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자들, 선학회 전기세미나에서 ‘규봉종밀 선종판석’ 놓고 첨예한 논쟁
“감별회통으로 선종 분석적 종합” 찬사에 “知로 심체 드러낸 건 병폐” 반박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을 지렛대로 당나라시대 선종을 조명해보는 흥미로운 세미나가 열렸다.

‘규봉종밀의 눈에 비친 당나라 선종의 판도-우두종, 정중종, 북종, 홍주종, 하택종’을 주제로 지난 6월 24일 동국대 초허당 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선학회 2016년 전기 학술 세미나의 자리다.

이날 세미나의 기획 의도는 당나라 당시의 ‘선(禪)’을 그 시대의 ‘관점’으로, 또 그 시대의 ‘자료’로 조명해 보자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난 송･명･청 등 후대의 ‘자료’로 당나라 선종을 보는 것도 아니고, 또 종학(宗學)에 입각한 ‘돈-점 폄하적’ 내지는 ‘간화선 우월적’, 그런 ‘관점’에서 선사상을 재단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게 한국선학회 회장 신규탁 교수(연세대 철학과)의 설명이었다.
  
한국선학회는 이런 일을 수행함에 쓸모있는 ‘지렛대’를 제공하는 있는 인물이 정혜선사 규봉종밀을 꼽았다. 그가 당시 선종 판도를 문서로 증언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규봉종밀은 <선원제전집도서>, <원각경> 관계 여러 주석서,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 등 적지 않은 저술을 남겼다.

신 교수는 “이런 문서적 증언들이 때로는 조선이나 일본에서는 ‘종파주의적 시각’ 때문에 왜곡되기도 했고, 사상사 바라보는 ‘연구 방법론의 부재’ 때문에 주목 받지 못하기도 했다”며 “규봉이 남긴 문서들을 ‘지렛대’로 삼아 당나라 당시 선종의 판도를 복원해보고, 그들이 추구하는 선사상의 차이점을 대조적으로 노출시켜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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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사상 평가자로서의 규봉종밀'이란 주제의 기조발제를 한 신규탁 교수에 따르면 규봉종밀의 선종에 대한 관심은 그의 일생동안 지속됐다. ‘현수종 조사(賢首宗 祖師)’격인 규봉종밀이 선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당시의 선종이 그에게 ‘신경 쓰임’으로 다가온 당시의 새로운 지성이었기 때문이며, 그의 스승이었던 청량징관이 제교(諸敎)의 행상(行相)을 판석(判釋)하는 철학적 작업 속에 선종을 포함시킨 것 역시 그런 ‘신경 쓰임’이었다고 신 교수는 설명했다.

신규탁 교수는 종밀의 철학하기 태도를 ‘감회(勘會)’, 감별하여 회통하기‘로 명명하고, 종밀은 감회의 방식을 통해 여러 선종의 수행이론을 분석적으로 종합했으며, 이것은 중국 지성사에서 보여준 위대성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신규탁 교수는 “규봉종밀은 출가 전부터 원각경을 읽어 20~30권 분량의 관련 저술을 남겼다”며 “규봉종밀은 원각경을 해설하면서 ‘수증개차’라는 방식을 적용해 선종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또 규봉종밀에 의해 소개되는 우두종, 정중종, 북종, 홍주종, 하택종 등에 주목했하고 "이들 종파에 대한 문헌들이 최근 들어 돈황을 통해 발굴되면서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 교수는 “학문(철학)하는 사람들은 설사 석가모니의 규설이라고 하더라도 비평할 수 있는 것이며, 규봉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며 “인간의 심성 근본에는 순수한 도덕심(모랄리티)가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으며, 이 모랄리티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며, 규봉종밀은 이것을 본각진심으로 표현으로 적극적으로 언급하면서 각 우두종, 정중종, 북종, 홍주종, 하택종 등 선종의 수행이론에 대한 해석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자성청정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적인 지각(현량)과 추론(비량)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며 “직접적인 지각은 우선 근경식이 있어야 하고, 대상에 대한 이미지(바스투, 상)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거짓과 진실의 판별은 경험적 지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규봉종밀의 시도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며, (저는) 자성청정심을 논증하기 위한 노력을 규봉종밀의 비판적 종합의 방법을 통한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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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주 박사가 규봉종밀의 선관이 편향되었다며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규봉종밀 연구자이기도 한 신규탁 교수의 기조발제는 그러나  이어진 첫 번째 발제에서부터 강한 반격을 받았다. 박건주 박사(전남대 사학과 강사)는 ‘우두선(牛頭禪)에 보이는 제선가(諸禪家) 공유상통의 선지(禪旨)- 종밀의 입장에 대한 비판과 보완-’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여러 분파로 나누어져 상호 비방 쟁론하는 양상을 회통시켜 화회(和會)코자 한 규봉종밀의 활동은 소중한 면이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그의 글들에는 ‘자파(하택종) 지상주의’에 치우쳐 있는 점이 엄연한 까닭에 그 내용들을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되는 면들이 많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박건주 박사는 “남북이종(南北二宗)의 분종을 비롯한 여러 선가의 분립 쟁투의 발단을 야기한 것은 하택신회의 제자 일각에서 일으킨 조작에 의한 것일 뿐, 본래 여러 선가의 선법에 따른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쟁론이 일어날 일도 아니었다”고 일축했다. 박 박사는 이어 “미꾸라지 한 마리가 휘젓고 다니며 맑고 조용한 연못을 온통 흙탕물로 더럽히고 어지럽힌 꼴이며, 종밀은 그 미꾸라지의 후속세대로서 그 편에 서서 추종하고 그 흐림이 위세을 얻도록 도와준 셈”이라고 폄하했다.

박건주 박사는 “여러 선가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우두선은 여러 선가가 공유하는 상통의 선지와 법문이 담겨 있으며, 그 선지를 통해 여타 선가의 법문들이 다 융회 회통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하택-징관-종밀로 이어진 선가에서 심체(心體)를 ‘지(知)’로 드러낸 법문에 대해 “종밀이 만약 진정으로 회통 화회시키려는 열의가 있었다면 하택종에서 북종을 폄하하면서 많이 들었던 이른바 북종의 4구선법 ‘의심입정, 주심간정, 기심외조, 섭심내증(疑心入定, 住心看淨, 起心外照, 攝心內證)’의 뜻을 점법으로 치부하여 폄하해서는 안 되고, 또한 북종의 법문이 여기에만 머무른 것이 아님을 설파하였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건주 박사는 또 “하택신회의 어록도 그 집필은 그의 제자들이 한 것이고, 그 편집 과정에서 일부 집단이 상당 부분 위조한 것으로 본다”며 “종밀이 이런 흐름을 그대로 수용하여 여타 선가의 선법을 그러한 내용으로 기술한 것은 그 흐름의 추종자였고, 그러한 흐름의 하택종을 자파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 절하했다.

박건주 박사는 “우두선에 보이는 선지와 법문들은 실은 여러 선가의 법문에 거의 공통으로 보이는 것이며, 6조 이래 분파된 여러 선가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까닭에 후대의 선법의 지남(指南)으로서 소중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며 “단지 종밀이 자파인 하택종의 특징으로서 자량삼아 제시한 심체를 ‘지(知)’로써 드러내었다는 법문은 여러 병폐를 낳게 되는 폐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래 여러 경론에서 심체를 ‘각’으로 드러내어 설한 뜻을 살펴서 이를 통해 상사각을 얻고 나아가 수분각, 구경각으로 진전해 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건주 교수는 특히 하택종에서 ‘지’로 심체를 드러내고 있는 데, 이것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건주 박사는 “‘지’는 대상을 수반하므로 앞에 ‘영’을 붙여 ‘영지(靈知)로 사용하지만, 영지에도 많은 문제가 수반된다”며 “왜 대승에서 ‘지’ 대신에 ‘각’을 사용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종의 심성론과 수증론 연구’를 발제한 중앙승가대 교수 지은 스님(니, 김경숙)도 복종에 대한 하택종의 일방적인 비판에 대해 반박했다. 지은 스님은 “북종에 대한 기술은 남종의 신회나 종밀의 비판적인 견해로 전해지다가 돈황문서의 발견으로 다시 본래의 사실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며 돈황문서 가운데 신수의 저작인 <관심론>과 신수 또는 신숙의 저작으로 인정되는 <대승무생방편문>을 중심으로 북종선의 심성론과 수증론을 고찰했다.

지은 스님은 박건주 박사의 <능가선법 연구>(운주사)를 인용해 “북종의 입장에서는 중생들의 ‘본유(本有)한 각성(覺性)’을 거울의 맑은 성품에 비유하며, ‘본유한 각성이 있음을 알며’ 또 ‘마음이 본래 청정함을 알고’가 전제된 행법은 깨달음의 경지로 봐서 돈법(頓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즉 북종선법을 점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돈오하고 점차적으로 닦는다고 보는 입장으로 오히려 종밀의 돈오점수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은 스님은 이어 “하택신회는 북종선법(北宗禪法)을 ‘사자시방 법문시점(師承是傍 法門是漸)’이라고 하면서 이원적이고 점차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돈황에서 발견된 북종관련 전적을 통하여 남종 못지않은 돈오적인 선법이 설해지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진무 원광대 불교학술원 강사가 ‘정중종의 법계과 그 선사상’을, 김한신 경남대 교수(역사학과)가 ‘중당시기 홍주종의 교세 확산 과정과 그 역사적 배경’을, 박인석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가 ‘하택종의 전승과 선사상 검토-종밀 및 금석문 자료를 중심으로’를 각각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