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박사논문이 탄생하는 데는 적잖은 공력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박사 청구논문에서조차 표절이나 대필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수상한 시절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매우 큰 공력이 깃든 논문을 만나면 반갑기 이를 데가 없다. 

최근 우연한 자리에서 불교음악인 범패를 연구한 한 여성 학자를 만나 박사학위 논문을 전달받았다. 부산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에서 공부한 서정매 박사(41)그 그 주인공이다. 서 박사는 지역의 소리를 전승·발전시키기 위해 전통 악기를 배우고 소리를 채록해 가사집을 내기도 한 발로 뛰는 학자다. 이제 마흔 살이 갓 넘어 박사 학위를 딴 그녀를 영남의 한 지역신문은 ‘지역소리 지킴이’라고 표현했다.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서 박사의 논문은 단순히 학위를 위한 논문이 아니라 소리, 그것도 영남 지역 범패의 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서 박사가 경상도 지역의 민속, 민요, 아리랑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 재학시절이다. 학부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녀 대학 3학년 때 장구를 배우며 국악을 만났다. 서양 작곡을 전공의 그녀가 국악으로 선회하는 배경은 이렇게 운명처럼 찾아왔다. 내친김에 대학원을 국악과로 진학했고, 석사논문을 ‘밀양 지역의 민요’를 연구하는 것으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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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가 불교의식음악인 범패 연구로 지난 2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의 불교의식 음악인 범패는 지역별로 전승되고 있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부산과 경남이 영남범패를 대표하고 있지만 연구가 미흡한 상황이었다는 점이 그녀의 연구욕을 자극했던 것이다. 

서정매 씨의 박사논문 제목은 ‘영제범패 영산작법 연구-부산어장 용운파 마산어장 석봉을 중심으로-’다. 서 박사는 박사 논문에서 부산지역 대표 범패승인 용운 스님과 마산지역 대표 범패승인 석봉 스님의 음원을 각각 악보화해 선율을 분석했다.

한국범패의 기원이 경남도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연구가 매우 미비했던 현실에서 볼 때 서정매 씨의 박사논문의 가치른 남다르다. 이 논문은 경상도 지역의 영제(嶺制) 범패승들의 계보를 지역별로 정리해 영제범패의 전승현황을 검토했고, 영산작법의 의례절차를 시대별로 검토하여 시대적 변화 및 특징을 현행의 절차와 비교, 그 변화양상을 고찰하고 있다. 또한 부산지역 대표어장인 용운과 마산지역 대표어장인 석봉의 영산작법의 주요 악곡을 채보·분석하여 범패선율의 특징을 각각 밝히 후 지역 간 음악적 상호관련성 및 음악적 특징을 밝혀 영제범패의 음악적 정체성을 정립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서정매 씨의 박사논문은 경상도의 동남쪽인 부산범패가 메나리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서남쪽인 마산범패는 대부분 메나리토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속에서 육자배기토리가 결합되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또한 부산과 양산지역의 범패를 일컫는 명칭인 ‘통범소리’라는 용어는 현재는 부산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 소리를 일컫는 말이지만, 이 용어는 1990년대 전후에 새롭게 형성된 근래에 만들어진 용어이며, 통도사와 범어사의 소리도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대동소이하다는 점 등을 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1950년대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지역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범패승들에 의해 이 지역 소리가 유점사 등 이북지역과 전라도 등 국내 여러 지역의 범패소리가 반영된 결합된 소리로 정착되는 특징을 갖는다는 점도 밝혀냈다. 이밖에도 현재 부산영산재의 작법은 고성 안정사의 작법을 전승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 할향을 시작하기 전에 부르는 ‘계정향’은 현행 경제범패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영제범패만의 독특한 특징이라는 점 등을 밝혀내고 있다.

서정매 씨의 박사 논문은 특히 부록으로 용운·석봉의 소리를 서정매씨가 직접 채보해 악보로 남기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