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월10일 조계사에 모여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하며 종단 개혁의 깃발을 올린 전국승려대회가 열렸던 것 같다. 각종 범계 행위 등으로 당시 멸빈(승적 박탈)된 서의현(80) 전 총무원장의 징계를 얼마전 조계종 지도부가 '공권정지 3년'으로 감형했다. 서 전총무원장이 나이가 80이고, 다리를 못쓰는 상태로 승려신분으로 가사장삼을 수하고 절에서 죽어 다비하겠다는데 자비문중에서 이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는 동정론도 있다.

'면죄부,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라'

권력의 정점 가까이에 선 같은 승려로서의 '인지상정'과 '동병상련'이 함께 작용한 듯하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시된다. 사실상 서의현 전원장(이하 서의현)이 복권되면 선학원이 모태가 되어 조계종이 시작된 이후 조계종의 그 어떤 멸빈자도 복권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불교전문가는 평한다.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광고는 물론, 전국민이 알고 있는 상식이 되어버린 서의현 멸빈사실을 호계원이라는 불교 재판소는 문서로써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잘못을 아무래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라는 범상치 않은 의혹도 제기된다. 은처·도박·문화재 절도·모텔 경영 등의 의혹이 있는 권승들이 향후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발행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한 신도는 울분을 토한다.

'희생없는 면죄부 발행, 타락의 명백한 증거'

제대로 된 역사책인지 몰라도 세계사를 찾아보면 이런 면죄부를 발행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대로마제국의 교황이 교회의 건립 비용과 교회의 부족한 재정을 해결하고자 금전이나 재물을 봉헌한 사람들에게 죄를 면해준다는 뜻으로 교부한 증서가 그 유명한 면죄부다. 800년께 교황 레오 3세 때 처음으로 시작되어 15세기에 그 발행량이 크게 늘기도 하였다.

그러나 면죄는 예수의 피처럼 목숨을 대신하는 성직자들의 희생이나 죄인의 진실하고 간절한 참회없이 다만 돈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면죄부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스스로를 위해서 발행한 면죄부는 이미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고 한 심리상담전문가는 전한다. 역사적으로도 타락의 정점에서 교회가 발행했던 면죄부로 인해서 아니러니하게도 가톨릭 교회는 역사의 주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루터 등의 반발로 종교 개혁을 야기하는 촉매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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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열린 제4차 대중공사에서 종단에 대한 불신을 주제로 한 브리핑 모습.

'수포로 사라진 94년 개혁, 원래부터 없었다'

요즘 동국대 사태를 비롯해서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부활 등 조계종이 참으로 시끄럽다. 이로 인해 '조계종이 바뀔 것'이라고 주변의 적지 않은 이들이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꿈을 내놨다. 하지만 난 그걸 꿈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한동안 연재를 중단한 적이 있다. 하지만 면죄부 발행 이후로 다만 꿈이 아닌 현실로 진정한 개혁이 다가온 걸 느낀다. 94년 개혁이 물거품이 된 이상 다행스럽게도, 아니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는 자비문중의 도움으로 94년 4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우리는 재심호계원의 덕택으로 21년의 타임머신에 무임승차할 수 있게 되었다.

'조계종, 만해 선생의 선학원 시대로 돌아가자!'

지금은 2015년 7월이 아니라 1994년 3월이다. 아니, 종교와 정치가 미분리된 일제치하나 다름없다. 이제 우리 사부대중이 자성과 쇄신을 넘어 진정한 개혁을 위해 다시 힘차게 일어나야 할 때다. 하지만 모두 다 입만 보살이 되어 있다. 이제 94년의 승려대회는 꿈도 꿀 수 없는 더 암담한 밤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민족과 종교를 위해서 오직 외길을 걸으며 여명을 밝힌 만해 한용운 선생이 너무나 그립다.

※이 칼럼은 사부대중 모두가 맑고 밝은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한 자성과 쇄신 등 공익적 목적으로 전문가와 신도들의 염려와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