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석법사
phoseok@hanmail.net 2015-10-01 (목) 09:58그리스신화에는 술을 신(神)들만 마실 수 있었는데 ‘문화의 신’이자 ‘술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가 인간에게도 허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문화의 신과 술의 신이 동일하다거나 신들만 마셨다는 것을 보면, 술이 신성한 존재였음이 분명합니다.
기독교에서 포도주는 그 빛깔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상징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의식인 성체성사(聖體聖事)를 합니다. 그리고 성체성사에서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12제자에게 하신 말씀을 사제가 외웁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개신교가 술을 금지하는 것에 비하면 천주교는 매우 관대한 편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천주교 사제들은 포도주는 물론 다른 술도 마시고, 심지어 담배를 피워도 흠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에는 출가는 물론 재가에게도 ‘술을 마시지 말라’는 불음주계가 있습니다. 불음주계는 오계에 속하는 아주 엄중한 계목이지요. 그런데 술이 음료로 취급될 정도로 피할 수 없는 세상이 되다보니 요즈음에는 불음주계를 지나치게 마시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조선조 명종 때,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린 진묵(震黙,1562-1633)대사는 술을 무척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스님은 마셔서 취하면 술이고 그렇지 않으면 차(茶)라고 하여, 술을 곡차(穀茶)라고 했답니다. 누가 술이라고 하면 절대로 마시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스님이나 불자들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하면 곡차라는 이름으로 술을 마시는 빌미를 대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시인 신천희는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라고 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절절히 표현했습니다. 또, ‘술은 하늘이 내린 복’이라느니 '술은 모든 약 가운데 으뜸'이라느니 하는 찬사는 역사와 함께 함께 기록한 말입니다.
그리고 예부터 술은 풍류를 즐기고 자연을 벗 삼은 수많은 호걸들의 벗이었고, 특히 술이 정신신경계를 자극하는 특성 때문에 문화예술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촉진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술이 인간관계, 나아가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한 순기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술이 가진 약리작용으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스트레스 해소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이점들이 꼭 술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명상(冥想)이나 선정(禪定)에서 얻는 예술적 창작력은 술에서 얻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술에서 얻을 수 있는 약리작용을 대체할 더 좋은 식품이나 약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지나친 음주는 엄청난 해악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술을 즐기다 보면 사람이 마시는 술을 술이 마시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통제 불능상태가 되어 불행을 불러오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음주를 원인으로 하는 질병과 사건 사고는 물론이고, 특히 알코올중독자를 둔 가족이 겪는 가정폭력 등의 피해를 생각하면 술을 왜 마셔야하는지가 솔직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부모의 음주행태는 자식에게 상속된다고 합니다. 부모의 음주로 피해를 당해온 자식은 어릴 적엔 부모처럼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성장과정의 불안감·신뢰감 결여·소극적인 대인 관계 때문에 보통 가정의 아이들보다 문제해결 능력·인지 기능·또래 관계·학습 능력 등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이런 결과가 그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의 음주행태를 따라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술을 즐기는 싱갈라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여섯 가지 손해가 생기느니라. 재물이 줄어들고, 병에 걸리기 쉽고, 남과 자주 다투게 되고, 좋지 않은 버릇이 드러나 평판이 나빠지고, 성질이 나빠지며, 지혜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싱갈라야. 술 마시는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사업이 날로 줄어들 것이니라.”(<장아함경> 선생경)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음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연간 7조원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도한 음주에 따른 조기사망과 생산성 감소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20조원을 넘는 위험수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각국 주요 보건의료 통계자료(OECD Health at a Glance 2013)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인이 한해 한사람이 평균 약 9ℓ의 알코올을 마신다고 합니다. 이를 보통 소주로 환산하면 1백24병, 캔 맥주로 환산하면 3백56캔을 혼자서 마신다고 하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엄청난 양입니다. 또 다른 통계를 보면 우리가 세계 11위의 술 소비국인데, 이는 양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알코올 농도로 환산하면 아마 선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릇된 음주습관이 건강과 재산을 잃고 사회에도 적잖은 해악을 끼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우리 주위에서 보고 듣고 있습니다. 술을 마셔서 얻는 즐거움은 감각적인 쾌락에 불과합니다. 이런 즐거움은 불자가 속히 버려야하는 번뇌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예부터 술은 ‘백독의 두령'이자 ‘악행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