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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이 시작이다
스티븐 스나이더‧티나 라무쎈 지음,
정준영 옮김, 불광출판사
216쪽, 14,000원

몰입(沒入)은 어떤 대상에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계발서와 학습교재 제목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이다. 『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몰입의 즐거움』, 『자연몰입』, 『몰입창업』, 『수업몰입』 등 수십 종에 이른다.

몰입은 수행의 기본이자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선정’은 마음이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어 고요와 평화를 이룬 명상 상태를 이른다. 인간 붓다의 출현 이래 불교 수행자들은 ‘선정’이라 불리는 몰입집중의 귀중한 명상적 실천을 공들여 보존해왔다. 이 책은 서양인 재가 수행자인 저자들이 미얀마의 가장 위대한 수행지도자로 칭송받는 파욱 스님에게 선정 수행을 지도받으며 직접 체험하고 소화한 내용들을 들려준다.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는 남방 상좌부불교의 전통수행법이다. 사마타는 마음의 고요와 고도의 집중을 계발하는 선정 수행이며, 위빠사나는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에 대한 통찰을 통해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다. 그러므로 선정을 닦는 사마타 수행의 기반이 확고해야, 지혜를 증득하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저자 스티븐 스나이더는 아시아를 여행한 후 19살이 되던 1976년부터, 티나 라무쎈은 13살이 되던 1976년부터 각각 명상을 시작했다. 이들은 파욱 사야도의 개인적이고 강도 높은 지도 아래, 사마타의 단계(여덟 가지 선정과 연계된 수행들)를 온전히 성취했다. 스티븐 스나이더는 파욱 사야도로부터 지도권한을 부여받은 미국 남성 가운데 첫 번째 사람으로, 티나 라무쎈은 지도권한을 부여받은 첫 번째 서양 여성으로 각각 기록됐다.

이 책은 호흡에 대한 주의로 시작하는 사마타의 기초 입문단계에서부터 위빠사나 수행의 관문으로 전환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사마타 수행의 전반적인 단계에 대해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특히 서양인 재가 수행자인 저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소화한 내용들이 세심하게 배어있어, 수행 초보자에게 곧바로 적용되게끔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다루고 있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괴로움 없이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매우 적합한 책이다.

이들은 수행구조에 있어서는 상좌부 불교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지도방법에 있어서는 수행자를 배려하는 유연함으로 다가간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전하는 선정 수행은 쉽고 친절하다. 자신들의 체험을 통해 묘사되는 설명이기에 진솔하면서도 무겁지 않다. 또한 선정 수행 중에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집중이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혜를 향한 선정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선정 수행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수행법이다. 붓다를 자신의 삶의 역할 모델로 삼는 불자라면, 붓다가 경험한 수행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 보아야 하지 않을까?

초기불교와 위빠사나 수행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서울 불교대학원대학교 정준영 박사가 번역을 맡았다. 수행과 교학을 겸비하는 전문학자의 번역이라 더욱 쉽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