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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서의현 사태 관련 법인 스님 발표문 전문

참여연대 공동대표 법인 스님 | | 2015-07-20 (월) 09:56

법인 스님(참여연대 공동대표)이 7월 16일  94년 불교개혁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비상대책회의 제1차 토론회에서 발표한 전문을 게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김경호 불자님의 말씀을 들으면 상식적으로 출가자 입장에서 볼 때 굉장히 낯이 뜨거워야 되고 가슴이 뛰어야 되고 자존심도 상해야 되고 화도 나야 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만 너무 말씀이 내용들이 전부 옳은데 저 말씀들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지금 분노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제가 왜 이렇게 담담할까요? 왜 담담한 걸까 생각해 보니까 내 자신에게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았나? 자책감이 듭니다.

 

김경호 불자님의 모든 분석, 진단 전적으로 옳습니다. 94년 개혁 당시에 일문 스님도 계셨고 그 옆에 동출 스님도 계셨고 저도 30대 초반 나이로 고군분투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이제 출가 승가 내에서 일정 위치에 있게 되었는데, 지금 종단은 그야말로 도덕적, 재정적 온갖 부정부패, 일당독재 그리고 부정한 정권과 불교 지도층의 수많은 결함들, 80년대식의 집단 물리력 행사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저나 일문 스님이나 동출 스님 같은 세대들은 한번쯤 환속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수행자의 자괴감 속에서 그런 괴로움의 시대를 보고 있습니다.

 

사회도 혼란하고 암울한 시대고 사회의 독재와 부패가 불교계의 독재와 부패와 맞물려서 공생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다시 바라보고 있습니다. 80년대부터 불교계 재가단체들이 벌여 왔던 민주화운동과 스님들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종단 민주화의 노력들이 꾸준하게 모아져서 그것이 분출된 것이 1994년이라고 하는 것들은 여러분도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2015년 서의현 사태가 왜 이렇게 일어났는가? 화엄경에 한 티끌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말이 굉장히 긍정적인 표현인데 한 티끌에 우주가 담겨있다, 일미진중함시방이란 말을 부정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서의현 재심에서 보여준 반칙, 편법, 탈법이 합리적 과정인가? 절차를 위반했는가? 이걸 논할 때가 아닙니다. 승려대회 때 멸빈이 됐는가? 안 됐는가? 이런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크게 보면 이것은 개혁회의 21년 동안 또 다시 누적된 모순들이 분출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20년 동안 개혁회의의 반성 기간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개혁회의 출범 이후에 소위 책임 있는 단위, 공적인 단위에서 개혁회의 5대지표가 실현되어야 할 시기라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종단의 가장 큰 골격이 총무원인데 총무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구본사입니다. 교구본사가 각 교육기관이나 선원, 각급 일선 관리사찰에서 정법 불교를 하고 있는가? 청정한 교단이 구현되고 있는가? 어떤 민주적 공의제도가 정착되고 있는가? 지난 20년 동안 조직과 체제를 가지고 있는 교구 단위에서 이런 것들이 튼실하게 됐으면 이런 사태가 과연 일어났을까?

 

그러지 못했습니다. 종단이 정치화되고, 정쟁화하고 특히 94년도 개혁회의를 했던 분들이 교구본사 주지도 맡고 종회에도 들어오고 각자 소임을 맡았는데 저는 이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자리가 나쁜 게 아니라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잘못입니다.

 

간혹 제 글에 악성 댓글을 다시는 분이 ‘법인스님 사판승 그만하시오.’ 그럽니다. 참, 무엇이 사판인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지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 일지암 암자도 사판이라고 하면 저는 일지암까지 내놓으면 갈 곳이 없는데 참 큰일입니다. 그렇듯 사판 소임을 맡는 게 잘못이 아닙니다. 그 소임에 있어서 정법으로 소임을 보지 못하고 도덕과 윤리를 벗어나서 소임을 보지 못하고 대중공의로 소임을 보지 못한 그 자체가 잘못인 것입니다.

 

물론 20년 동안의 누적된 모순들은 각 단위에서, 특히 책임 있는 단위에서 정법불교가 되지 못하고, 청정한 승가가 되지 못하고, 대중공의에 의한 적법에 입각해서 되지 못했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자승 총무원장이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는 부분, 도법스님께서 자랑스러운 부분 이것은 굉장한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이걸 짚지 않으면 우리가 앞길을 한 치도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불교는 종교입니다. 종교의 핵심 내용이 뭘까요? 여러분, 종단개혁 5대 지표에서 사회적 역할 확대가 있는데 저는 그게 상대적으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스님이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복지관 운영 참 잘합니다. 반짝반짝 아이디어를 내고 시설에 있는 사람들 참 헌신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헌신적으로 시설운영하는 스님이 엄청난 고가의 일반 국민정서에 반하는 고급자동차를 굴리고 다니고 해외여행을 빈번하게 자주 하시고, 과소비와 과소유를 하시고, 범계행위를 예사로 한다면 국민과 불자들은 어느 쪽에 힘을 실어줄까요?

 

종교인은 하는 것보다 하지 않아야 될 것을 안 해야 됩니다. 지금 이 집행부는 바로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도덕, 윤리적으로 부정부패, 반칙을 하면서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 소외자를 보듬는 것처럼 그런 행보를 적당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악스럽고 교활한 짓입니다. 선한 외피를 쓰고 못된 짓 하는 이런 틀 안에 걸리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개혁회의의 5대 지표라고 하는 것 가운데 청정교단 즉, 하지 않아야 될 것을 하지 않는 그런 불교가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야기할 것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서의현 재심파동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누적된 모순이 분출된 것입니다. 이 사태를 불러온 원인 제공을 누군가가 함부로 했겠습니까? 이 정도 파장을 예상하지 못하고 했을 것 같습니까? 원장 스님 주변에 워낙 머리 좋은 분들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다 예상한 거라고 봐야 합니다. 자신 있게 저지른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공하면 그 다음에 아주 교묘하게 개혁회의 5대 지표를 무너뜨리고 무시하는 행보도 충분히 예상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이 서의현 감형이란 반칙은 저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집중해야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까 김경호 불자님이 이야기하셨지만 여전히 개혁회의 5대 지표가 유효하다고 봅니다. 개혁회의 5대 지표는 1994년에 착안이 된 것만은 아닙니다. 현대적 용어로 재구성한 것이지요. 정법불교라고 하는 게 뭡니까?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시대에 맞게끔 재해석해서 하자는 불교잖아요? 당연히 해야 되고 94년도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의 문제가 아니고 영원히 해야 될 문제입니다.

 

청정교단이란, 종교의 생명이고 불자와 시민들의 신뢰와 존경의 척도입니다. 청정이라고 하는 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이 민주적 교단 운영입니다. 율장에 입각했듯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대중 공의로 교단을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교단의 자주와 정권에 예속되지 않고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문은 국왕에게도 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정신은 부처님 당시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지표입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실천도 중요합니다. 불교의 핵심이 자비 아닙니까? 이렇듯 5대 종단지표는 불교의 핵심을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이것을 출가와 재가자들이 함께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종단의 장기적 목표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장기적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일주일 정도 뒤에 있을 100인 대중공사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들이 그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냉소하거나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거기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오늘도 저는 지방에 두 군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공의를 모아주시고 기자회견 성명서를 발표해 주시라고요. 일주일 동안 저는 전국 각 지방 단위에서 의로운 의병운동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의현 감형, 이것이 반칙이고 편법이라는 걸 확인해서 대중 공의에 의해서 결정 자체를 무너뜨리고 다시 논의하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고 나면 94년도 개혁에 동참했던 분들 그리고 불교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성하고 참여하고 반드시 대안을 마련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 대안운동에 지속적으로 우리가 힘을 모아야 된다고 봅니다.

 

여기서 공업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크게 보면 공업이지만 저는 이번 사태를 볼 때 불교 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조계종의 선종이라고 하고, 선종은 금강경을 중시하는데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고 하잖아요 그 무엇에 갇히지 말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로 하라고. 그런데 다 갇히고 있더라고요. 문중이다, 종회에서 내 편이다, 교구본사 등등. 왜 이렇게 잃을 것이 많은가 모르겠어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낭떠러지에서 손 놓아라고 하는데 그냥 조그마한 자리 하나 놓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이제 금강경을 소위경전으로 하지도 않고 선종도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가 있습니다. 바로 공업(共業)입니다. 공업이 이상한 논리를 해석되고 있더라구요. 불교의 연기법을 제대로 해석 못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법은 1차적 책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주요 책임, 핵심 책임, 1차적 책임을 말하고 부수적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부 공업이라는 말로 모두를 공범자 만들어버리고 주범을, 주범의 악행을 희석화시키는 희한한 교리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앞으로 화두로 삼아야 될 것 같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의 단기적 목표는 곳곳에서 일주일 동안 우리들이 전국의 불교를 걱정하고 이번 사태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반대하는 모든 출가, 재가자들을 모아 내서 그 목소리들이 가시화 되고 그 가시화된 힘이 총무원과 총무원장의 주변에 전해지도록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까 김경호 불자님이 계율을 지키지 않는 스님들 굶겨 죽이라고 했는데, 교리적으로는 맞습니다. 재가 불자들이 해야 될 것은 두 가지입니다. 공양하는 것과 공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정법을 행하지 못하는 절에 가거나 시주하는 행위 이거 부처님 법에 어긋납니다. 대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정법을 행하고 열심히 포교하는 스님들에게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법회에 참석하는 것이 바로 재가 불자의 강력한 견제이고 공양운동입니다.

 

앞으로 장기적으로 개혁정신, 5대 지표. 이것이 잘 유지되려면 재정이 투명화해야 되는데 재정투명화라는 말은 이제 재정의 공영화여야 합니다. 재정공영화 이전에 저는 깊이 생각해왔던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스님들의 법계제도입니다. 1만2천 명 되는 모든 스님들이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주거가 보장되어야 하고, 급여나 활동비가 보장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보장되면 편법으로 재정을 편법으로 축적할 근거가 없어집니다.

 

이걸 종단이 주의해서 살피지 않습니다. 불교 승단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승단은 1만2천명인데 실제로 말하면 이게 사회주의 같은 체제입니다. 출가에서 입적까지 모든 것이 보장되는…. 그런데 지금 체제는 자본주의 경쟁체제입니다. 알아서 각자 도생하라. 각자 도생은 뭔가 줄을 서야 된다. 줄 서서 어느 자리를 차지해야 되는데 나중에 보장이 안 되니까 끊임없이 기득권 지키려고 합니다. 이러니까 이제 돈을 모으지요. 그 돈이라는 것을 편법으로 모아 가지고 또 다시 권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권력은 다시 돈을 만듭니다. 이것을 근원적으로 무효화시키려고 하면 1만2천명 되는 스님들의 안정적인 소임이 부여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재정이 100% 투명화 되고 그 투명화된 재정이 공개적이고 공영화 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가지지 않는 이상 수행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옆에 계신 동출 스님한테 깊이 감명 받은 적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언젠가 ‘도가 먼저가 아니라 돈이 먼저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초기에는 제가 놀랍기도 하고 속으로는 ‘도에 관심이 없으니까 저렇게 무책임한 소리를 하나?’ 그랬는데 깊이 들어가 보니까 돈의 해결 없이 도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환경에 절대적 영향을 받습니다. 맹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항상(恒常)이 되어야 항심(恒心)이 된다고요. 항상이 되는데 항심이 되지 않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했습니다. 지금 승단이 딱 그 꼴이거든요. 아까 재정 이야기 했으니까 제 재정 공개하겠습니다. 부채 700만 원이고요, 오늘 보니까 저금통장에 15만2천원 있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항상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안정적으로 사는가? 대흥사라는 안정적인 본사가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대흥사라고 하는 문중에 속하지 않는다면 제가 이렇게 돈에 대해서 자신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좀 초점이 엇나간 것 같지만 개혁정신이 유지되려고 하면 스님들의 안정적 소임과 그것에 연동된 재정의 혁신이 이루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이야기하겠습니다. 아까 이제 출가자와 재가자의 연대라고 그랬는데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숫자가 매우 적다는 말은 활동가들의 숫자가 적다는 게 아니고 깨어있는 불자들, 깨어있는 불자의 수가 좀 많아야 된다면 이야기입니다. 깨어있는 불자들과 깨어있는 스님들의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지금 이런 독재가 횡행하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들 모든 출, 재가자들이 꾸준히 해야 될 일은 정법불교에서 신행활동 하는데 외연을 넓히는 그런 운동 다시 말해서 법륜스님의 정토회 같은 모델이 종단 안에 수없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의 목소리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정말 마지막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불교적 방식으로 실천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까 김경호 불자님의 모든 말들을 100% 수용하면서도 하나를 수용하지 못하는데, 심정은 이해하지만 총무원장스님을 ‘자승, 자승’하시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자승 원장 스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총무원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왜 이런 사소한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우리에게 일을 하면서 분노가 미움이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파사현정. 삿된 것을 파한다고 해서 우리들이 분노하는 방식으로, 미움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한다면 절대 대중의 공감을 얻지도 못하고 그러한 본인 자신도 위험하다고 봅니다.

 

저도 굉장히 분노하고 힘듭니다. 어제 저녁에 하도 화가 나서 한 밤중에 두륜산을 후래쉬 들고 등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미워하지 말자. 분노하지 말자. 내가 이렇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누구를 미워하는 게 아니고 우리 모두가 또 이렇게 일을 저지른 사람까지도 삿됨을 파하고 올바름으로 돌아와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함이 최종의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예의와 존중. 그리고 지혜와 판단. 확실한 용기를 가지고 불교적 방식으로 이번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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