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이 땅에 선종을 연 아홉 선사들을 만나다

최승천 기자 | hgcsc@hanmail.net | 2016-03-02 (수) 18:54

 


신라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을 일으킨 도의의 선 사상이 어려 있는 전남 장흥 보림사. ⓒ김성철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이일야 지음, 조계종출판사
296쪽, 1만6000원

 

 

 

신라 말기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왕권을 둘러싼 끊임없는 싸움으로 중앙 정부 권력 기반의 약화와 지방 분권화 현상은 가속되었고, 신라 사회의 근간이었던 골품제는 와해되고 있었다. 불교계도 이러한 정치적 격변에 휩쓸려 불교 본연의 모습을 잃고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때 중국 선진 불교의 가르침을 전수받기 위해 많은 스님들이 당나라에서 수학 중이었다. 그 중 도의ㆍ홍척ㆍ혜철ㆍ무염ㆍ범일ㆍ도윤ㆍ현욱ㆍ도헌ㆍ이엄 등이 오조 홍인의 제자인 육조 혜능과 대통 신수의 선법을 전수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선승(禪僧)이다. 당무종의 폐불 정책에 의해 그들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중국의 선종(禪宗)이 한반도에 전해진 것이다.

 

돌아온 유학승들은 아홉 개의 산문을 중심으로 각각 새로운 불교운동을 펴나갔다. 이른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산조가 된 것이다. 귀족들만의 불교인 ‘교종(敎宗)’은 그들의 말을 ‘악마의 말(魔語)’로 폄하했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지방 호족들은 그들의 지지기반이 되었다.

그들은 신라 수도인 경주와 멀리 떨어진 지방을 중심으로 산문을 열었다. 교종의 견제와 비판에 굴하지 않고 신라를 병들게 한 신분제도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아홉 선사들은 성별이나 출신에 관계없이 중생은 모두 불성(佛性)을 지닌 소중한 존재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전해나갔다.  귀족과의 결탁으로 타락 일로를 달리던 당시의 불교에도 본래의 모습을 찾을 것을 강력히 주창했다.

 

평면(표1).아홉개의산문이열리다.jpg크게보기저자 이일야는 해주에서 장흥까지, 신라 사회를 뒤흔든 아홉 선사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구산선문을 답사하면서 선사들이 남긴 선불교의 정신, 인문 정신을 에세이 형식으로 쉽게 풀어 썼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 차원이 아니라 각 산문의 선사들이 전한 정신을 오늘의 문제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테면 성주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던 성주사지에서는 넓은 품으로 상처받은 민초들을 감싸 안았던 무염의 인문정신을 생각했다.

 

“이러한 무염의 인문 정신은 오늘날에도 계승되어야 한다. 오늘의 세계 역시 사람을 목적이 아닌 자본과 권력,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잔인한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시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우리 스스로 자문해 보자. 진정 그들을 이념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목적으로 대했는지 말이다. 모든 이들을 부처로, 목적으로 대했던 성주산문의 정신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하여> 144쪽

 

저자는 책의 앞쪽에서 우리나라에 선불교가 전해진 역사적 상황과 중국 선승 혜능과 신수의 사상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정리했다. 이후 본격적인 산문 답사기에서는 정치와 문화, 사상 등을 아우르는 역사 개괄에 더불어 답사한 사찰, 사지에 여여한 선사들의 정신을 오늘날의 이슈와 함께 엮어 친절하게 소개했다. 구산선문과 관련된 사찰과 사지, 문화재에 관련된 도판 50컷을 담았고, 각 산문의 글 말미에 답사노트를 두어 산문과 선승 관련 문화재와 사찰, 사지에 대한 정보를 수록했다.

 

전북불교대학에서 연구처장을 맡으면서 불교사상과 경전 등을 강의하는 저자는 재야불교학자다. 불교의 외연을 넓혀 이를 종교학이나 철학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는 데 관심을 갖고 연구와 저술에 집중하고 있다.

 

108산사 순례가 유행인 요즘, 기왕이면 적멸보궁, 화엄십찰 등과 같은 주제의 순례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올봄엔 구산선문 순례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비밀글

이름 패스워드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