는 다원선생의 실력으로 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많은 사람에게 불편한 자리로 만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글 투를 보면 다원님의 글인 줄 분명한 글들이 이 칼럼에도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헤아려가면서 글을 쓰십시요

그리고 불교에 관한 다원님의 생각을 올리십시요 무엇때문에 진흙속의 연꽃의 글에 다른 의견을 갖는 사람들을 공격하는데만 정신을 쏟으십니까

진흙속의 연꽃의 글은 기고문으로 충분하고 거기에 반대되는 사람들 글은 댓글로 충분합니다

다원님은 다원님의 교학 수행 그리고 자신의 불교와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이곳에 올리십시요

저를 포함해서 이곳에는 자신보다 앞서간 선지식들의 가르침에 목말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고 댓글을 봅니다

개인적인 연이야 서로 만나 멱살을 잡든 소주를 한잔 하던 하면서 풀도록 하시고 이 곳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서로 천착하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2016-09-06 08:21:11
삭제  
내가 니글에 머라고 했나??
니  <--라는 인칭이 웃긴다만... 난지 닌지 무르것다..
나의 닉이 천변만화 하는 것같아도 그건 내 글의 프롤로그여 본뎃글 속에 나가 다원이라는 것은 다 들어 있어...

아니척... 다른 넘인척... 겨드랑이털 날리면서 왜곡과 냉소를 날리는 비존재들과는 차원이 달라... 그런 것부터 헤아리는 독서의 진수를 느껴야지 국어하면서 공자앞에서 문자 운운소리 듣지

니글에 한결같은 닉으로---- 정성울 다해서 글을 써봐...
요상하게 쓴 글은 다른 견해라고 보기 힘들고...
내 칼춤에 상처만 입을 것이여...

무상상... 단현.. 오프라인 어쩌고 저쩌고... 니 상황판단이 그정도나??? 지 들과 내가 소주 풀고 어쩌고 저쩌고... 있는 소주도 엎어지것다...
그들이 오프라인에서  자빠지고 꼬꾸라지고 뒤집어지는거야 관심이 없고... 여기서 글질하는 것이 가관이라 내가 좀 최면의 기법을 차용해서 <미러링>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지.. 최고의 공감 방법이고 최고의 사띠여...

마음의 눈이 아직 안열렸으면... 문자 쓰지말고
니가 누군지 알게... 남하는짓 못된것만 본받지 말고
일처전심으로 니 글이나 써
佛자를 입에 담기전에 그게 먼저일거여...
수행을 말하기 전에 그게 먼저여..
교학을 말하기전에 그거부터 먼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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