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맑고 밝은 이야기] 58 – 앤서비 웰링턴의 의식의 4단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통해서 자기를 읽는 법

차를 마십니다. 술보다는 차가 좋습니다. 마실수록 가라앉고 또 가라앉게 되어 마치 심의식 깊은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내림’과 ‘풀림’의 작용이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차를 우립니다. 제일 좋은 차는 역시 배짱 좋게 좋은 차를 잔뜩 넣어 청아한 차호에 맑은 100도 넘는 물을 부어 우리면 될 듯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부어 넣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같습니다.

이것까지는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사실 차를 우려낼 때는 나를 우려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우려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우려내면서 서로의 진국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담이고 그래서 다선입니다.

어제 오랜만에 몇 명이서 다담을 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에는 다선까지 해 봤는데 공명이 있어 즐거웠습니다. 공명을 아는 이를 지음이라고 합니다. 소리를 안다는 의미로 이때는 관음과 같은 뜻입니다. 관세음은 관자재이니 서로의 자리를 알기에 공명하게 되는 이치인 듯합니다.

지금 공명하고 계신가요? 말은 입자가 아니고 파동이라고 떠들면서 입은 언제나 분석적이고 이성적이지만 입만 열면 ‘세상’을 열고 ‘윤리’나 ‘정치’를 떠듭니다. 상대방의 파장을 느끼지 못하고요. 가라앉힘과 시간속의 인내라는 배려 속에 받아들임이 생깁니다. 수용성은 너와 나 사이에 벽이 없다는 뜻입니다. 훈제오리처럼 훈습해 나가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훈습과 같은 공명을 ‘하모니’로 이뤄나가시기 바랍니다.

크게보기

타이뻬이의 시내 전경

몽테뉴가 『엣세』 서문 중에 쓴 『개인의 발견』 (리하르트 반 뒬멘 지음, 최윤영 옮김)에 대하여

“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얻는 것이 나에게 중요했다면 나는 나를 좀 더 꾸미고 행동도 올바른 사람으로 소개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익숙한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나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묘사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직 저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저도 위하고 아니 저부터 위하고 삽니다. 하지만 저만을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항상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사는 사람 그들이 제게 어떤 평을 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이라는 외로운 여정에서 나의 둘도 없는 도반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보여주는 모습에 혹한 사람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다시 그런 사람이 아님을 확인시켜 드립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을 놔 둘 필요도 없고 괜히 저의가 있었던 고의로 오해받기도 귀찮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내가 세상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나일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아니기에 전 조용히 부정합니다.

저는 제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나아가지만 그 과정을 남이라는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객을 위해 나를 꾸미기보다 인생이라는 연극을 즐기고 또한 아름답게 마치기 위해 나를 바꾸고 고치기를 바랍니다. 맑고 밝게. 조명을 밝히며 그 빛은 나와 도반들에게 비춥니다. 이것이 조고각하(照顧脚下)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로서 도(道)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크게보기

타이뻬이의 시내 전경

앤서비 웰링턴의 의식의 4단계에 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7fgszIDQ0cs)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비디오에는 순수하게 생긴 흑인 남성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무의식적 무지 : 뭘 해야 될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로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무지로 불교의 무명
2단계 의식적 무지 : 뭘 하고 싶든가 뭘 해야 될지를 알게 된 상태로 하지만 방법 등을 아직 잘 모르는 무지
3단계 의식적 지식 : 방법도 잘 알게 되어 익숙해져 가는 단계로 부족한 부분을 의식적으로 조심하기도 함
4단계 무의식적 지식 : 방법(기술) 습득의 완성 단계로 그냥 마구해도 잘 하게 되는 단계로 기술을 활용하고 창조하기도 함

하지만 이 좋은 영상에도 약간의 거들 말이 있습니다.

첫째, 참으로 실천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만 4단계가 끝이 아니며, 4단계 역시 새로운 1단계에 불과합니다. 기타는 능숙해졌을지 모르나, 다른 악기 예를 들면 우쿨렐레나 클래식기타 또는 해금 등 전혀 다른 악기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성악 등 음악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조차도 원숙해진다면 미술, 무용 등 다른 예술과 그 다음은 인문학, 과학 등과의 통섭이 이뤄지는 또 다른 범주(안목이 다름)가 펼쳐집니다.

둘째, 4단계가 새로운 1단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바로 ‘기타’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의식적 무지를 봐야 합니다. 왓칭은 그런 의미입니다. ‘기타’에 고정된 관념(편견, 선입관 등 포함)의 범주에서 목표한 경지로서의 4단계에 도달했으나, 결국 그 역시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우를 범합니다.

대통령이 되는 데 관심이 있고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지 임기 중에 어떻게 할 것인지 대통령이 끝난 후에 미래계획조차 안 된 상태라고 하면 약간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셋째, 4단계가 다시 1단계가 되어 무의식의 무지의 단계에서 이것이 4단계로 끝에 도달했다는 것은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에 왔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안목의 좁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깨달음뿐만 아니라 착각, 오해 등의 확신 역시 이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여하튼 어떤 곳에서든 어떤 감정에서든 헤어나지 못하고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또 하나의 무명에 의한 고통의 원인인 아집에 갇힌 상태일 따름입니다. 4단계까지 갔지만 1단계만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 때부터는 이러한 무의식적인 무지를 일깨워주고 개발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경지에 한 발짝씩 나아갈 목표를 설정할 수도 있도록 조언하는 영적스승인 ‘그루’가 필요하게 되는 부분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