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학자 김성철 교수(동국대)는 불교학계에서 독특한 학설로 주목받는 학자다. 치과의사를 하다가 불교공부를 시작해 불교대학 교수가 된 이력에 걸맞게 그가 발표하는 논문들은 언제나 학계의 주목대상이 된다. 이과 계통의 학부전공자답게 그는 수행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구를 직접 제작해 자신에게 적용하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그 결과를 학회에서 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저술 또한 서지학적이거나 훈고학적 흐름이 강한 기존 학자들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진화생물학에 관심을 갖고 불교학과의 접목을 시도한 저술은 불교출판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그가 또 한 번 ‘사고’를 쳤다. 지난 3월 28일 동국대 만해관에서 열린 불교학연구회(회장 최종남) 2015년 봄 논문발표회에서 김 교수가 발표한 논문 ‘<관음현의>의 여래성악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그것이다.

‘불성에는 악(惡)도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은 천태학자들에게는 그리 낯선 주장이 아니지만 일반 불자들에게는 경천동지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부처의 성품에 악이 들어 있다니!

김 교수의 이 논문은 사실 한 학술지에 기고했다가 ‘게재 불가’ 판정을 받은 논문이기도 하다. 그 이유가 석연치 않았지만 김 교수의 집요함은 비교적 신진학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불교학연구회의 논문발표회로 이어졌다.

“여래성악설은 매우 오해할 수 있는 이론이므로 공개된 자리에서 검증을 받고 싶었다”고 김 교수는 논문 발표에 들어가기 전에 소회를 밝혔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뭄품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이에 대한 주석 가운데 ‘관음현의’에 나오는 여래성악설은 일부 천태학자들 가운데에서는 천태지자의 학설이 아니다, 천태지자 대사가 그런 학설을 냈을 리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해석이다.

김 교수의 논문이 불러올 관심과 파장을 의식한 듯, 불교학연구회측은 토론자로 천태학 전공의 최기표 금강대 불교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아마도 천태학자가 아닌 중관학자의 ‘불손한(?) 영역 침범’에 대한 촘촘한 검증을 벼른 것일 수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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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발제는 비상한 관심 속에서 시작됐다. 천태학자는 물론 다른 전공의 학자들도 김 교수의 발표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감지됐다.

김 교수는 “여래성악설은 관음현의에서 오중현의(五重玄義, 경전의 특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하는 방식)에 의해 관세음보살보뭄품의 특징을 설명하는 가운데 석명(釋名) 장의 아홉 번째 연료(緣了), 즉 연인(緣因)인 불성과 요인(了因)인 불성에 대한 설명에 처음 등장한다.…관음현의의 요간연료(了簡緣了, 연인과 요인에 대한 종합적 검토)는 다음과 같은 문답으로 시작한다”며 ‘관음현의’의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成佛의 因인] 연인과 요인에 대해 검토한다. 묻는다. 연인[으로서의 불성]과 요인[으로서의 불성]에는 원래 성덕(性德)인 선(善)이 있는데, 성덕인 악(惡)도 있지 않겠는가? 답한다. [선과 악을] 모두 다 갖추었다 묻는다. 일천제(一闡提)와 부처는 어떤 선과 악을 끊었는가? 답한다. 일천제는 수선(修善)을 모두 끊었지만 다만 성선(性善)은 남아 있는데, 부처는 수악(修惡)을 모두 끊었지만 다만 성악(性惡)은 남아 있다.”

김 교수는 ‘관음현의’의 이 내용을 근거로 “불성에는 선과 악이 모두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삼론종의 불성에 대한 분석 및 설명이라고 할 수 있는 오종불성을 예로 든 김 교수는 “관음현의의 여래성악설에서 ‘불성에 악이 있다’고 할 때의 불성은 ‘정인(正因), 연인(緣因), 요인(了因), 과(果), 과과(果果)’의 다섯 가지 불성 가운데 연인불성과 요인불성이며, 이는 관음현의의 여래성악설을 분석할 때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연인불성과 요인불성에는 악이 있다. 부처는 수악(修惡)을 끊었지만 성악(性惡)은 있으며, 악에 대해 통달했기 때문에 악에 물들지 않고, 악을 이용하여(用), 또는 일으켜서(起) 중생을 제도한다”고 여래성악설의 골자를 설명한 후 “여기서 말하는 수악은 ‘후천적인 악’을 의미하고, 성악은 ‘부처의 성품으로서의 악’이 아니라, ‘부처의 씨앗’인 ‘연인불성과 요인불성 중의 악’이며, 세상에 있는 ‘법문(法門)으로서의 악’이고, 언젠가는 성불할 모든 중생이 짓는 ‘보살의 악’이기도 하다”고 결론지었다.

김 교수는 “‘여래성악설’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맹자, 순자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떠올리는데, 여래성악설은 이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따라서 성품 속에 선과 악의 유무를 따지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여래성악설의 여래성악을 ‘여래성의 악’이 아니라 ‘여래의 성악’으로 이해할 경우 교학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 후 발제의 근거를 유마경이나 본생담 등의 예를 들며 여래성악설이 반드시 천태지자의 주장만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어 최기표 교수의 논평이 시작됐다. 논평에 나선 최 교수의 목청은 부드럽고 나지막했으나 그 내용 중에는 도처에 가시가 널려 있었다.

“일체 중생에는 여래도, 일천제도 포함되므로 여래에게도 ‘성(性)’으로서 악법이, 일천제에게도 ‘성’으로서 선법이 갖추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구설(性具說), 혹은 ‘성구성악설’이 온당한 명칭다. 그런데도 중생 가운데 여래를 특정하여 ‘여래성악설’이라고 부른다면 마찬가지로 ‘일천제성선설’ ‘파순성선설’ ‘보살성악설’ 등등이 다 가능하게 된다. 여래성악설, ‘성악설’, ‘성악법문’ 등등의 명칭은 ‘부처님에게도 악이 있다’, 혹은 ‘불성에 악도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만 부각하려는 요즘말로 ‘낙시성’ 제목이라고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어 “김성철 교수의 논문의 핵심 내용은 ‘여래성악’이라는 문장이 천태대사의 사상을 감안할 때 ‘여래의 성악’이 아니라 ‘여래성의 악’이라고 읽혀야 한다는 것이고, 이렇게 잘못 읽도록 오도한 이로서 천태대사가 강의한 ‘관음현의’를 책으로 찬술한 관정(관정, 561~632)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그렇지만 ‘여래성악’이라는 말은 지옥계 내지 불계(佛界)가 나머지 구계(九界)의 십여시(十如是, 相, 性, 體, 力…)를 다 갖추고 있다는 천태대사의 십계호구(十界互具) 사상을 원용하는 과정에서 관정이 ‘여래는 성악을 끊지 않아서(如來性惡不斷)’라고 한 마디 한 것이 전부”라고 반박했다.

중관에서는 대가로 인정 받는 김성철 교수의 천태학 분야에 대한 ‘도전적’ 발제는 이후 객석과의 치열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주장과 반박, 반박에 대한 재반박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 모처럼의 재미있는 세미나였다.

이 논문발표회장을 줄곧 지킨 불교학계의 원로 이평래 교수는 “후배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이렇게 절차탁마하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는 격려로 이날의 불교학연구회를 평가했다.

한편 ‘동아시아 불교문헌의 재해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봄 논문발표회에서는 이승혜 선생(삼성미술관 리움)이 ‘고려의 오월판(吳越板) <보협인경> 수용과 의미’를, 김지연 박사(동국대)가 ‘<석마하연론>의 성립시기에 대한 고찰’을 각각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