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석법사 | phoseok@hanmail.net | 2015-04-27 (월) 14:58
한 비구니 스님이 부처가 되기 위해 어린나이에 출가하여 열심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여자는 성불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은사 스님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여쭈었습니다.
“스님, 여자는 정말로 성불하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라한(阿羅漢, 수행을 완성한 성인. 부처)이 되는데 남녀의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부파시대에는 ‘여인오장설(女人五障設), 즉 여인은 범천·제석천·마왕·전륜성왕, 그리고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다음 생에 반드시 남자로 태어나서 부처되기를 서원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일쑤였지요.
그렇다면 남자는 성불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노(no)!’입니다. 남자 또한 성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자다’, ‘여자다’를 분별하는데 어찌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최상의 바른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는 남녀의 분별이 없는데. 남자와 여자를 모두 여의여야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이 서거하고 카필라국이 멸망하자, 이모이자 계모였던 마하빠자빠띠와 5백 명의 석가족 여성이 부처님께 출가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수차 거절하시다가 제자 아난다의 간곡한 청에 마지못해 허락하셨지요. 아마 부처님의 허락은 당시 여성이 차별받던 인도사회에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사건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욱 여성출가를 반대했을 것으로 보이는 비구들의 불만과, 여성출가가 여성의 신분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사회적 불만을 고려하여, 소위 팔경계법(八敬戒法)을 내세워 허락의 명분을 삼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더구나 고대 인도사회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고 아직도 그러한 전통이 남아있는 점을 고려할 때, 팔경계법이 아니었다면 여성이 홀로 출가수행자로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비구니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불평등한 계법을 정하신 것이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구니는 반듯이 비구 또는 비구가 있는 곳에서 구족계(具足戒)·포살(布薩)·안거(安居)·자자(自姿)·참회를 해야 하고, 비구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비구의 허락 없이 삼장(三藏)을 묻지 않으며, 1백세의 비구니라도 새로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예로 모셔야 한다’는 불평등한 계목이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중생이 부처의 성품을 지녔다하시고, 만유의 평등과 자비를 가르치신 부처님께서 절대로 위선(僞善)을 하셨을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여성출가를 허락하신 다음에도 ‘비구니로 해서 천년을 지탱할 불법이 5백년으로 줄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걱정은 번뇌를 소멸해야하는 수행자 집단에 남녀가 어울리게 됨으로써 수행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와, 여성의 몸으로써 출가수행이라는 고행을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 그리고 고대 인도사회의 여성에 대한 관습적인 차별문제 등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으로 읽힙니다.
이런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마하빠자빠띠고따미 비구니는 남성과 동등한 출가수행자의 길을 개척한 최초의 여성입니다. 불교 최초의 비구니 교단을 창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인격체로 홀로서신 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고따미 비구니에 대한 찬탄을 게송으로 남기셨고, 부처님 자신이 고따미 비구니의 아들이자 스승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따미 비구니 이후에도 수많은 비구니가 그의 후예로서, 또 부처님의 제자로서 당당하게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음을 불교사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남녀가 평등한 문명시대에, 여성차별을 담은 팔경계법이 비구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권리를 놓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팔경계만이 아니라 비구의 구족계가 2백50조인데 반하여 비구니는 3백48조인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비구니계를 수지하기에 앞서 여성의 임신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식차마니계를 받는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요즈음에는 수적으로 비구니가 비구보다 많고, 또 비구보다도 걸출한 비구니스님들이 불교 저변확대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불교 장자종단의 80석이 넘는 중앙종회에 비구니 의석은 겨우 열자리에 불과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로회의를 비롯해 종단의 주요직책을 비구들만 독식하는 등의 비열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종단은 비구니를 머리를 기르게 하여 아예 스님으로도 인정하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러한 일련의 몰상식한 제도와 의식은 결코 불교발전은 물론 승려 자신의 수행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구니 종정, 비구니 총무원장을 반대하는 비구는 있어도, 이를 반대하는 불자와 국민은 없다는 사실을 비구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