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인이 조용한 찻집에서 과거 이야기를 ‘비밀’이라고 하며 시작합니다. 예전에 어떤 ‘차’를 취급하는 회사 대표를 찾았더니, "이 차를 사세요. 대만에서 들여온 차로, 대만에도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좋은 차입니다. 그래서 다 사왔습니다."라고 해서 남은 3개를 다 샀다고 합니다.

한 달 정도 지나 일이 있어 다시 가보니 그때 샀던 똑같은 차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회사 대표께서 보관 콘테이너에서 정리하다가 조금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찾아서 가게 가져다 놓은 것이니 사람들이 알면 이것도 금방 없어질 것이니 여유가 있으면 얼른 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뭔가 속는 느낌이 들었지만 점잖은 분이라서 2개를 더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다시 갈 기회가 있어 가게에 찾아갔답니다. 그런데 그때보다도 더 많은 차가 남아 전시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번에는 묻지도 않았는데 회사 대표가 "다 팔렸는데 하도 사람들이 더 달라고 해서 대만 가서 더 사왔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 다음부터 그 가게에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찻집은 이익관계를 중시하는 단순한 장삿꾼이 하는 가게가 아닙니다. 아니 상인이라면 누구라도 신뢰가 중요합니다. 거기에 차는 ‘물아일체’를 이해하는 인성과 품격이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상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상인을 굳이 차인이라고 하나봅니다. 하지만, ‘차’를 가리키고 ‘예’를 가리키면서 그 이면에서는 ‘돈’을 추구하는 것은 표리부동인 듯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 자체가 잘못입니다. 일부 ‘차상’은 ‘차인’이 아니라 ‘장삿꾼’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고 차를 드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차는 공짜로 드셔도 안 되며 지금은 공짜로 나온 차라도 결국 공짜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일부 ‘차상’은 차를 우리듯 ‘차인’들을 우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차는 ‘정직’하지 않습니다.

 
차인의 품격
어떤 찻집에 친구들과 갔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NGO 모임에서 자주 차를 마시며 담소를 하는데 찻값이 적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원 회사를 통해서 차를 취급(점)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차를 싸게 구입하고 수익금은 전액 NGO 공익사업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찻집 직원이 점장의 지시대로 ‘취급점을 하니 우리 가게에 안 오는 게 예의’라고 친구들 앞에서 면박을 줍니다. 몇 달 동안 다녀니면 ‘친분’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차인’으로서 참으로 대단한 예의를 보여줍니다.

‘차상’에게 ‘차’는 뭐고 ‘사람’은 뭘까요? 아니  ‘고객’은 뭘까요? 이유를 더 물으니, ‘차를 싸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고 합니다. ‘차’에 해박한 사람들이 ‘차인’을 표방하면서 결국 ‘돈’ 앞에 쉽게 무너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건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차상’에 대한 어두운 애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애써 외면한 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뭔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수행자에게 짝사랑 같은 일방통행은 비록 상대가 ‘차’라고 할지라도 ‘독’이 되나 봅니다. 법계를 두루 담은 청정한 이슬과 같은 땅의 젓인 ‘차’ 한방울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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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가려진 안나푸르나. 사진=하도겸

떠나는 사람
지금 나를 만나고 싶어하고 그래서 나도 만나는 그런 친구는 도반이어야 합니다. 그런 도반이 나를 떠나도 나는 그들을 도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나를 미워하며 떠나더라도 더 높이 날면 좋겠습니다. 다음생에서 꼭 만나야 할 인연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은 잡지 않고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도 그런 긴 세월의 장기적인 안목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 봅니다.

그런데 누구는 제가 절교했다고 합니다. 언제 한 번 도반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냐고 합니다. 마치 ‘우리 언제 사랑한 적은 있는가?’와 같은 바보같은 질문이지만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인연이 다했다거나 업이 계속된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무늬만 출가승인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이 아닌 상대방을 탓하는 그런 언행 속에는 희망이나 꿈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오직 자신의 선택으로 지금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조차 모르는 스스로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과응보, 인연이라는 요체를 가진 연기법이지만 정해진 법은 없는 것도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복잡해지는 내가 심은 씨앗(인)들에 의해서 감자나 콩 즉 어떤 결과(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돌연변이조차도 있습니다. 시간적 순서성의 결합과 혼돈이라는 물리적 화학적 변용은 이미 우리 안목으로는 예측 불가능할 따름입니다.

다만 그 일이 벌어졌을때 바로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의 튕김보다는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서 강요되지 않는 받아들임이라는 수용성으로 나를 긍정적으로 맑고 밝게 나아가게 하면 좋을 듯합니다. 까닭에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떠나가야 합니다. 적어도 이런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준비’되었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