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불교언론’을 제2창간의 기치로 들어 올린 <미디어붓다>가 또 하나의 소중한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새 연재는 불교 문집 번역과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한문학자 겸 소설가 임종욱 선생님의 선시 소개와 그 해설입니다. 참선 수행자가 정진을 하고 난 결정체는 선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편의 선시에 수행자의 모든 것이 오롯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 세계는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심오한 정신세계를 읊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쉽고 현대적으로 풀어놓은 마땅한 안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요긴한 안내를 임종욱 선생을 통해 독자님들께 전하게 된 것입니다. 독자제현의 불교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金沙桃李晩風開  금모래 사장에 도리꽃이 저녁 바람에 피더니
詩客慇懃訪我家  시 짓는 나그네가 은근히 우리 집을 찾았구려.
師帶煙霞身外濕  스님은 안개와 노을에 젖어 겉옷이 촉촉한데
吾携柱杖掌中擡  나는 주장자를 손바닥 안에 쥐고 있노라.
曾從紫陌三衣破  그대는 일찍이 저잣거리를 헤매다 가사가 다 헤졌지만
獨坐靑山萬慮灰  나는 홀로 청산에 앉았노라니 온갖 생각이 재가 되었네.
滿囊千篇無道益  주머니 가득 시를 채웠어도 득도에는 보탬이 없으니
不如岩下養牛廻  바위 아래에서 소를 기르다가 돌아오는 것만 못하다네.

                                                           -백운에게 차운해서 올림(次贈白雲), 천경해원(天鏡海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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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해원(天鏡海源, 1691-1770) 스님이 살다 간 시대는 숙종조에서 영조조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이 시기는 비교적 조선 왕조가 임병양란의 혼란과 파괴를 극복하고 안정기로 접어든 때였다. 세종과 함께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받는 영조시대는 곧 스님의 활동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나 불교계의 속사정은 어떠했을까? 불교를 폄하하던 선비들의 못된 습성이 임란을 겪으면서 나라를 지키고자 승병(僧兵)들이 적극 나서자 다소 우호적이 되긴 했지만, 전란이 끝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오히려 전란을 치르면서 흔들리는 자신들의 위상을 호도하려는 편협한 아집이 불교를 더욱 배척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형국이었다. 그런 시기를 스님은 살아갔다.

그런 말법의 시대를 살았던 당시 스님들의 대처 방법은 크게 둘로 나눠지는 듯하다. 현실적으로 권력을 쥐고 있는 그들과 물리적인 충돌을 빚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들의 탄압이 날로 심해지더라도 차분하게 대처하면서 교화를 펼쳐 점진적으로 그들과 공존을 꾀하는 스님들이 있었다. 천경 스님은 충돌보다는 대화와 수양을 중시하던 분이었다. 사실 직접적인 충돌로 당시 불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저들의 교활한 망동을 지켜봐야 하느냐고, 진지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진 스님들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경 스님이 시를 준 바로 백운(白雲)이라는 스님이 그런 예에 속했던 모양이다. 스님은 사대부들의 어리석은 망집(妄執)을 일갈(一喝)의 사자후(獅子吼)로 깨부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백운 스님은 산사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세상에 나가 그들의 부딪치면서 거짓과 위선을 타파하자고 주장했고,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할까. 백운 스님과 천경 스님은 살아가면서 내내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님은 백운 스님에게 모두 네 편의 시를 남기고 있다. 그중 한 편은 네 편으로 된 연작시니, 두 분 사이에 남다른 교분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천경 스님은 산사에 칩거하여 조용히 수양에 전념하는 것으로 과업을 삼은 분이셨다. 여느 스님들의 문집에 많이 보이는 사대부 문인들과의 교유시도 스님에게는 별로 없다. 그런데 백운 스님은 입장을 달리했다. 개인적인 수양만큼이나 세상 사람들과 만나 그들을 일깨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보았고, 그 만남의 방식으로 시작(詩作)을 택했다. 세속을 향한 대응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였지만 친교의 깊이는 남달랐던 것이다.

오랫동안 도성에 머물면서 만행을 하던 백운 스님이 친구를 찾아 천경 스님이 머물던 산사를 들렀다. 벗을 만나는 반가움이 시의 1․2구에 잘 드러나 있다. 향기로운 복숭아꽃과 오얏 꽃이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더니 스님이 찾아왔다고 했다. 대뜸 시객(詩客)이라고 지목한 것으로 보아 백운 스님이 어떤 삶을 추구했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시를 즐겼고,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기질을 타고난 분일 것이다. 속인들과 어울리면서 승속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호방하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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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를 떠도느라 가사엔 먼지와 때가 자욱이 끼었던 모양이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저자 거리를 노니느라 삼의가 다 찢어졌다는 표현으로도 형편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 누추한 옷이지만 산사의 친구를 찾아 산길을 걸으면서 안개와 노을이 젖었다니, 시정의 속기(俗氣)가 연하의 기운으로 씻어지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스며 있다. 저잣거리에 나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백운 스님의 수행자의 삶이, 홀로 청산에 앉았노라니 모든 생각이 싸늘한 재로 변했다는 천경 스님의 수행자의 삶과 대조를 이룬다. 그런 생활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이 낫다고 자랑하는 심정도 아니다. 그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스님들이 절간에 칩거해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다들 절간을 비우고 도성에 산다는 것도 난망한 일이다. 두 개의 삶이 공존해야 불교도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너무 떠돌기만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바랑 안에 천 편의 시를 가졌다 한들 그것이 득도의 길로 나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면 허망한 짓이 아니냐고 넌지시 훈계한다. 부처가 될 씨앗을 내팽개치고 시작에만 몰두하며 방랑에 이골이 난 친구를 보면서 이제는 그만 돌아와 수양에 전념하기를 스님은 바라는 것이다. 바위 아래 잠시 몸을 누이고 고단한 심신을 달래면서 양우(養牛), 즉 목우(牧牛)의 삶을 살면 어떻겠느냐고 타이른다.

이 시를 읽노라면 백운 스님과 같은 분이 그리울 때도 있다. 절망에 가득 찬 시대를 제 한 몸과 문학으로 안으면서 끝까지 용맹정진했던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스님이 어느 골짜기 허름한 암자에서 세상과 결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런 분이 있었기에 우리 불교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념에 잠긴다. 천경 스님이 겁 없는 황소처럼 세상을 뛰어다니던 백운 스님을 염려하고 걱정했던 것도 비슷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임종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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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문경 동로에서 자랐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소설 창작에 뜻을 두었으나, 이후 창작은 포기하고 비평을 공부했다. 학교 신문사에서 주최한 학술상 비평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한문학으로 바꾸고 민족문화추진회와 유도회에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50여 편의 논문과 10여 권의 저서, 역서를 냈다. 주로 여말선초 한문학을 연구했고, 고려 말기의 시인 원천석의 시세계를 조명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전자불전문화콘텐츠 연구소 연구교수와 역경원 역경위원, 포은학회 정보이사로 활동하면서 불교 문집 번역과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운곡 원천석의 시문학 연구』,『고려시대 문학의 연구』,『한국한문학의 이론과 양상』,『중국의 문예인식』,『중국문학에서의 문장 체제 인물 유파 풍격』이 있고, 편저로 『고사성어대사전』,『동양문학비평용어사전-중국편』,『한국한자어속담사전』,『동양학 용어사전』 등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화담집』,『초의선집』,『논어』,『몽구』,『명심보감』,『천자문』 등이 있다. 현재 일본 교토로 건너가 도슈사이 샤라쿠로 변신하여 교토와 에도에서 활동했던 김홍도의 경험담을 소재로 한 역사추리소설 『샤라쿠, 새라쿠』를 집필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 일본을 오가면서 활약한 포은 정몽주의 발길을 되밟는 여행을 하면서 그의 삶과 사상, 문학을 조명하는 『정몽주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소설로는, 공자 시대 학당을 중심으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소정묘 파일 1, 2』과 지족선사와 황진이 사이의 질긴 인연의 끈을 추적한 『황진이는 죽지 않았다』가 있다.

*장명확은?

196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 강산이 세 번쯤 바뀌었다. 86년에 '국도기행'이란 제목으로 열었던 개인전을 비롯하여 20여 회의 그룹 사진전을 가졌다. 월간 <소설과 사상>에서는 우리나라 문인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모닝캄>과 <아시아나>등 항공사들의 기내 비치용 잡지 작업에 참여했다. 원광대학교, 서울보건대학교, 유한대학, 동방불교대학 등에서 사진을 가르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고 전통사찰 및 우리 전통문화를 주제로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