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석법사 | phoseok@hanmail.net | 2015-09-03 (목) 11:01
‘단박에 얼추 했으니 참 대단하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십니까?
여기서 ‘단박’은 스님들이 수계나 참회의례의 갈마(羯磨) 용어인 단백(單白, 사안이 경미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끝냄)이 변한 말로 ‘그 자리에서 다’, ‘한번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불모(佛母)가 불상의 조각이나 탱화, 그리고 단청을 모두 잘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다 배우지 못하고 두 가지만 할 줄 아는 사람을 어축(魚軸)이라고 했답니다. 이 말이 ‘거의 다’를 의미하는 ‘얼추’가 된 것이지요. 세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은 금어(金魚)라고 했답니다. 또 ‘대단’은 부처님을 모신 상단(上壇)이 신중이나 영가를 모시는 중단과 하단보다는 높고 규모도 크며, 공양물도 많이 올리기 때문에 이 말이 ‘크고 엄청나다’는 의미의 ‘대단하다’간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불교의 얼과 문화가 녹아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로 된 부처님의 말씀을 구마라습(鳩摩羅什,343~413)과 현장(玄奘,600~664)이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한 때가 대략 1천6백~1천4백 년 전입니다. 그리고 불경(佛經)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이보다 늦은 삼국시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불경의 간행과 편찬이 왕성했던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당시 식자층의 언어는 당연히 불교용어가 그 기반이 되었을 것임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고려 말에 성리학(性理學)이 들어오면서 유학(儒學)의 언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이 말들도 이미 불교의 영향권에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리고 개화기에 신학문과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지금의 일상어들도 대부분은 고전의 표현을 응용하고 있으므로 그 뿌리는 불교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말의 어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원뜻과 다르게 쓴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된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불교를 배척하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최근에는 종교간 경쟁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우리가 쓰는 일상의 언어에서조차 편을 가르고, 그것이 내말이라고 우기고, 또 그를 왜곡하여 국어사전까지 오염시키고 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교회·성당·천당·장로·집사·전도’와 같은 기독교의 기본용어조차 불교에 뿌리를 둔 말임에도 ‘심금’이니 ‘건달’이니 ‘다반사’니 하는 말이 불교용어라고 기독교인이 써서는 안 된다고 우기는 목사가 있습니다. 또 ‘참회’라는 불교용어가 국어사전에는 ‘죄를 뉘우쳐 하느님에게 고백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을 만큼 우리말의 왜곡과 오염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면서, 과연 불교에서 유래한 우리말이 어떤 것이 있고, 또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말 어원사전이나 일부 신문과 잡지에서 밝혀놓은 것들이 고작 50여 단어를 넘지 않았고, 우리말 속의 불교용어를 따로 모은 책에서도 2백여 어휘가 전부였습니다. 불교학은 물론, 어문학을 다루어 본 일이 없는 문외한이지만, 그저 이런 호기심과 사명감 때문에 여러 종류의 우리말 사전을 샅샅이 뒤지고 이를 불교사전과 그 뜻을 비교하면서 불교에 뿌리를 둔 우리말 어휘 6백여 단어를 정리하여 <불교에서 유래한 상용어 사전>을 2011년에 불광출판사를 통해 출판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몇 가지 말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각색(脚色): 승려의 이력을 적은 문서인 각하색물(脚下色物)의 준말. 고쳐 쓸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음.
강당(講堂): 절에서 경(經)과 논(論)을 학습하는 큰 방이나 건물.
개발(開發):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일. 불성(佛性)을 열어 깨닫게 한다는 뜻.
교회(敎會): 부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 예불하고 법문을 듣는 모임.
기와: 산스크리트어 가팔라(kapala)를 한자로 개와(蓋瓦)로 음역한 것이 기와가 됨.
내색: 눈·귀·코·혀·몸으로 인식한 것. 모양·소리·냄새·맛·촉감은 외색(外色)이라고 함. ‘내색하다’와 같이 씀.
단위(單位): 선방에서 각자의 이름을 붙여 정한 자리. 함부로 고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음.
사랑: ‘상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헤아리다’는 뜻의 사량(思量)이 변한 말.
삭신: 몸을 말하는 색신(色身)이 변한 말. ‘삭신이 아프다’와 같이 씀.
성당(聖堂): 법당이나 불당을 가리키는 말.
천주(天主): 하늘나라의 임금. 3계(界) 16천(天)의 각각의 제왕.
행각(行脚): 수행자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는 뜻.
사전 출판 이후에도 ‘공치다, 내공(內空), 두각(頭角), 몸뚱이, 물주(物主), 상대(相對), 색마(色魔), 습관(習慣), 업둥이, 영생(永生), 자유(自由), 작가(作家), 정제, 종자(種子), 진리(眞理), 차례(次例), 향수(香水), 회통(會通)’ 등도 불교에서 유래된 말임을 확인했습니다.
불교에서 유래한 소중한 용어를 불자들도 잘 모르고, 불교계에서도 소홀히 대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