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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불광출판사
322쪽, 14,000원

2000년 7월 법인 스님(현 일지암 암주, 사진)은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 한문학당의 훈장이 됐다. 스님들의 전통교육과정인 강원교육을 모델로 하여 어린이들에 맞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주지 금강 스님과 의기투합해 만든 한문학당은 얼마 안가서 대박을 쳤다. 그곳에 다녀온 아이들 집안으로부터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접수 마감’ 공고가 나간 뒤에는 온갖 인연을 끌어다 압력(?)을 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갔다. 내 아들과 딸, 조카를 붙여달라는 청탁이었다.

“한번은 아이들이 훈장인 내 눈치를 보면서 게으름을 피우기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이놈들아, 공부해서 남 주느냐?’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스님은 공부해서 지금 남 주고 있잖아요.’”(공부해서 남 주자, 41쪽)

그 뒤로 정해진 한문학당의 구호는 ‘공부해서 남 주자’였다. 

다독가로, 사유의 전문가로, 공부하는 스님으로 통하는 법인 스님이 첫 책을 펴냈다. 제목이 묵직하다.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하지만 행간마다 세상에 대한 연민과 자애가 넘쳐난다. 공부해서 남 주려고 하는 스님 특유의 의지가 가득 담겨있다. 그 의지는 호남선 열차 차창 너머 부드러운 풍경에 심취하다가 귀에 거슬리는 증권회사 텔레비전 광고 한 줄에도 기어코 발동한다. 그 광고 내용은 이렇다. ‘칭기즈 칸, 만약 그에게 열정이 없었다면 그는 한낱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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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기서 ‘열정’과 ‘한낱’이라는 말에 대해 거듭 생각했다. 법회와 강의실에서 이 광고의 구절을 말하며 소감과 판단을 구해봤지만 사람들은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복과 천하통일이라는 명분 아래 드러나는 전쟁과 살상의 욕망이 결코 ‘열정’으로 미화될 수는 없었다. 양치기 목동에게 ‘한낱’이라고 말하는 것은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을 폄하하는 저급한 표현에 불과했다. 여기서 그가 얻은 결론은 ‘사람들은 그리 깊게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비상식적, 비정상적인 사고의 극치를 유대인 대학살의 책임자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다. 평범했고, 조직의 질서에 충실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사람인 그가 엄청난 일을 저지른 이유는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에게 맡겨진 유대인 대학살이 어떤 의미와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유의 형식을 거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올바른 사유, 우리를 행복에 이르게 하는 사유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님은 무엇보다 헛된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욕망이 눈을 가리면 정직한 판단이 흐려지고 무지가 욕망을 충동질하여 또 다른 욕망을 낳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음은 연민과 자애의 눈으로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보라. 그 다음은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의 말과 삶에 편견 없이 귀 기울이는 성찰을 해야 한다. 이미 그대들도 알고 있다. ‘묻지 않으면 진리가 내게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나의 말도 의심하고 헤아려 보라, 48쪽)

책 제목의 ‘검색의 시대’는 경직되고 고착된 생각이 넘치는 세상을 말한다. 책에 실린 글은 모두 55편. 대부분의 글들은 여기서 벗어나 어떻게 생각하며 살 것인가(‘사유의 회복’)에 대해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한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김선우의 ‘추천의 글’은 책의 품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읽는 이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게 만드는 스님의 문장들은 정직한 수행력에서 나온다. 담백하고 맑으며 강직하고 다정하다. 개인과 사회가 어찌 만나야 조화로운 것인지, 개인의 참 행복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스님은 답을 미리 아는 자로서가 아니라 답을 함께 찾아보자고 손 내미는 도반으로 독자에게 찾아온다. 어디 먼데 가서 특별히 시간을 내야 하는 참선이 아니라 ‘일상 화두’가 되어주는 시원한 두레박물 같은 글들이다.”(우리 사회의 평형수를 채워 주는, 법인, 3쪽)

이 책을 다 읽은 순간 독자는 ‘공부해서 남 주자’는 스님에게서 크나큰 공부 ‘공양’을 받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 ‘공양’을 이웃에게 나눠주는 일 역시 ‘공부해서 남 주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