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란다. 성장통을 겪는다. 어려움이나 아무런 고통 없이 성장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성장이란 스스로가 직면한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한계를 하나씩 극복해 나감함으로써 경계는 확대된다. 그걸 알면 참 좋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아이들이 겪는 정서적 심리적 어려움 가운데는 아이들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관심 부족으로 비롯된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관심의 색깔도 문제다. 바른 관심이 요구된다. 특히 아이에 대한 부모만의 집착이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저해하거나 심각한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교육 열병을 앓고 있는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주한미군에 근무했을 때, 상담했던 아이들 중에 상당수는 엄마가 한국인이었다. 그 때문인가? 꽤 많은 아이들은 한국의 입시 준비생들 못지않게 미국의 아이비(Ivy)리그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불철주야 ‘열공’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오바마(가명)는 어렸을 때부터 예일 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 물론 애초부터 부모들의 목표였고 욕심이었다. 오바마 자신도 명문대에 진학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차적 동기는 역시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듯하다. 미국에서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을 잘 견뎠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아이는 부모의 프로그램대로 잘 따라가는 듯했다. 하지만 8학년 즉 우리로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부터 부모 모르게 자주 무단결석을 하면서 밖에서 배회하는 일이 잦았다. 귀가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노발대발했다. 결과적으로 한 동안 더욱 더 아이 ‘관리’에 몰두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 모두가 아빠의 이동 발령으로 한국으로 나왔다. 부모는 주변의 한국인들의 교육열을 직접 보게 되었다. 오바마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교육열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오바마의 부모들은 한국 부모 못지않은 모습을 경쟁적으로 보였다. 예일대를 목표로 아이의 하루하루를 ‘스케줄화’시켰다.

크게보기

오바마의 부모는 물론 아이를 무척 사랑했다. 오바마 또한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 가족은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스케줄화 한’ 그런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렇게 사느라 아이도 부모도 더 이상 행복해 하진 않았다. 늘 도달해야만 하는 미래의 한 지점에 집착했다. 지금 하는 그 무엇도 음미하지 못한 채로 행복을 느끼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아이는 늘 불안했다. 부모가 열망하는 예일대학에 들어갈 성적을 내는 것 밖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좋은 성적이 부모의 행복의 조건이라고 거듭 들어왔다. 그렇기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진정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오바마는 성적은 그리 쉽게 오르지 않았다. 오바마가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면도날로 팔을 그으면서 흐르는 피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아이는 스케줄화된 삶에 대해 마음속에 쌓여온 분노를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자신을 위해서 언제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준비된 부모한테 분노를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전학 온 오바마에게는 제대로 된 친구조차 없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수줍음도 많이 타는 소극적인 아이 오바마는 친구 사귀는 것이 물론 서툴렀기 때문이다.
 
10학년 여름방학 때 카운슬러(나)의 권유로 오바마는 캠프로 향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아이는 생전 처음으로 부모 떠나서 음악캠프로 향했다. 다음 날, 오바마는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데리러 와 달라고 부모한테 사정한 것이다. 부모는 당장 달려가고 싶었으나 카운셀러의 만류로 가지 못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오바마에게 캠프 마치고 일주일 후에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부모들이 일주일동안 노심초사하며 아이 걱정만 한 것은 당연했다.

일주일후 마음고생을 너무했던 부모는 드디어 아이를 데리러 캠프로 달려갔다. 하지만 상황은 부모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아이는 새로 캠프에서 사귄 친구들과 수다에 빠져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부모조차도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부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부모와 떨어져서 친구들과 처음으로 지내본 아이는 비로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오바마는 자신의 거울 속에 늘 부모만을 그려왔다. 아니 부모의 모습만을 보아왔다. 부모가 아이 앞을 늘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울 속에 자기 모습을 한 번도 비출 수도 없었다.

오바마에게 부모님들의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가만히 지켜 봐 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유영희 선생님은? 

청소년 상담가로, SAIC 근무. 20여 년 동안, 미국, 한국, 이태리, 현재는 독일에서 미군의 자녀와 가족에게 상담치료 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