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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스님<사진>은 역경사로 근·현대 불교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고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허스님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로 이어지는 시기에 현대 한국불교의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운허스님의 삶은 그러나 역경이라는 아주 큰 업적에 가려 그의 자유부동한 삶과 실천 활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면이 없지 않다.

운허스님의 자유부동한 삶과 실천 활동을 스님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탁상일기를 근거로 분석한 박사논문이 통과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실천불교를 전공한 지환스님<아래 사진>의 박사학위 청구논문 ‘운허용하의 탁상일기 연구-자유부동성과 실천성을 중심으로-’가 그것이다. 이 논문은 21년(1959~1979) 동안 기록한 운허스님의 탁상일기를 양적 방법론을 활용하여 분석하는 한편 질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그 내용을 학술적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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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일기에는 운허스님의 자유부동하면서도 실천하는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성과 속을 넘나들면서 중생과 함께하고 고통을 나누는 삶, 교육가로서의 삶, 역경사로서의 삶, 봉선사 복원과 종단분규 해결을 위한 노력, 흥사단 등 사회단체에서의 활동 등 탁상일기의 내용을 봉선사 문도이기도 한 지환 스님은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지환스님은 이 논문을 통해 운허스님이 보여준 삶이 비구들이 ‘삶의 모델’로 설정해도 손색이 없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 운허스님이 남긴 탁상일기가 사실을 중심으로 특정인물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가치가 있다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환스님이 연구자료로 삼은 운허스님 탁상일기는 후반기 삶이라고 할 수 있는 68세부터 89세까지의 기록이다. 탁상일기라는 매우 간단한 일기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들은 후대에 남기기 위해 작성된 기록이 아니라 개인적인 필요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내용,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요약 정리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탁상일기의 기록들을 운허스님이 남긴 회고록이나 신문, 잡지 등에 수록된 기고문, 서간문, 청원서나 도량 중건공사 일지 등과 연관해 활용하면 그 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다.

지환 스님은 부처님의 생애를 비구에게는 자유부동성만큼 실천성이 중요한 덕목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실천성이 담보되지 않은 자유부동성은 ‘삶의 회피’라는 소극성의 발로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모순적 상황을 삶에서 구현하기 위한 전범을 운허스님의 삶, 특히 탁상일기에 나타난 매우 진솔하고 구체적인 삶속에서 찾으려고 시도한다. 또한 근현대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승려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들에게 하나의 연구방법을 제시하고자 하고 있다.

지환스님은 운허스님의 탁상일기를 <수기된 일기→원문 취봉 정서(월운스님 감수)→‘ᄒᆞᆫ글’로 정리→엑셀로 정리>하는 하고, 주제별로 구분하고 각각의 의미와 주제는 독립된 번호를 부여하는 몇 가지 형식으로 체계화했다.

운허스님의 생각과 활동이 자전적으로 정리된 탁상일기는 운허스님 개인적 감정으로부터 당시의 주요 뉴스,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편지 관련 내용, 불교계 주요 현안 처리를 위한 행위 등이 망라되어 있다.

지환 스님은 운허스님 탁상일기 분석을 통해 운허스님이 언제나 중생구제라는 불교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였으며, 출가수행자로서 세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였고,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정당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만큼 정치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기록물인 탁상일기에 개인적 판단기준을 드러내지 않았을 정도로 세상사에서 한 걸음 떨어져 사회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고 불법을 홍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정리했다.

지환 스님의 이번 박사논문은 한국불교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승들의 학술적 재조명이 대부분 엄밀한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는 학술작업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점을 극복하고 기초적 단계를 넘어 학술연구 단계까지 이어진 첫 사례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즉 운허스님에 대한 기존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하고 운허스님이 직접 작성한 탁상일기를 주요자료로 삼아 사회과학에서 활용하는 질적 연구방법으로 분석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고승연구 사례로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