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있으니
모든 티끌 속에도 마찬가지로 우주의 시공간이 들어있다네. (박상준 역)

의상대사 법성게 한 구절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범부들은 잘 이해하기 어려운, 어쩌면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지 않게 됐다.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나 자료가 손톱만한 칩에 모두 담기고, 손톱만한 칩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세계가 펼쳐지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일미진중함시방’이고, ‘일체진중역여시’다.

여기서 우리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즉 하나가 그대로 전부이라는 화엄의 사상을 떠올릴 수 있다. 각 현상이 서로 서로가 원인이 되어 밀접한 융합을 이룬다는 것, 즉 우주의 다양한 현상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어려운 불교사상을 거론치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말은, 물론 그 의미가 다 같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 찾아볼 수 있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도 일맥상통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나비효과란 나비의 날개 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말하자면, 오늘 서울에서 공기를 살랑이게 한 나비의 날개 짓이 다음 달 북경에서 폭풍우를 몰아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 큰 변화를 낳을 수 있다는 것으로 카오스이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화엄의 가르침에서 더 멀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 말은 열을 본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거론한 가르침이나 현상, 속담들은 모두가 세상 모든 것이 허투루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고, 아주 작은 몸짓도 그 근원을 파고들면 거대한 움직임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역도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말들이다.

베이징의 한 산과 들에서 여유롭게 노니는 작은 곤충의 날개 짓이 저 멀리 뉴욕을 강타한 폭풍우의 원인일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사건도 그 배경을 캐어 들어가다 보면 엄청나게 큰 흐름이 배경인 경우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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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오랜 시절 인연을 맺고 있는 한 비구니 스님이 있다.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남다른 원력을 갖고 있는 이 스님은 주지로 있는 강원도 오지의 사찰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사찰발전은 물론 지역 불교계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고, 불교계 유일의 어린이집과 방과후학교 교사 양성교육기관인 보육교사교육원이 학생 확보를 못해 폐원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원장을 맡아 회생 시킨 후 10여 년 넘게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 스님은 또 교계 한 방송매체에서 개국과 동시에 23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어린이 포교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방송이 극심한 경영난에 처해 프로그램 제작비가 없을 때에는 직접 제작비를 대며 10년 가까이 어린이 포교 프로그램을 살려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스님이 방송국 경영진의 눈 밖에 나면서 끝내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일이 최근 일어났다. 스님이 방송에서 하차한 이유를 따져보면 그 원인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정치적 세력 싸움과 맞닿아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스님은 방송국 운영책임자의 종교적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어려움을 견디며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방송 인력들이 무자비하게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방송국 책임자의 사과를 요구하며 다른 진행자스님들과 함께 공개법회를 했다는 이유로 미운 털이 박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타의에 의해 하차한 이후, 1년 만에 복귀를 했지만, 채 몇 달이 지나 지난 달 말일자로 끝내 방송국에서 내쳐지고 말았다.

방송국 직원보다도, 어쩌면 방송국 운영진보다도 몇 배는 더 방송국을 더 사랑했던, 방송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부처님의 향훈을 전하고자 했던 이 스님의 23년에 가까운 포교원력은 졸지에 현 방송국 운영진의 공적(公敵)으로 지목된 방송국의 전 이사장 스님 편이라는 올가미와 함께 무참히 꺾이고 만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비구니 스님은 전 이사장 스님과는 일면식도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눈에는 내편 아니면 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이 스님은 평생 정치를 알지 못했던 분이다.

다만, 방송국의 최고 책임자가 스님들에게 불경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기에 다른 진행자 스님과 함께 문제를 지적한 것이고, 오랜 방송생활을 하며 가족처럼 가까워진 방송국 식구들이 너무나 무자비하게 내쳐지는 모습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한 것이 방송국의 나이와 거의 비슷한 23년이 넘는 방송포교를 접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이 스님은 이 방송국에서 내쳐지면서 한 동안 고민에 빠졌다. 기자에게도 이 고민을 두고 조언을 구했을 정도로 스님의 고민은 깊었다. 그 고민은 교계의 다른 영상매체에서 스님에게 프로그램 진행 제의를 해온 것을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였다. 곧 개국 25주년을 맞는, 그동안 천직처럼 여겨왔던 방송국에서의 방송포교의 원력이 새 방송으로 옮길 경우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스님은 오랜 고민을 접고 새 방송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왔다. 결국 목적은 방송을 통한 포교에 있는 것이며, 그 목적은 꼭 그 방송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오랫동안 내 집처럼 정들었던 방송국을 떠나기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이 스님은 내년부터 새 방송에서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연말을 몹시 바쁘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스님은 요즘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술회했다. 불교도 잘 모르고, 포교라는 본연의 사명보다 자리에 연연하며 모든 것을 정치적 잣대로 평가하던 곳에서 막상 벗어나보니, 그동안 부질없는 짝사랑으로 헤어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소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부디 새 방송에서는 왜곡된 편견과 잣대에 의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일이 없기를, 또 앞으로는 제발 모든 것을 정치적 잣대로, 공익보다 사익이 우선된 결정으로 희생자를 만드는 일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종단정치가 제발 포교를 생명으로 하는 방송이나 언론까지 매몰시키는 일이 없기를, 일선의 방송진행자까지 정치적 이유로 억울하게 퇴출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희생자는 이 스님 한 분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