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욱
yakchun@daum.net 2015-01-26 (월) 16:33一入緇門後 한 번 불가에 몸을 담은 뒤부터
便爲山家兒 산속 절간에 사는 아이가 되었다네.
二十學禪佛 스물에는 선학과 부처님을 배웠으니
歷參諸講師 여러 강백과 조사를 찾아 다녔지.
三十作宗匠 서른에는 종장으로 일가를 이루어
龍虵混拂槌 옥석을 가리느라 몽둥이도 휘둘렀지.
四十胸作痞 마흔에는 가슴에 답답증이 생겨서
又增嘔吐嘻 토하기도 하고 낄낄 웃기도 했다네.
五十有九歲 이제 쉰하고도 아홉 살이 되었는데
老疚並相隨 늙은 몸에 고질병이 함께 따라오네.
六根忽衰變 육근은 홀연 쇠약하게 변질되어
筋力減四肢 기력은 사지에서 쭉쭉 빠져나간다.
七識上合湛 칠식은 위로 탐닉에 빠지니
聰明漠然遺 총명했던 생각을 아련히 잃어 버렸네.
八萬定慧門 팔만 가지 선정 지혜의 문들을
恨未一一闚 하나하나 살피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九原路不遠 구원(황천)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았으니
閻羅鬼來推 염라국 귀신이 와서 나를 떠민다.
十聲念佛願 열 가지 소리 모두 염불의 소원을 담아
以待命終時 이 생명 다할 날을 기다리노라.
-허정법종(虛靜法宗, 1670∼1733)의 <숫자에 맞춰 지은 시>에서
한시를 읽다보면 해석하기 까다로운 작품이 있는 반면 그냥 술술 읽히는 작품도 있다. 풀이가 쉽고 어려운 차이가 곧 그 작품의 수준을 가늠 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아니다. 한시가 워낙 어려운 한자로 되어 있는 데다, 용사며 전고에 지켜야 할 규칙도 엄격해서 우리말로 옮겨 읽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사전과 참고 문헌을 뒤져서야 겨우 뜻을 알 수 있는 작품이라도 뜻을 알고 나면 이해가 금방 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뜻은 금방 풀려도 시행만 이해해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헤아리기 어려운 작품도 없지 않다.
한시도 개성의 산물이니만큼 작가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가진다. 또 시대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작품도 있다. 이런 한시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면서 한시를 감상하면 좀 더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이번에 소개할 스님의 한시는 아주 쉽기 때문이다. 대가들이 들으면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허정법종 스님이 남긴 시집을 읽으면서 모든 시인이 이렇게만 한시를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번역이 쉽다고 해서 담고 있는 내용까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허정 스님의 시가 언어나 생각을 절제하지 못하고 상투적인 인생의 철리를 두서없이 펼쳐놓았다는 말은 아니다. 뭐랄까, 고향집 동네 아저씨의 말을 듣는 듯한 기분이랄까. 겸손하게 마음을 낮추고 세상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삶이 주는 깊은 지혜를 스님은 들려준다. 그런 푸근하고 정겨운 맛이 스님의 시에는 담겨 있다. 걱정도 많이 하고 당부도 아끼지 않으면서 때로는 인생의 내면을 들여다 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진한 국물 맛이 스님의 시에는 녹아 있다. 시골 농부가 농촌의 자연 풍경을 요란한 묘사나 수사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로 들려주듯, 절간 주변의 아기자기한 경치와 변화를 스님은 시 속에서 아주 담백하고 편안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처럼 스님의 시는 정겹고 친근하다.
허정 스님이 남긴 시를 보면 반수는 산수자연에서 맑은 공기와 높은 산, 시원한 시내와 어울려 산 풍취가 물씬 풍긴다. 또 나머지 반은 세간의 잔잔한 인정이며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재치 있게 시를 꾸밀 줄도 알고, 재미있게 시를 엮을 줄도 안다. 갓 무쳐낸 겉절이 같은 상큼함이 스님의 시에서 풍겨 나온다.
조선 후기를 살다간 스님은 생애가 그렇게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속성은 전씨(全氏)였고, 허정은 법호다. 12살 때 옥잠(玉岑) 스님을 은사로 승려가 되어, 도정(道正) 스님에게서 화엄학(華嚴學)을 배웠고, 1690년경 묘향산의 도안(道安) 스님 밑에서 장경(藏經)을 탐구했다. 그 뒤 묘향산에 들어가 월저(月渚) 스님을 참배하여 장경을 두루 섭렵했고, 추붕(秋鵬)선사의 의발을 이어받았다. 묘향산의 진상사(眞常寺)와 내원사(內院寺), 조원사(祖院寺) 등 사찰에 있으면서 강설과 참선으로 후학을 교도했다. 1732년(영조 8) 구월산에 들어가 강석을 열고 묘향산으로 돌아왔다가 이듬해 남정사(南精舍)에서 입적했다.
스님의 시는 재치도 있을 뿐더러 자신의 삶과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스님은 특히 잡체시를 많이 남겼는데, 그 가운데 수시체(數詩體)라 불리는 작품은 그대로 스님의 생애를 요약하고 있어 흥미롭다. 수시체란 작품의 홀수 구 첫 번째 글자가 숫자로 나열되는 시 형식을 말한다.
이 시를 지은 해 스님의 나이는 쉰아홉 살이었다. 예순네 살을 사셨으니 입적하기 5년 전에 쓴 작품이다. 벌써 이생의 인연이 다할 것을 아신 것일까? 스님은 담담하면서도 흥겹게(?)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을 떠날 때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성실하게 살자는 다짐의 말도 들려온다. 숫자 일부터 십까지를 시구의 서두로 삼아 일생을 요약하고 있는데, 옛날 공자(孔子)가 자신의 생애를 십 년 단위로 정리했던 일화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