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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일한 날, 내 몸은 가볍다”

김주덕 | nokwoodang@gmail.com | 2014-11-06 (목) 16:51

‘뭐 급히 할 일도 없는데 한 일곱 시까지 만이라도 자보면 어떨까….’

 

여태 살아 온 그대로 내 일생에 늦잠은 없다.
늦잠이나 게으름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시 전에 일어나서 어제 아침부터 준비 중인 통밀 빵 반죽을 확인하였다.
마음에 쏙 들게 마땅한 2차 발효가 진행되어서
말린 사과를 다지고 견과류를 다져서 굽기 위한 3차 과정을 마쳐 두었다.

 

아직은 어두워서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를 몇 페이지 읽으며
오븐 예열을 한 후 빵틀을 넣고 손 전화에 알람을 맞추어서 밖으로 나왔다.
빵을 굽는데 25분이 소요되지만
대개는 잊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위험을 해결하는 방편이다.

 

창고에 들어가 키 큰 빗자루와 가벼운 플라스틱 삼태기를 챙겨
아래 주차장에 가서 그간 쌓인 낙엽을 쓸어 모아다 퇴비더미에 쌓아 올렸다.
제법 수북했다.

 

알람이 울려 냅다 달려 들어가서 빵을 꺼내 식힘 망에 올려 두었다.
붉어지는 동쪽 하늘을 간간히 바라보며
고개 돌려 한라산을 보니 정상에 붉은 빛이 들었다.

그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 코끝이 찡해졌다.


나의 짧은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 깊은 희열이었다.
감정을 감상하는 일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외발수레를 끌고 밭으로 들어갔다.
밭을 뒤덮고 있는 싱싱한 담배 풀을 한 가득 뽑아다(일거양득인 작업)
양들 먹이 먼저 주고 텃밭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스프링클러 물줄기를 피해 매일 아침 하는 벌레잡이를 하였다.
세상에나 또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이미 일 가운데 있다.
쉬는 날은 종종 이런다.


담 너머로 누가 볼 수 없는 환경이니 다행이다.

물을 주다가 채소에 붙어 있는 크고 작은 벌레들을 잡을 새로운 방법을 하나 찾았다.


나의 소규모 농사에 획기적인 방법 체득이라고나 할까?
스프링클러에서 물 호스를 빼고 호스 구멍 반을 엄지로 막고 강력한 물세례를
이제 막 결구 들어차기 시작한 브로컬리와 양배추에 쏘아 댔다.

 

손으로 집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던 작은 벌레들이 물 따라서 흘러 나왔다.
늘 하던 대로 작은 통에 벌레를 집어 넣어가며(닭 먹이로 준다)
채소 하나하나에 집중 물대포를 쏘아대다 보니 온 몸이 물에 흠뻑 젖었다.

 

그건 정말 작은 벌레에겐 틀림없는 물대포였다.
한미 FTA 비준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아대던 권력의 가혹함이
오버랩 되었던 것은 알량한 양심이었을까?

 

좁은 잎 틈새에 있는 벌레는 찾기도 어렵지만 집다보면 터지기 일쑤여서
느낌이 썩 좋지 않은데 알량한 양심이 나를 꼬집어도 그건 정말 획기적이었다.
결국 물에 홀딱 젖은 후에야 꽤 만족스러운 벌레잡이와 물주기를 동시에 마쳤다.

 

집에 들어 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아침 먹을 준비를 하였다.
첨가물도 설탕도 없이 구운 빵과 어제 딴 구아바와 토마토,
수입된 올리브 몇 알과 올리브유와 발사믹에 에스프레소 한 잔,

생각하기에 따라 호사스러운 아침이다.


늘 나물 반찬에 농사지은 것 위주로 먹다가 이렇게 혼자 쉬거나 일하는 날은
국적 없는 밥상을 준비하기도 한다.


먹을 것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색다른 식감과 맛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내가 먹는 것에 푹 빠져서 온전히 느끼고 생각하며 먹는 행위의 즐거움을 누린다.


말린 사과를 듬뿍 넣은 빵의 바삭함과 부드러움과 달콤함에 취해
이 맛난 것을 어머니께 보내 드려야지 생각했고
아깝게 좋은 햇살에 사과 한 상자를 더 구해서 말려야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올해 적과를 못해 반 이상을 닭 먹이로 주게 된 구아바는
농사시기를 놓치지 않는 부지런함이 더 필요하다고 자책을 하였다.

 

공정무역 커피와 이탈리아 산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먹으면서
내가 아무리 로컬 푸드니 신토불이를 마음에 담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산다고 하여도
가끔은 이런 색다른 먹을 것에 탐닉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어쭙잖은 합리화를 궁리한다.

 

아침을 마치면 이내 수확하고 아직 밭에 남아 있는
호박 덩굴과 수세미 덩굴을 걷어다 쌓을 것이다.

사람 대할 일 없는 이런 날은 퇴비더미 높아지는 즐거움에
땀 흘리는 것도 유쾌하다.

 

내게 쉰다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대화를 하거나 머리를 쓸 일 없이
단순히 몸만 쓰는 것이다.

 

허리 펴며 하늘을 바라보고 숨 고르며 혼자 묵묵히 일 한 날 내 몸은 가볍다.
육십년을 산
그러나 손은 팔십년을 산 것 같이 노동 강도가 센 여자의 쉬는 날 아침 풍경이다.

 

김주덕/ 제주 청재설헌 대표, nokwood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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