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삶의 고통을 ‘매움’이라는 맛과 향으로 우리에게 선물한다.

요즘 연말연시라 길거리에서 취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더러 본다. 누구는 많이 본다고 하지만, TV도 없고 집에서 들어와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 입장에선 사실 진풍경에 가깝다.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는가 싶은 감흥마저 난다.

‘취하다’는 ‘어떤 기운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다’, ‘무엇에 마음이 쏠리어 넋을 빼앗기다’, ‘사람이나 물건에 시달려 얼이 빠지다시피 되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건 모두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흔히 술에 취한 사람을 얼큰하게 취했다고 표현한다. 알싸하게 취했다고도 한다. 어원을 찾아보면 ‘매워서 입안이 조금 얼얼하다’와 ‘매운 맛이나 독한 냄새 따위로 콧속이나 혀끝이 알알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만주어로는 술을 ‘아리키’라고 한다. 아리키는 영어로는 폴리네시아 등의 남태평양의 족장이나 왕을 말한다. ‘아’는 모든 음가의 시작으로 감탄사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리키’는 ‘힘[力]’을 뜻한다. 또한 아리키(在り来)는 본래부터 흔히 있었으며, 세상에 얼마든지 있었음을 애기하는 일본어이기도 하다.

굳이 상관성을 찾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모두 그렇듯이 이치를 우리가 모를 뿐 아니 모른척할 뿐,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도 없고 우연은 더더욱 없다. 알려고 하면 알 수도 있다. 뒤늦게라도.

공통적으로 ‘취했음’의 어원은 ‘매움’, ‘힘’, ‘흔함’을 뜻한다. 보이차 생차를 마시다 보면 ‘알싸함’이라는 ‘매움’을 느낀다. 새로 출시된 98년산 7542라는 대익차 숙차 병차를 마시더라도 입속에 생차의 ‘얼얼함’이 미세하게 여운으로 남는다. 차호 뚜껑을 열어보면 거무스름한 숙차 찻잎 가운데 ‘생차’잎이 더러 보인다. 병차로 긴압을 할 때, 즉 병배 과정에서 생차를 조금씩 섞은 것이다. 해당 숙차 맛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차를 넣기도 하고 노차를 넣기도 한다. 때로는 고차수를 넣기도 하고 고산차를 넣기도 한다.

크게보기

보이차 생차의 매움은 생차의 특성을 돋보인다. 차나무의 뿌리가 암반에 닿았을 때, 그래서 암반과 교류할 때 비로소 강력한 매움을 드러낸다. 암반의 매움인지 작은 돌의 매움인지는 차의 매운 맛의 정도를 통해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매움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했던가? 나의 혀가 아플 때 매움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왜 아플까? 부드러운 뿌리가 바위에 부딪힌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 계속해서 자라나는 뿌리는 암반을 만나 잠시 방황한다. 하지만 이내 암반에 굴하지 않고 틈을 골라서 비집고 들어간다. 바늘 하나 꼽을 데 없이 보이던 암반도 결국 차를 이기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차가 승리한 듯 보이지만, 차도 많이 아프다. 암반이 아픈 만큼 둘 다 아프다. 암반은 돌로 흙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고 차도 영양분을 얻어 좋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성장은 아프다. 그래서 성장통이라고 하나 보다.

이런 아픔을 뿌리는 안다. 그리고 줄기를 타고 잎으로 전한다. 손가락이 칼에 베이면 손가락만 아프지 않는다. 온몸에 통증이 전해진다. 그렇게 차나무는 아픔을 간직한다. 그리고 그 아픔이라는 통증을 ‘매움’이라는 선물로 승화시킨다. 그렇게 스스로의 아픔을 받아들여 ‘알싸함’이라는 맛으로, 향으로 바꾸고 고치나 보다. 고통을 받아들여서 스스로를 회광반조(回光返照)하며 맑고 밝게 나아가는 수행의 전 과정을 그대로 여여하게 보여준다.

난 매운 맛을 좋아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다. 보이차, 특히 생차도 맵지만 술도 맵다. 매서운 추운 날씨일수록 ‘매움’ 맛이 그립다. 추위에 맞서서 몸의 균형과 조화를 잡기 위해 ‘따스함’이 필요하다. 그런 조화로운 ‘힘’이 필요하다. ‘매움’은 그런 따스함과 힘을 준다. 차는 햇살 받은 암반의 따스함과 힘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스스로도 잎으로 햇살을 받고 암반을 가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힘을 차는 우리에게 전한다. 우리는 차의 ‘매움’을 통해서 따스함과 힘을 받아들인다. 햇살이 겉옷을 풀게 하듯이, 차는 우리의 모공을 열어준다. 땀도 내게 해준다.

크게보기

차는 ‘받아들임’을 통해 ‘열림’을 선물한다. 술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선물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차에 취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고 한다. 차를 통해서 행복이 들어온다. 차를 우려서 차호에서 찻잔으로 차를 붓듯이 건강을 붓는다. 건강이라는 복을 붓는다. 그렇게 복을 거꾸로 떨어지게 한다. 그렇게 옛사람들은 복을 마신다고 믿고 싶었나 보다. 복(福)자를 써서 거꾸로 붙였다. 다만, 복이라는 음이 같기에 박쥐(蝠)를 그리기를 좋아했을까? 거꾸로 매달린 그래서 떨어질 것 같은 박쥐의 모습에 ‘박’이 주렁주렁 달린 것을 연상한 것은 아닐까? 하늘에서 ‘돈다발’이나 떨어지라고 하소연했던 한 비구니 스님이 떠오른다.

정법은 따로 있지 않다. 특별히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데 물(物)이라고 할 만한 것을 굳이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경계는 사량분별의 소산일 따름이다. 다 받아들이면 나도 너도 물도 따로 없다. 이렇게 차를 통해서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는 것이 수행일까? 법은 본래 형체가 없다. 두루 통하는 회통(會通)이 귀할 따름이다. 만나서 통한다는 회통은 결국 받아들여서 나를 고치고 바꾸는 것이 아닐까? 차를 마시며 마음을 내어 볼 따름이다.

* 이 글은 “차를 마시고 마음을 내리고”(박현, 2009, GU)를 참조해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