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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일도 있는 일’로 만들고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내는 데에 탁월한 오빠!”

이병두 | beneditto@hanmail.net | 2016-07-08 (금) 16:09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열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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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많은 이들이 ‘철수 오빠가 왜 그리 프랑스에 아련한 추억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여기며 내게 그 사연을 묻는다. 그런 물음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멈칫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노태우가 6.29선언을 하듯, 나도 결단을 내려서 우리 집안의 비밀 한 가지를 공개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젊은 시절부터 철수 오빠가 매우 훌륭한 분이었고,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과는 현격히 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드러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교 법대를 나온 오빠가 고시에 합격해 유럽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오빠에게서 부모님 앞으로 편지가 왔는데, 허름한 창고 같은 곳에서 오빠와 지금의 올케 언니가 축하객도 하나 없이 결혼식을 치른 사진을 그 안에 동봉했던 것이다. 집안의 맏아들이 이역만리 프랑스의 농장 창고에서 결혼식을 치렀다는 소식을 접한 부모님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

 

그 편지를 받고 며칠 동안 부모님은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셨고, 잠도 깊이 들지 못하신 채 한숨만 쉬셨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자기 혼자 기분 좋자고 가족들을 이렇게 무시해. 들어오기만 해봐라, 새 언니를 가만 놓아두나? ……”라며 철수 오빠 원망을 많이 했다.

 

나중에 오빠에게 사연을 들어보니 오빠와 지금의 올케 언니가 사랑이 뜨거워져서 귀국 휴가를 내서 결혼식을 치르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더란다. 마침 프랑스에 유학차 가 있던 어느 분이 오빠와 잘 아는 사이였는데, 그분이 가톨릭 수도원에서 머물고 있어서 무작정 찾아가 “우리 결혼식 주례를 맡아달라!”고 떼를 썼고, 그분이 어쩔 수 없이 그 수도원 창고에서 오빠와 올케를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 주례를 섰다는 것이다.

 

오빠는 “나는 일체의 구습을 거부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나처럼 이런 구태와 관습을 깰 줄 아는 사람이 국가의 중추中樞 역할을 맡아야 한다. 두고 봐라. 내가 최소한 장관, 잘 하면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할 것이다.”며 이 사연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오빠 앞에서 나나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불만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예,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라며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새 언니에게 깍듯하게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때에 새 언니를 확 휘어잡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이런 추억을 가진 곳에 오빠와 올케 언니 내외가 자주 추억 여행을 가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차에 오빠가 모 재단의 이사장이 되면서 어떤 인연으로 프랑스 남부 교외에 허름한 창고 건물이 딸린 자그마한 농장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아마 이런 경우를 보고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곧바로 오빠의 수족과도 같은 그 인사와 짜고서,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이고 현재 불교 붐이 일고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좁은 한반도에 갇힌 채 불교 진흥을 이야기할 것인가? 이제는 유럽을 무대로 우리가 앞장서서 불교를 발전시킬 때가 되었다. 마침 좋은 자리에 수련원으로 적당한 매물이 나왔다고 하니, 우리 재단이 그곳을 매입해서 프랑스를 거점으로 전 유럽에 불교 붐을 일으키자! ……”며 이사와 감사 등 임원들을 설득하였다.

 

일부 이사들은 “그 먼 프랑스까지 가서 수련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없는 일도 있는 일’로 만들고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내는 데에 탁월한 오빠의 타고난 언변言辯으로 그들을 모두 설득하고 끝까지 반대하는 인사에게는 오빠와 동상이몽同床異夢 ‧ 오월동주吳越同舟 하고 있던 그 인물을 시켜 적절히 달래서 결국 2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그 허름한 곳을 살 수 있었다.

 

우리 오빠는 이런 점에서도 탁월하다. 올케 언니를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했으면, 20억 원에 가까운 재단의 공금을 들여 프랑스에 ‘이름만 수련원’을 구입하고 그 수련원 보수 공사 감독 명분으로 매년 한두 번 정도 공무 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이런 능력을 갖춘 분을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 것이다. 그리고 오빠와 올케 언니가 내게도 사실을 다 털어놓지 않아서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오빠가 프랑스 출장을 갈 때에는 올케 언니도 대동하는 것 같다. 올케 언니로서야 “내 비행기 표도 공금으로 구입하면 되지 않느냐?”며 불만을 표시하는 것 같지만, 오빠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않는가.

 

물론 공사불이公私不二의 정신에 투철한 오빠도 올케 말대로 하고 싶지만 비행기 표까지 공금으로 샀다가 혹 감사에 적발되고 무엇보다도 오빠가 오늘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었던 법대 선배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는 날이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뻔히 알고 있어서 그런 바보짓은 하지 않는 것이다.

 

올케 언니도 그렇다. 그런 추억 여행을 만들어내는 오빠의 그 창조적인 두뇌 활용과 아내 사랑에 감지덕지 해야지 그 몇 푼 안 되는 비행기 삯을 가지고 불만을 하는가 말이다. 그래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하는 법”이라던 옛말이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데, 나는 그저 부러울 수밖에 없고 “혹시 동생인 나도 한 번 데려가주지 않을까?”하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엉터리로 한 충청도와 경상도 경계의 수련원 공사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사건이 확대되어 프랑스 수련원이 오빠의 개인 추억 여행을 위한 것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니 나까지 오빠 덕에 프랑스에 놀러 가서 낭만을 즐기려던 계획은 이제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모든 것이 그놈의 ‘민주화’라는 사악한 악령이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파고 들면서 생겨난 일이다. 5년이나 지나간 ‘집단 성 폭행 사건’을 밝혀내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 스물두(22) 명의 젊은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형사가 나오지 않나, 섬마을에서 연쇄 성폭행 당한 뒤 그것을 밝혀내는 여선생님이 나타나서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는 일 ……. 아, 옛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그놈의 ‘민주화’ 악성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안정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자살 폭탄 테러를 자행하는 그룹들처럼, ‘민주화 척결 시민 연대’를 만들어 오빠와 내가 이 땅의 ‘민주화’ 병에 걸린 연놈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오빠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큰아들에게 세습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도 세습하는데 이까짓 재단법인 하나 세습한다고 그게 그리 큰 죄가 되지 않을 것 아니겠는가. …….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쓸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해주실 분은 필자의 E-메일 <beneditto@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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