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beneditto@hanmail.net 2016-06-09 (목) 11:14
<미디어붓다>는 오늘부터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연재합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첫 번째 이야기
철수 오빠와 나 영희는, 1940년대에 해동 대한민국 남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중소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님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종업원 수십 명을 거느린 제조업을 경영하는 사장님이었고, 그 덕분에 우리 남매는 그 시절 다른 친구들과 달리, 배를 굶거나 옷을 입지 못해 추위에 떠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여유 있게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철수 오빠는 고향의 명문 고등학교를 나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교 법대에 들어가 고시를 거쳐 중앙부처 과장급까지 지냈다.
공무원으로서 마감하기에는 남자의 뱃장에 맞지 않았던지, 오빠는 그 잘 나가던 중앙부처 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고향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출마했다가 아슬아슬하게 낙선하고 말았다.
철수오빠와 달리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던 나는 고등학교만 마치고 사업 일선에 뛰어들어 돈을 꽤 많이 벌기도 했는데, 오빠의 정치 바람 뒷바라지 하는 데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내 수중에는 큰돈이 없다.
우리는 사이가 좋은 남매였고, 지금도 매우 우애가 돈독하다.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앞으로 할 이야기 속에 그분의 동생 사랑이 드러나게 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된다.
철수 오빠는 국회의원 선거에 한 번 떨어진 뒤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아 심야토론 사회도 보고 그랬지만 언제나 정치인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쪽을 계속 엿보며 이리저리 선을 대곤 하였다. 대통령 선거에 세 차례 나가서, 두 번은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오빠의 법대 선배 어느 분에게는 꽤 기대를 걸고, 매우 가깝게 다가가기도 했었다. “그 선배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내가 최소한 장관, 잘 되면 총리까지 될 수 있었는데 말이야 …….” 하면서 한탄하는 소리를 자주 하는 것으로 보아 최근까지도 정치인이 되고 싶은 꿈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오빠가 고마운 것은, 내가 어렵게 지내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당신이 책임을 맡게 된 모 공익법인이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경계 지역 – 단양인가, 보은인가, 괴산인가, 영동인가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 에 있던 수련원을, 아직 쓸 만한데도 허물고 새로 증개축을 한다며 2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켜 우리 고향의 이름만 있는 어느 건설회사에 형식상 도급을 주고 실제로는 내가 다 맡아서 대충대충 공사를 마치기만 하면 돈을 주었으니 이렇게 동생을 아끼는 오빠가 어디 있겠는가?
공사만 맡겨준 게 아니라, 설비와 전기 공사는 오빠 회사 직원들을 몇 달 동안 보내주어 그들에게 임금이나 수고비 한 푼 안 주고 그야말로 ‘공짜로’ 일을 하게 해주었으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동생인 내가 좀 더 공사를 완벽하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완공 후에도 수련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들고 곳곳에 곰팡이가 슬고 구조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놓았으니 이건 동생을 보살펴 준 오빠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하긴 그래도 나는 할 말이 있다.
“오빠, 그래야 보수 공사 명목으로 또 돈을 쓰실 것 아닙니까? 그 공사도 제게 맡겨 주세요. 이번에는 잘 할 게요.”
요즈음 우리 철수 오빠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우리 남매 관계를 눈치 챈 이들이 있어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니 그걸 막아보겠다고 이사들 만나서 거짓말 하느라 몸도 바쁘고 머리는 더욱 뻐개질 것이다. 이건 정말 동생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옛날 같으면 우리 남매의 돈독한 우애를 트집 잡는 이들을 붙잡아다 치도곤을 치르게 하고 입을 꽉 다물게 하겠지만 이 더러운 놈의 ‘민주화’ 때문에 그럴 수도 없어 답답하다.
어쨌든 우리 철수 오빠는 훌륭한 분이다. 동생도 잘 보살피고 아들들도 끔찍하게 위해주어 가족들 때문에 혹 공익에 손해가 간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소한 일에 아랑곳하지 않는 분이란 말이다. 이런 분들이 더 많아지고, 이런 분들이 고위직으로 많이 진출해야 우리나라 모든 가정이 화목해지고 그 덕분에 나라도 부강해질 터인데 …….<계속>
*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쓸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해주실 분은 필자의 E-메일 <beneditto@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