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태 청운대학교 교양학부 외래교수가 연초부터 <미디어붓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깨달음 논쟁’에 두 번째 장문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유학(성리학)을 전공한 박 교수는 유학을 전공했으나, 불교에도 상당한 조예를 갖춘 분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수는 두 번째 기고에서는 한자경 교수(이화여대)의 기고문에 대한 반론을 실고 있다. 그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한자경교수의 기고문에 대한 반론-
‘참 나’ 또한 무자성(無自性)이어야 옳지 않나  
                                              

이제 현응스님의 글로부터 촉발된 ‘깨달음’의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다. 당초 ‘이해하는 깨달음인가’ ‘이루는 깨달음인가’라는, 깨달음에 대한 방법 논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깨달음’의 대상과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어 든 것이다. 어쩌면 현응스님도 사실 이와 같은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한자경교수의 지적대로, 확실히 현응스님이 “이해하는 깨달음”을 주장하는 논리에는 “마음을 깨닫는다”는 조계종의 선지(禪指)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어 있다. 조계종단이 깨달음을 ‘마음의 깨달음’으로 간주하지만, 여기서의 마음이 불명확하기에 깨달음의 설명도 부정확하고 결국 깨달음의 노력도 실효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것을 이렇게 모호하게 설정해서는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방법도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행의 목표를 ‘마음의 깨달음’이 아니라 ‘경전의 이해’로 바꾸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냐는 제안이라고 본다. (“‘자아’와 ‘진여’ 구분 못하는 건 아닌지…” [한자경 교수 기고] 홍창성교수의 ‘초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를 읽고, <미디어 붓다> 1월 13일)

그러면서 한교수는 다시 현응스님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스스로 반문한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왜 명확하지 않다는 것일까?”
“‘마음을 깨닫는다’는 말이 왜 부정확하다는 것일까?”

그리고 ‘마음이 불명확하다’, ‘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홍창성교수의 기고문과 연관하여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심(眞心), 진여심(眞如心), 일심(一心) 등 불교에서 깨달음의 대상이 되는 ‘마음’을 지칭하거나 이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일련의 개념들을 궁극적 ‘실재(實在)’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사실 불성이나 여래장을 궁극의 실재로 여길 경우, 부처님의 ‘무아(無我)’와 정면 상충될 우려를 가진다. ‘불성’과 ‘여래장’이 ‘참 나(眞我)’로써 ‘실재’하는 것이라면 이는 곧 ‘유아(有我)’의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질적 자아'(육체, 생각, 마음)와 대비해 절대 변치 않는 가장 내밀하고 '초월적인 자아'를 인정하는 힌두교의 아트만(ātman) 개념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자경교수는 명백하게 이 ‘마음’의 실재성을 적극 긍정하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시각은 한교수만의 주장이 아니라, 선종이후 중국과 한국 불교 보편적 흐름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트만’ 개념을 비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불교의 정체성 문제가 걸려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한교수 스스로가 기고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진검승부’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결기를 보이시니 홍창성교수도 이에 대한 의견을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국의 불자라면 누구나 그 옳고 그름을 따질 중차대한 문제라는 생각에서 먼저 부족한 의견을 개진한다. 

1. 한자경 교수의 ‘커밍아웃’은 한국 불교의 ‘아웃팅’인가?

한자경교수는 확실히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심(眞心), 진여심(眞如心), 일심(一心) 등의 개념을 힌두교적인 시각에서 수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홍창성교수가 ‘마음’의 실재성을 부정하며 비유한 ‘어둠’과 ‘달’에 대한 상의상대(相依相對)적 비유를 한교수가 비판하는 내용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교수의 글을 길지만 꼼꼼하게 살펴보자. 

 밝은 달을 a, 어두운 밤하늘을 b라고 해보자. 종이 위 그림은 a와 b로, 밝음과 어둠으로, 청정과 염오로 나뉘어진다. 그림에서 a는 b로 인해 a로 드러나고, b는 a로 인해 b로 드러난다. 둘은 서로 상의상관적인 대대의 관계이다. 홍교수는 a는 b로 인해 있으니, a를 자성을 가진 자체 존재로 실체화하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것이 과연 a와 b의 상호의존적 연기성에 그치겠냐는 것이다. 그럴 경우 연기의 유전문 아닌 환멸문, 윤회 아닌 해탈은 어디에서 성립하겠는가? 나는 불교의 핵심은 종이 위에 그려진 a나 b 또는 a와 b의 관계가 아니라, a와 b 둘의 공통의 바탕인 빈종이 A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a와 b는 종이 위에 그려진 상(相)이고, 바탕 A는 상을 여읜 성(性)이고 바탕 체(體)이다. 석가가 말한 자성청정심, 대승불교가 말하는 불성과 여래장과 일심은 b를 연하여 드러나는 a, 그림 a가 아니라, 그림 a와 b의 전체 바탕 A일 것이다. …(중략)… a와 b가 인연 따라 생멸변화하게 되는 바로 그 바탕 A일 것이다. 이 바탕 A를 우리는 구체적인 사물세계의 상을 여읜 것으로서 공(空)이라고도 부른다.

언뜻 보기에는 청정심을 상징하는 밤하늘의 밝은 달인 a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있으니 불성과 여래장과 일심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한교수는 a와 b보다 더 근원적인 바탕인 A의 실재성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바탕 A는 a와 b와는 달리 상호 연기적이지도 않고 독존(獨存)하며 자재(自在)하다.

물론 한교수의 논리대로라면, 본질자로서의 A는 현상계(a,b)와 상의상대한다. 하지만 이것은 홍창성교수가 말하는 a와 b의 상의상대성과 그 범주가 다르다. 바탕A와 아무 색칠도 되어있지 않은 채 본래 바탕색 그대로인 밝은 달 a의 상의상대성은 A와 a의 연기적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의 상의상대성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다. 곧 a와 b의 상의상대성이 해소되면, ‘a = A’가 된다. 이 속에서 b는 현상세계의 ‘색(色)’의 환영일 뿐  결코 ‘b = A’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A는 b라는 환영을 제거했을 때 도달하는 ‘非b’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불이법은 a와 b의 관계에서만 설정되는 것이지 A와 a 사이에는 동질성으로,  A와 b 사이에서는 배제와 극복의 사이일 뿐이다. 만일 A와 b의 불일불이를 말한다면, 이는 A와 a의 불일불이가 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힌두교에서 말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범(梵) 즉, 브라만(brahman)의 징후가 너무 강하다. 범아일여(梵我一如)는 우주의 최고 원리인 범(梵, brahman)과 ‘참 나’를 의미하는 아트만(我, ātman)이 같다는 우파니샤드(upaniṣad) 철학의 중심 내용이다. 특히 범아일여의 사상을 발전시킨 베단타학파의 불이론(advaita)에 의하면, 아트만 즉 브라만 이외의 일체는 환상이나 착각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곧 범아일여의 진리를 깨닫기 어려운 것은 '마야(māyā)'라 불리는 환영력(幻影力) 때문이다. 이 ‘마야’는 인간의 오관을 가리고 흐리게 하여 자신의 본래 진면목을 감추어 볼 수 없게 만든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을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 avidhyā)’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개인은 자신의 ‘무명’을 벗어났을 때 ‘범아일여’의 진리를 보게 된다. 한교수의 논리 속에서 그림 b는 ‘마야’라는 환영력의 소산(所産)일 뿐으로 ‘무명(無明)’이다. 하지만 무명은 깨달음과 상의상대의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극복과 배제의 관계일 뿐이다.  
 
따라서 바탕 A가 그 위의 그림(a,b)과 불일(不一)이면서 불이(不二)이다라는 한교수의 이야기는 ‘공(空)’과 ‘색(色)’의 불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과 ‘현상’의 불일과 불이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b인 어둠의 밤하늘은 ‘무명’의 상태이며, a의 밝은 달은 이 무명과 대립되는 ‘참 나’이고, A인 바탕은 청정무구한 우주의 본래적 최고 원리인 브라만(梵, brahman)이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교수가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심(眞心), 진여심(眞如心), 일심(一心) 등의 개념을 ‘아트만’과 같은 실재론적 시각에서 수용하고 있는 것을 넘어서, 불교의 ‘마음’과 ‘깨달음’의 목적과 내용을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범 힌두이즘적 핵심 개념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교수가 주장하는 ‘마음을 깨닫는다’는 의미가 ‘범아일여(梵我一如)’의 복제품이라는 근거는 홍창성교수의 비유에 대한 한교수 반론의 다른 부분을 살피면 보다 명확해진다.

한자경교수에 의하면, 홍교수는 연기와 공의 논리는 번뇌와 염오심에 대해서뿐 아니라 불성과 청정심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중략)… 검은 밤하늘이 염오와 번뇌이고, 밝은 달이 청정이고 불성이라고 하자. 수묵화에서 밝은 달을 그리는 방법은 달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검게 칠함으로써 달을 밝게 드러내는 것이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그 어둠을 배경으로 그것 아닌 것으로서의 밝음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교수는, 홍교수가 이 바탕 A, 공(空)을 잘못 이해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홍교수가 “나는 불교전통의 일부에서 부정적 개념에 불과한 공을 실체화하는 오류를 범하고서는 이 공을 마치 ‘우주의 근원이자 절대적인 객관적 실재’라는 바라문교의 브라만처럼 해석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단호하게 반대한다. 즉 공을 ‘부정적 개념’일 뿐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그의 사유가 a와 b의 상의 세계, 그림에 머물러 있고 아직 a와 b의 공통의 바탕 A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교수의 시각이 홍교수의 지적과 다름이 없다는 스스로의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교수의 이야기대로라면, a, b와 달리 바탕 A는 상의상대하지도 않으며, 다시  a와 b 모두를 아우르는 보편의 절대적 근원자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와 b와 같이 현상계의 모든 것이 연기에 의한 상의상대(相依相對)임에도 그 본질적 근원인 바탕 A만은 현상계를 뛰어 넘는 절대적이고 유아(唯我)적인 실재가 된다. 이것이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시각과 무엇이 다를까? 또한 일체만물에 대한 무명이 '마야(māyā)'라 불리는 환영력(幻影力)의 소산이며, 그 이면에는 본질적 진실인 브라만이 있다는 범아일여와 변별점이 무엇인가?

다시 홍창성교수가 이야기하고 있는 달을 그리는 법을 살펴보자. 수묵화에서 달은 주변을 검게 칠함으로써 드러난다. 곧 달은 다른 색으로 염오되는 것이 아니라 한교수가 말하는 바탕의 흰 종이색일 뿐이다. 곧 바탕A가 상징하는 브라만의 청정무구함 그대로이다. 단지 어둠과 상의상대하여 드러날 뿐이다. 실재하는 불변인 바탕의 브라만과 그림 속 염오되지 않은 바탕색의 달이 같은 것이라면, 그 드러남이 어둠과 상의상대할 뿐, 그 본질은 브라만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실재’가 아닌가? 이 달이 ‘참 나’를 의미한다면, 이는 브라만과 마찬가지로 본질적 불변의 실재인 아트만이지 않는가? 여기까지 논리가 전개된다면, 이것은 불교인가 아니면 힌두교인가?

사실 불교와 힌두교는 사촌지간이다. 불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용어개념들은 힌두교와 공유하고 있거나, 힌두교로부터 차용된 용어들이고 현상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교설들 다수는 힌두교와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불교와 힌두교의 상호 관계성은 대립적이기도 하고 또한 상호 교섭적이기도 하다. 명확한 ‘이해(understanding)’를 하지 못하고 수행과 참구의 끈을 놓치면 미묘한 혼란의 무명으로 빠져 든다.

결국 이와 같다면, 한자경교수는 자신이 말하는 ‘마음을 깨닫는 것’이 힌두교의 수행목적과 동일하다는 일종의 커밍아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본래 진면목의 ‘마음 찾기’라는 한국 불교의 깨달음이 한자경교수의 시각과 같은 것이라면, 이것은 한국불교 전체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사상적 아웃팅이다. ‘참 나'인 아트만조차도 부정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다른 모든 철학사상으로부터 불교가 구별되는 변별점이자 동시에 불교의 근본사상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아와 연기의 법에 따라 실재성이 없는 공을 부정하고 범아일여의 방법론으로 ‘참 나’를 찾는 것은, 불교의 핵심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현응스님의 주장처럼 조계종의 종명을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국 불교(佛敎) 조계종’이 아니라, ‘한국 선교(禪敎) 조계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핵심 설법을 부정하며 어찌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물론 마음의 실재를 인정하고 범아일여의 시각에서 수행한 우파니샤드 수행자들이 잘못된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모두 헛된 수행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수행 참구를 해보면 그것은 그것대로 깨달음의 성취가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수승한 깨달음이 가지는 힌두교와의 변별점을 우리는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도저히 그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면 수행방식 전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며, 그래도 안 된다면 다음 생을 위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보다 더 엄밀하게 ‘이해(understanding)’하기라도 하자.  

크게보기

2. ‘빈 마음(空心)’이 원효의 일심(一心) 아닌가?

이렇게 한자경교수가 인정하는 아트만과 같은 ‘참 나’의 실재성과 ‘마음 깨닫기’라는 수행 목적이 만나면 매우 그로테스크한 극단적 유아론(唯我論)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서양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한교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아론은 라틴어의 solus(오로지 하나)와 ipse(자신)에게 만들어진 말이다. 즉 오로지 자기 자신 하나뿐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주관적 관념론이 철저하게 자신의 입장을 추진해 나가면 자기 자신의 그 의식만이 있을 뿐이라는 결론, 즉 유아론[Solipsism, 唯我論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다 객관적 현상세계 일체가 모두 연기(緣起)에 의한 무아의 공(空)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회의론과 겹쳐지게 된다면, 어느 순간 이것이 ‘깨달음’인지 아니면 혼자만의 ‘착각’인지 혼란스러운 문제로 귀결될 우려가 매우 높다.

대표적으로 화엄경의 매우 유명한 구절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어떻게 기괴하게 변했는지 살펴보자. 먼저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

놀랍게도 한국의 대표적 백과사전인 두산세계백과 사전에는 이 일체유심조를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으로,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일컫는다”라고 풀이를 한다. 가히 이 정도면 이제 ‘참 나’나 ‘마음’은 세계의 창조주인 기독교의 야훼나 브라만의 지위를 점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해와 달은 물론이고 산이며 바위와 물 등 객관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우리 마음의 관념작용(mental ideation)에 불과하다니, 이것은 관념론 중에서도 너무 지독한 주관주의의 극치이지 않는가. 과연 우리는 이와 같은 극단의 주관적 유아론을 불교의 기본교리로 인정할 수 있는가.

객관세계의 공성(空性)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실재하는 ‘참 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 해탈이라는 한자경교수의 논리는 이와 같은 주관관념론적 유아론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결단코 불교의 세계관이나 깨달음의 실상이 아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불교적 해답은 원효에게서 들을 수 있다.

원효가 만년에 주석한 <금강삼매경론>에는 이 ‘마음’에 대한 원효의 깨달음이 더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원효는 금강삼매경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생은 본래 ‘마음’이 상(相:모습)을 떠났음을 몰라서, (衆生本來迷心離相)
모든 상에 치우쳐 취하고자 생각이 움직여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遍取諸相動念生心)
따라서 먼저 모든 상을 깨트려 상을 취하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 (故先破諸相滅取相心)

고 말한다. 또한 經 <무상법품>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마음’과 ‘나’를 버리게 하니(令彼衆生皆離心我), 모든 ‘마음’과 ‘나’는 본디 비어 적막할 뿐이다(一切心我本來空寂)” 라는 구절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인다.

만약 ‘빈 마음(空心)’을 얻으면 마음이 허깨비를 만들어 내지 아니한다, (若得空心心不幻化)
허깨비도 없고 변한 것도 없는 것이, 곧 생김 없음을 얻는 것이다,(無幻無化卽得無生)
생김 없는 ‘마음’은 변하는 것이 없는 것에 있다.(無生之心在於無化)

곧, 일체만유(一體萬有)의 환영을 만드는 일체유심조의 ‘마음’을 버리고 진정한 ‘빈 마음’을 얻으라는 것이다. 원효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마야(māyā)'라 불리는 환영력(幻影力)이 다름 아닌, 이 마음의 조화(造化)에서 생긴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또 그로 인하여 인간의 ‘무명’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빈 마음(空心)’을 얻으라는 것이다.

이 ‘빈 마음’이란 ‘여래는 이름만 여래일 뿐 여래가 아니다’는 말처럼 이름만 ‘마음(心)’일뿐 결코 마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어찌 ‘마음’에만 해당이 되는 말이겠는가. ‘참 나’ 또한 이름만 ‘참 나’일 뿐이다. 이것이 아트만이라는 허상에 빠지지 않고서도 진정한 마음을 찾는 깨달음의 수행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원효의 주석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 생김 없는 ‘마음’(無生之心)은 변하는 것이 없는 것에 있다(在於無化)”이다. 곧 주관적 마음속에 제법(製法)의 무상(無常)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제법의 무상함 속에 마음의 허망됨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원효의 사상은 주관적 관념론을 확실하게 벗어나 객관적 ‘중도(中道)’의 실상(實相) 속에 ‘마음’을 위치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철저하게 ‘공(空)’의 입장에서 ‘일심(一心)’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원효사상의 ‘특징’을 드러낸다. ‘마음’이란 ‘공(空)’이나 ‘무아(無我)’와 다름이 아닌 것이다. 이 경지에서 ‘참 나’는 없다. 그저 ‘무아(無我)’가 ‘참된 나’일 뿐이다. 참된 ‘일심(一心)’ 또한 본래공적의 ‘무심(無心)’이다. 이름만 ‘참된 마음’일 뿐이다.

물론 한교수는 원효의 시각으로 바탕 A가 ‘일심(一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 논리이자 해석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교수는 원효의 “무엇이 일심인가? 염정 제법이 그 성이 둘이 아니고 진망 이문이 다를 수 없기에 일(一)이라고 하고, 둘이 없는 자리가 제법의 실(實)이면서 허공과 달리 성이 자신을 신묘하게 알기에(性自神解) 이를 심(心)이라고 한다.”는 말을 일심과 ‘참 나’의 실재성의 근거로써 제시하지만, 원효의 말이 과연 한교수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옳은가?

염과 정, 진과 망의 이원성을 넘어선 불이를 위해 그 바탕에 절대적 유일자인 브라만을 상정한다면, 그림 속 달은 달이 아니라 바탕 A라는 브라만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된다. 이것은 홍창성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그림의 비유와 전혀 다른 설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같은 불교학자 간의 토론이 아니라, 마치 불교학자와 힌두교학자의 토론인 것 같다.

또한 한교수는 <기신론>을 인용하여 “불이의 체를 단순한 비어있음의 공으로만 간주하는 것을 일종의 아견(我見)으로 간주되며, ‘허공이 여래성이다.’라는 주장, ‘진여열반이 곧 공이다.’라는 주장은 모두 삿된 집착이다”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한교수가 말하는 것과 달리, 무량공덕을 갖춘 불공(不空)의 진여법신이라는 것은 바탕 A의 브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불이색(空不異色) 색불이공(色不異空)처럼 그림 속 덧입혀진 채색(彩色)이 염오(染汚)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곧 진여불공의 충만한 ‘법계(法界)’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그래서 일체유심조라는 환영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법계의 본래성을 살피라(應觀法界性)’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마조선사는 ‘평상심(平常心)이 도’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구름 걷히면 그곳이 바로 청산’이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구름도 청산도 모두 산하대지인데 왜 구름만 가지고 탓하는가. 푸른 산에 흰 구름 한쪽 걸려 있어야 비로소 멋진 한 폭의 그림이 되지 않는가. 

홍창성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현상세계의 그림 밖으로 벗어나 그 바탕에 절대적 실재를 상정하는 것은 브라만을 상정하는 것으로 불교가 아니다. <기신론>에서 말하는 ‘불공’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되는 것이 옳다.     

3. 웩더독(Wag the dog) : 꼬리(작용)가 몸통(본체)을 흔드는 것이 불교 아닌가?

사실 한교수가 주장하는 궁극적 ‘일자(一者)’의 의미는 원효적이라기 보다 의상적이다. 의상의 <법성게(法性偈)>에는 이 ‘일(一)’에 대한 확고한 깨달음이 있다. 하지만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바라 본 일체법계의 실상이지, 욕색계를 넘어서는 절대적 ‘공계(空界)’의 실재성이 아니다. 

따라서 한교수가 말하는 그 일자(一者)자가 브라만의 현현이자 ‘내 마음’의 주인인 ‘참 나’적 아트만이라면, 이는 명백하게 오답이다. 실제 한교수는 일체의 허망분별상 너머 그 상의 바탕인 불이의 ‘체(體)’가 있음을 주장한다. 궁극의 근원이고 궁극의 ‘체(體)’인 마음을 왜 애써 부정하려 하는 것일까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홍교수가 쓴 글이 절대 불이의 마음을 부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현응스님이 마음은 불명확하고 애매하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이 이유가 염정을 여읜 불이의 마음, 주객분별, 자타분별을 넘어선 절대의 마음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반문하며, 이 때 경전 중에서 여래장계 경전이나 유식계 경전은 아마도 모두 배제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나아가 화엄과 천태의 바탕, 궁극적으로는 선의 바탕이 되는 불성사상과 일심사상의 경전들은 어쩌면 현응스님이 이해하고자 하는 경전목록에서 모두 제외될 것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이는 불교에 대한 명백한 오독(誤讀)이며, 이해(understanding)의 부재이다. 불교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체(體)’로 보는 한교수의 시각을 부정하는 것일 뿐이다. 심(心)의 문제에 있어서 부처님의 ‘무아(無我)’와 힌두교의 아트만 사이의 가장 큰 변별점은 이 ‘참 마음(眞心)’을 체(體)로 볼 것인가, 용(用)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에서 나타나며, 이 ‘참 마음’의 주체가 실체로써 존재하는가 아닌가로 구분된다. 힌두교의 관점에서 ‘일체유심조’는 아트만이라는 ‘참 나’의 몸통(본체)이 흔드는 꼬리(작용)라면, 불교적 관점에서 본체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하여 실재하지 않는 ‘나’라는 본체(本體)가 분별상(分別相)으로 생성된다고 말한다. 주객전도(主客顚倒)의 논리가 ‘무아론’의 핵심이다.

이것을 한교수가 지목하고 있는 여래장계 계열의 경전과 유식계 경전에서 말하는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심(眞心), 진여심(眞如心), 일심(一心) 등의 개념에 적용해 보자. 특히 근본이 되는 불성과 여래장의 개념을 ‘본체(本體)’로 본다면 이는 곧 아트만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불성과 여래장의 유식불교적 분석인 ‘아뢰야식’을 살펴보면, 결코 이 무의식의 세계가 연기법과 무관한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체(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의 가장 심층적 무의식인 8식 아뢰야식은 모든 종자(種子)를 갖춘 가능성의 무의식이다.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그 가능성을 능장(能藏)·소장(所藏)·집장(執藏)의 셋으로 요약한다. ‘능장(能藏)’은 만물을 인식하는 근본원인을 담아 둔 것으로, 이 근본원인인 종자를 능동적으로 보존하고 있고 또 싹을 틔울 수 있는 능력이다. ‘소장(所藏)’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감각적 기관으로 획득된 전5식(前五識)과 이를 토대로 하는 제 6식인 의식(意識), 그리고 자아의 에고인 제7 말라식에 의하여 판단된 모든 정보를 훈습(薰習)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장(執藏)은 이 심층 무의식이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상주하기 때문에 제7 말라식에 의하여 진실한 자아인 양 집착하고 오도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속에서 ‘소장’은 인간의 감각기관과 에고의 자아와 상의상관의 관계를 가지며 성립된다. ‘집장’은 아뢰야식 본래의 성질이라기보다 제7 말라식과 연관된 오도된 집착이다. 모두 본질적 ‘실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오로지 ‘능장’만이 본래적이고 근원적이다. 하지만 이 능장은 ‘체’가 아니다. 무의식이 가지는 인식 능력의 종자적 측면이다. 이 능력은 인간의 무의식이 가지는 ‘작용(作用)’으로서의 능력일 뿐이다. 결국 ‘불성’과 ‘여래장’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아뢰야식’은 ‘능장’이라는 인식능력의 종자적 ‘작용성’이 핵심이다. 이 ‘능장’의 작용으로 인하여 무의식의 ‘본체(本體)’인 ‘훈습된 소장’을 바로잡으며, 에고의 말라식에 의한 집장을 털어내는 것이 된다.

곧 능장이라는 ‘작용’으로 인하여 훈습되고 에고에 집착된 ‘본체(本體)’가 비로소 ‘참 나’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몸통(본체)이 꼬리(작용)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작용)가 몸통(본체)를 창출하는 것, 그래서 본체의 ‘참 나’란 작용(作用)의 소산이기 때문에 본질적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무아(無我)’가 되는 것이 아닐까?

부처님이 <열반경>에서 설한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란, 모든 중생이 ‘아트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모두 깨달을 수 있는 ‘능력(작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속에서 윤회의 주체가 되며 해탈한 본체가 되는 ‘참 나’란 훈습과 자아의 에고로부터 벗어난 소장과 능장이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여래장계와 유식계에서 말하고 있는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심(眞心), 진여심(眞如心), 일심(一心) 등의 개념 등은 중관계 경전이 말하고 있는 무자성(無自性)의 공성(空性)과 충돌하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객관세계의 무아와 연기의 공성을 어떻게 인간 내면의 마음속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자경 교수는 현응스님과 홍창성교수의 논리 속에서 여래장계 경전이나 유식계 경전은 아마도 모두 배제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기 이전에, 한교수가 말하고 있는 주객분별, 자타분별을 넘어선 절대 마음의 ‘실재성’이 나가르주나(용수) 존자의 중론과 반야경과 금강경 등 중관계 경전을 배제시키고 있지 않은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용수존자의 시각에서 불성(佛性)과 일심(一心)을 본다면, 불성(佛性)은 모든 중생이 가지고 있는 깨달음의 가능성이자, 이를 통하여 자신의 본체를 부처로 확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자 작용력이다. 일심(一心)이란, 제상(諸相)에 치우쳐 취하고자 생각이 움직여 만들어진 ‘마음’을 바로잡아, ‘마음’과 ‘나’를 본래대로 공적(空寂)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4. 아트만적 ‘마음’의 실재성은 간화선의 종지(宗指)를 해칠 수 있다.

한자경교수의 범아일여의 ‘마음 깨닫기’는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궁극적인 요소로서의 법의 실체는 항구하게 존속한다”는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의 시각과도 매우 유사하다. 이는 한교수와 같은 시각이 이미 불교 초기부터 나타나는 힌두교와의 상의상대(相依相對)적 교섭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또한 이것은 다시 불교의 중국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로 전화한다. 대승불교의 시각에서 법체항유(法體恒有) 즉 우주의 본질적 근원인 전체로서의 브라만은 부정되는 반면, 이것의 개인의 본체인 아트만적 요소는 유일한 실재이자 ‘참 나’의 본래 진면목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하지만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객관적 실재로서의 브라만이 부정되고 주관적 또는 주체화된 절대적 자아는 자칫 매우 그로테스크한 극단적 유아론(唯我論)에 빠질 수 있다.

한교수는 이번 깨달음 논쟁을 보면서 불교학계뿐 아니라 불교계 그리고 수행하는 스님들까지도 혹시 자기 마음에 대한 확신, ‘심즉시불(心卽是佛)’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문제가 선학이 아니라 교학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만 동의를 받을 수 있다. 중관계 경전의 공성(空性)을 무시하고 여래장계와 유식계의 경전에 나타나는 불성(佛性)을 실재적 아트만의 본체로 인식하며, 마음이 곧 그 아트만의 작용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심즉시불(心卽是佛)’의 올바른 의미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간화선의 수행방식 조차도 스스로 부정해 버리는 자기모순을 발생시킬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이는 오로지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심(眞心), 진여심(眞如心), 일심(一心) 등에 대한 잘못된 경전이해로부터 비롯된 ‘유아론’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독소로 인하여 유아론적 독단(獨斷)은 도리어 깨달음 자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현응스님이 제기하고 있는 잘못된 ‘깨달음의 방법’, 즉 ‘불명확한 마음’과 ‘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 부정확하다’는 의미는 이와 같은 유아론적 수행론에서 연유될 확률이 매우 높다. 중국 선종의 ‘마음 깨닫기’ 수행론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한국 선불교에도 이와 같은 문제는 여실하게 나타난다. 현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인 전강(田岡)스님이 하셨다는 어느 대중법회의 법문을 살펴보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시골 농부가 어디에서, "불도를 닦으면 부처가 된다"는 소리를 듣고 부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부처가 무엇인지를 몰라 궁금해 하던 차에 가까운 어느 절에 큰 스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여쭈었다.
 

"스님, 부처가 무엇입니까?"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니라" 스님께서 답하셨다.
그런데 이 촌로는 "짚신시불이니라"로 잘못 알아들었다.
"어째서 짚신이 부처라고 하시는가?" 촌로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자신이 무식하여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감히 되묻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 의심이 떨어지질 않고, 밥을 먹어도 그 생각, 똥을 누어도 그 생각, 밭을 매도 그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달이 차고 해가 저물었다.
어느 날 노인이 확연하게 깨치고는 이르기를 "과연 짚신이 부처로구나!" 하였다.

이 글은 페이스북에 필자의 페친이 올려놓은 전강스님의 대중 법문 중 하나이다. 아마도 전강스님은 당나라 무염선사의 제자인 구정(九鼎)스님의 일화를 살짝 바꾸어 설법을 하신 듯하다.

하지만 분명 큰 스님은 ‘즉심시불’이라고 했으니 ‘짚신이 부처’라는 것은 농부가 헛되이 잘못 들은 소리이다. 그런데 이 헛소리를 참구하고 참구하고 또 참구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선사의 가르침이나 화두 공칙은 그저 입선(入禪)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이다. 비록 잘못된 화두라 하더라도 이를 부여잡고 일심(一心)으로 정진하고 정진하면 본래의 ‘참 나’가 있어 본래 진면목의 ‘마음 찾기’가 실현될 수 있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짚신이 부처이든 아니든 모든 것은 내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고 확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벽암록>이니, <무문관>이니 하는 공안집의 화두를 참구할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유아론의 독단에 빠지게 되면 이 ‘마음의 깨달음’은 화두 참구라는 간화선 본래의 수행기풍마저 부정하는 자기모순으로 직결된다.

똑같은 논리로 어느 배우다 만 학생이 있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견성’을 ‘개 짖는 소리(犬聲)’로 오해하여 ‘개소리를 참구해도 성불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치자. 깨달음이 본래의 ‘마음 찾기’라면 이 또한 일심(一心)으로 참구하고 또 참구한다면, 그 마음의 본래성을 깨달아 실제 성불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이렇게 객관 세계에 대한 극단적 회의론과 주관의 유아론이 만나면 오로지 자기 정신세계 안에서 자기도취의 그 무엇으로 빠져 들어갈 우려가 너무 높은 것이다.

물론 즉심시불(卽心是佛)이나 비심비불(非心非佛)이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짚신에서도 부처를 볼 수 있고 개 짖는 소리에도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있다. 하지만 유아론적 독단(獨斷)에 갇힌 채 실재하는 ‘참 나’를 찾는 마음 깨닫기는 모래를 쪄서 밥을 짓고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겠다는 무모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의 설일체유부의 시각이나 객관적 우주의 근원자인 브라만을 인정하는 범아일여의 관점이 더 올바르지 않는가 싶다.

5. 나오며 : ‘참 나’의 마음을 찾고 닦는 것은 북종선(北宗禪) 아닌가?

한자경교수는 깨달음 논쟁의 문제의 발단이 바로 이 ‘마음’과 ‘진여(眞如)’의 실재성 문제에 있으며, 그 해결의 실마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결과론의 측면에서 동의한다. 실제 현응스님도 당신의 글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 에 대해 전국선원수좌회의 반대성명 등이 잇다르자, 다시<‘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 반론에 대한 답변>을 통하여 조계선풍(남종선)이 ‘간정(看淨)’ ‘간심(看心)’을 강조하는 수정주의(修定主義)를 비판하고 있음을 재차 강조한다. 응심입정(凝心入定), 주심간정(注心看淨), 기심외조(起心外照), 섭심내증(攝心內證)은 북종의 수행법이라 지목하고, 이러한 수행법은 ‘닦는 깨달음’이며, ‘상대적인 수행법’이라 규정하면서 이를 남종선(南宗禪)에서 맹렬히 비판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조계선풍이 남종선(南宗禪)이라 불리는 이유다.

한자경교수가 이야기하고 있는 아트만적인 ‘참 나’와 일심(一心), 그리고 진여(眞如)가 이 북종선의 섭심내증(攝心內證)하는 수행법을 끌어당기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응스님의 지적대로, 6조 혜능의 ‘한 물건도 없는데 무슨 먼지를 닦아내랴’라는 조계선풍은 회양 스님의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一物不中)’, 마조 스님의 ‘도는 닦는 것이 아니다(道不用修)’라는 조사가풍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혜능 스님의 ‘무념을 기본정신으로 삼는다(無念爲宗)’는 그 ‘무념’은 망념이 없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공심(公心)’이며 ‘일심(一心)’이다. 또한 그 망념은 『금강경』에서 말한 그 사상(四相=아, 인, 중생, 수자)이다. 이러한 망념은 닦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반야지로써 곧바로 통찰하여 깨닫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제방선원의 수선현장에서 ‘응심입정 주심간정 기심외조 섭심내증’이라는 북종의 참선을 하는지, 반야지를 통해 돈오와 견성을 하고자 하는 조계선풍의 참선을 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현응스님의 비판은 남종선의 종지를 지키는 조계선풍의 정체성 문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나아가 깨달음의 방법과 내용, 그리고 지향을 살피는 매우 의미 있는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박  용태 (청운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