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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하게 두려움 없이”

진흙속의연꽃 | | 2016-02-04 (목) 13:27

부처님의 재가자에 대한 설법을 대표하는 경이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D31)’이다. 경을 보면 재가자가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 중에는 우정에 대한 가르침도 있다. 그렇다면 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육방예경’으로 나타난다. 동서남북상하 이렇게 여섯 방향으로 예경하는 것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Kathañca gahapatiputta ariyasāvako chaddisāpaṭicchādī hoti? Chayimā gahapatiputta disā veditabbā: puratthimā disā mātāpitaro veditabbā. Dakkhiṇā disā ācariyā veditabbā. Pacchimā disā puttadārā veditabbā. Uttarā disā mittāmaccā veditabbā. Heṭṭhimā disā dāsakammakarā veditabbā. Uparimā disā samaṇabrāhmaṇā veditabbā.
 
[세존]
“장자의 아들이여, 어떻게 고귀한 제자에게 여섯 가지 방향이 수호됩니까?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방향을 알아야 합니다.
① 동쪽 방향은 부모라고 알아야 하고
② 남쪽 방향은 스승이라고 알아야 하고,
③ 서쪽 방향은 처자식이라고 알아야 하고,
④ 북쪽 방향은 친구와 동료라고 알아야 하고,
⑤ 아래 방향은 하인과 고용인이라고 알아야 하고
⑥ 위 방향은 수행자와 성직자라고 알아야 합니다.”
 
(Sīgālasutta-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 디가니까야 D31, 전재성님역)

 
 
동쪽에 절하며 예경하는 것에 대하여 부모라고 하였다. 이는 앞선 원조자가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 다음은 스승이다. 스승은 공양 받아야 할 자이기 때문이다. 처자는 배후에서 추종하는 자이기 때문이고, 친구와 동료는 친구와 동료에 의지해서 특수한 고통을 초월하기 때문이고, 노예와 하인은 발에 의해서 확립되기 때문이고, 수행자와 성직자는 덕행에 의해서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렇게 육방은 나름대로 예경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표로 만들어 보면
 
이어지는 경을 보면 육방예경이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 되어 있다. 마치 법조문처럼 표현된 내용에 대하여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동쪽예경

 

(1) 부모를 섬김

① 나는 양육되었으므로 그분들을 봉양하리라.
② 나는 그분들에게 의무를 다하리라.
③ 나는 가문의 전통을 이으리라.
④ 나는 상속을 잘 승계하리라.


(2) 부모가 자식을 돌봄

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② 선한 것을 확립하게 하고
③ 기술을 배우게 하고
④ 어울리는 아내와 맺어두고
⑤ 적당한 때에 유산을 물려줍니다.


2) 남쪽예경

(1) 스승을 섬김

① 일어나 맞이하고
② 시중들고
③ 열의를 보이고
④ 봉사하고
⑤ 성실하게 기술을 습득합니다.


(2) 스승이 제자를 돌봄

① 잘 훈련받도록 훈련하고
② 잘 이해하도록 이해시키고
③ 기술을 모두 배우도록 가르치고
④ 친구와 동료를 잘 소개시켜 주고
⑤ 모든 방향에서 안전을 강구해줍니다.


3) 서쪽예경


(1) 아내를 섬김

① 존중하고
② 멸시하지 말고
③ 신의를 저버리지 말고
④ 권한을 부여하고
⑤ 장신구를 제공합니다.


(2) 친구와 동료가 훌륭한 가문의 아들을 돌봄

① 술 취했을 때에 보살펴주고
② 술 취했을 때에 재물을 지켜주고
③ 두려울 때에 피난처가 되어주고
④ 재난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⑤ 그의 자손들을 존중합니다.


4) 북쪽예경


(1) 친구와 동료를 섬김

① 보시하고
② 사랑스러운 말을 하고
③ 유익한 행위를 하고
④ 협동하여 행하고
⑤ 정직한 말을 합니다.


(2) 친구와 동료가 훌륭한 가문의 아들을 돌봄

① 술 취했을 때에 보살펴주고
② 술 취했을 때에 재물을 지켜주고
③ 두려울 때에 피난처가 되어주고
④ 재난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⑤ 그의 자손들을 존중합니다.


5) 아래방향


(1) 하인이나 일꾼을 섬김

① 능력에 맞게 일을 안배하고
② 음식과 임금을 지불하고
③ 병이 들면 보살펴주고
④ 아주 맛있는 것은 함께 나누고
⑤ 적당한 때에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2) 하인이나 일꾼이 주인을 돌봄

① 먼저 일어나고
② 늦게 자고
③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④ 일을 잘 처리하고
⑤ 명성을 날리게 하고 칭송합니다.


6) 위쪽방향


(1) 수행자나 성직자를 섬김

① 자애로운 신체적 행위로 대하고
② 자애로운 언어적 행위로 대하고
③ 자애로운 정신적 행위로 대하고
④ 문을 열어 맞이하고
⑤ 음식을 보시해야 합니다.


(2) 수행자나 성직자가 훌륭한 가문의 아들을 돌봄

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② 선한 것에 들게 하고
③ 선한 마음으로 돌보아주고
④ 배우지 못한 것을 가르쳐주고
⑤ 이미 배운 것을 정화시키고
⑥ 천상에 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Sīgālasutta-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 디가니까야 D31, 전재성님역)


동쪽방향에서 “⑤ 적당한 때에 유산을 물려줍니다. 라는 항목이 있다. 여기서 적당한 때란 어느 때를 말할까? 주석에 따르면 ‘상시’와 ‘적시’로 설명한다.
 
어떻게 재산관리 할 것인가
 
상시는 항상 주는 행위를 말한다. 용돈이나 사업자금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일어서기 위해, 발전하기 위해 이것을 가져라.” “이것을 너의 비용으로 삼아라.” “이것을 착하고 건전한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돈거래가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적시는 적절한 때 주는 행위를 말한다. 공부할 때 주는 것과 결혼할 때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최후의 순간에 죽음의 침상에 누워서 “이것으로 착하고 건전한 일을 하라.”고 주는 것이라 하였다.
 
장자가 자신이 모은 재산을 살아생전에 자식에게 모두 주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착하고 건전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아낌없이 지원하지만 늙어 죽을 때 까지는 일정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말한다.
 
자식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 때
 
이렇게 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돌보는 것에 대하여 동쪽방향 예경이라 하였다. 이를 경에서는 “이렇게 해서 동쪽방향은 안온하게 두려움 없이 수호됩니다. (Evamassa esā puratthimā disā paṭicchannā hoti khemā appaṭibhayā)”(D31) 라 하였다. 이 말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만일 자식이 악행을 해도 부모가 어릴 때부터 불침번으로 부터 교정하지 않았다면, 그 자식은 부모에게 적당한 자가 아니라 두려움이 올 것이다.”(Smv.953) 라 하였다. 자식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식이 두려움의 대상일 경우 동쪽방향이 수호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만일 부모가 악행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하여 “부모는 자식에게 적당한 자가 아니라 두려움이 올 것이다.”라 하였다. 부모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가 악행을 하면 두 가지 두려움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하지만 양자가 올바로 행한다면 일체의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그는 스승에 의해 만들어진 자


남쪽방향은 스승으로부터 학예를 배우는 것에서 수호 된다고 하였다.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배워 명망을 날린다면 양자가 좋은 것이다. 특히 스승의 명예가 높아 간다. 왜 그럴까? ‘그는 스승에 의해 만들어진 자’라는 칭호가 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석에 따르면 “하느님 세계만큼의 이익이 생겨도 그것은 스승의 재산이 된다.”(Smv.954-955) 라고 하였다.
 
스푼을 손에 쥐어 주고
 
서쪽방향에서 아내를 섬김에 있어서 ‘④ 권한을 부여하고’라는 항목이 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여성들은 큰 등나무와 같은 장신구를 얻어도 식사를 관장할 수 없다면 분노한다. 스푼을 손에 쥐어 주고 ‘좋을 대로 하시오’라고 식당을 맡기면 모든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Smv.955) 라 하였다. 집안의 살림살이 일체를 아내에게 권한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또 ‘⑤ 장신구를 제공합니다.’라는 항목이 있다. 이는 “자신의 부에 알맞은 장신구를 제공한다.”라 하였다. 능력껏 액세서리 등을 챙겨 주는 것이다.
 
직원을 대할 때

 
아래 방향의 경우 오늘날 직원을 대하는 것과 같다. 하인이나 일꾼을 섬기는 데 있어서 ‘① 능력에 맞게 일을 안배하고’항목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젊은이가 할 일을 노인에게, 노인이 할 일을 젊은이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여성이 해야 할 일을 남성에게, 남성이 해야 할 일을 여성에게 맡겨서도 안 된다. 각각의 능력에 맞게 일을 안배한다.” (Smv.955) 라고 하였다.
 
계행을 갖춘 자가 집문 앞에 오면
 
위 방향은 수행자와 성직자에 대하여 두려움 없이 수호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수행자와 성직자를 대함에 있어서 신구의 삼행에 따른 자애로운 행위를 하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문을 열어 맞이하고 반드시 음식을 보시해야 함을 말한다.

 

위쪽방향에서 ‘④ 문을 열어 맞이하고’라는 항목이 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모든 문을 열어 놓고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보시하지 않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면, 문을 잠가 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다.”라 하였다.

 

문이 열려 있지만 보시하지 않는 집은 문을 꼭꼭 잠가 놓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반면에 문은 꼭꼭 잠가져 있지만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꼬박꼬박 보시하는 집은 사실상 문이 열려져 있는 집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계행을 갖춘 자가 집문 앞에 오면 ‘지금은 없다.’고 말하지 말고 주어야 한다. 또 문을 열고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전 중에 죽이나 음식을 보시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모든 방향으로 자애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때
 
육방예경 항목을 보면 공통적으로 “두려움 없이 안온하게 수호됩니다. (paṭicchannā hoti khemā appaṭibhayā)”라 하였다. 동쪽이라면 동쪽에서 올지 모르는 두려움,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수호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모든 방향에서 두려움이 수호되고 안온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자애’라 본다. 더 넓게 본다면 ‘사무량심’이다.

 

나를 중심으로 하여 부모-자식 간의 자애의 마음을 낸다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안온하게 될 것이다. 이는 남쪽의 스승, 서쪽의 아내, 북쪽의 친구, 아래로 하인, 위로 수행자에 이르기 까지 모든 방향에 해당된다. 그래서 자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형구가 있다.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서쪽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남쪽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북쪽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M127)
 

이 문구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자애의 마음에 대한 정형구이다. 정형구를 보면 동, 서, 남, 북, 위, 아래가 언급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육방예경과 방향이 일치한다. 그런데 더 있다. 그것은 ‘옆과 모든 곳’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육방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을 뜻하기 때문에 대상도 모든 존재들에게까지 확대 된다.

 

자애의 마음은 위로 신들의 세계에서부터 밑으로는 아비지옥에게 까지 확대 된다. 이렇게 모든 방향으로 자애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때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모든 방향에서 수호되기 때문에 안온하고 두려움 없이 살아 갈 수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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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이띠붓따까 2016-02-07 15:21:37
답변 삭제  
“비구들이여, 자신의 집에서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존경받는 그 가정은 하느님들과 함께 하는 가정이다. 비구들이여, 자신의 집에서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존경받는 그 가정은 옛 천신들과 함께 하는 가정이다. 비구들이여, 자신의 집에서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존경받는 그 가정은 옛 스승들과 함께 하는 가정이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존경받는 그 가정은 공양 받을만한 님과 함께 하는 가정이다.

비구들이여, 하느님들이란 부모를 지칭하는 것이다. 옛 천신들도 부모를 지칭하며, 옛 스승들도, 공양 받을만한 님들도 부모를 지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식들을 크게 돕는 자, 보호하는 자, 양육하는 자, 보여주는 자이기 때문이다.”
청정도 2016-02-10 21:13:08
답변 삭제  
어떻게 (사물을 ) 보고 어떻게 행동을 하면  성자 라고 불립니까?

고따마 존자님 간청하오니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요,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죽음이 오기전에 모든것을 쉬어 고요하고 갈애를 소멸한 사람은

과거에 집착 하지 않고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도 집착 하지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좋고 싫고를 떠났다.

 

그는 성내지 않고 두려움이 없고 교만하지 않고 한탄하지 않는다.

성자는 그의 말을 절제한다.

 

그는 오지 않은 미래를 열망 하지도 않고  지나간 과거를 슬퍼 하지도 않는다.

어떤 견해나 사상에 좌우 되지 않고 감각적 느낌에 묶여 있는 세상에서

멀리 떠나 있다.

 

그는 모든 것에 초연하고 속이지 않고 인색하지도 않고 탐욕스럽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불쾌감을 주지 않고 불화를 일으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쾌락에 빠지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온화하고 총명하고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지않고

어떤 것에도 싫어함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익을 바라고 일하지 않기 때문에 얻은 것이 없더라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갈애로 인하여 방해 받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마음  챙김으로 항상 평정의 마음을 유지한다.

자기가 남보다 잘 났다거나 못났다거나 동등 하다거나 하는 비교를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교만의 부풀음이 없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어떤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가 의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에게는 존재에 대한 갈애도 비존재에 대한 갈애도 더 이상 없다.

 

나는 그를 평화의 성자 라고 부르겠다.

그는 감각적 욕망에서 이미 떠났다.

그를 얽어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는 집착을  뛰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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