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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고단한 영혼, 진관사서 쉬어가다
모지현 기자 momojh89@gmail.com 2014-10-12 (일) 20:38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올해,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세상을 등진 고혼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상이 성대하게 차려졌다. 아직 여물지 않은 올기쌀로 지은 찐밥과 유과, 두부탕, 떡, 국수, 과일 등이 영단에 올려졌다. 가사장삼을 수한 비구니 스님들은 한바탕 바라를 펼쳤다. 모두가 일체의 외로운 영혼을 청해 올리는 정성스러운 공양이었다.
진관사국행수륙재보존회(이사장 계호 스님)는 10월 11일 오전 10시 진관사에서 국행수륙재를 봉행했다. 이날은 조선시대 전통 수륙재인 칠칠재(七七齎)를 따른 진관사 국행수륙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칠재로, 영가를 씻기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회향의 낮재가 펼쳐졌다. 더불어 진관사 국행수륙재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봉행되어 불교계 안팎의 인사들과 불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은 이날 국행수륙재를 보기 위해 사찰을 찾은 사부대중에게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돌아가신 분들을 천도하는 것에서 나아가 일체의 불보살님과 외로운 영혼, 생명이 있고 없음을 떠나 모두를 한 자리에 청하여 평등하게 법식을 베풀어 어느 한 자락이라도 생의 슬픔과 번뇌의 고통이 사라지게 하는 희유하고도 환희로운 법연의 자리”라고 소개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치사를 통해 “수륙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유주, 무주의 모든 중생들이 행복해지는 불교의식으로 고려시대부터 천 년 동안이나 전승되어온 장엄하고 성대한 의례”라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우리 사회와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환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사부대중 모두가 마음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은평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재오 의원과 김우영 은평구청장, 박원순 서울시장을 대신한 서울시 부시장도 참석해 덕담을 건넸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축하 기념식이 끝난 오전 11시, 본격적인 낮재가 시작됐다. 연을 필두로 진관사 사부대중 모두의 행렬이 일주문 밖으로 이어졌다. 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과 신도들, 수륙재에 초청된 외국 대사들은 물론 꼬까옷을 차려입은 진관사 유치원 어린이들까지 연에서 이어진 흰 천을 잡고 영가를 맞이하러 나섰다.
바라춤과 나비무로 영가를 연에 모신 대중은 다시 일주문 안으로 들어와 경내 홍제루 앞에 차려진 대령소에 연을 내려놓았다. 사부대중은 아득히 먼 길을 온 영가의 고단함을 위로하고자 차와 향과 절을 올렸다. 대령은 한 없이 이어졌다. 소중한 이를 잃지 않은 적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임을 기리기 위해 영단 앞에 긴 줄을 섰다. 같은 시간 스님들은 대령소 바로 뒤편에 마련된 관욕소에서 영가의 고단함과 번뇌를 씻고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히는 관욕의식을 봉행했다.
볕이 따가워지는 오후에 들어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을 불러내 삿된 것을 물리고 맑고 향기로운 도량을 만들기 위한 신중작법이 펼쳐졌다. 취타대의 연주와 바라의 맑은 울림이 온 도량을 메웠다.
이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사징하는 대형 괘불이 이운됐다. 돌돌 말려있던 괘불 속 부처님이 위용을 드러내자 사부대중은 합장으로서 찬탄했다. 낮재는 영산회상을 재현하는 스님들의 무용 즉 영산작법과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의 법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됐다.
진관사 국행수륙재 칠재는 이튿날인 12일 밤재로 이어져 수륙연기, 사자단, 오로단, 상단, 중단, 하단, 봉송회향으로 49일간의 거대한 법석을 회향했다.
한편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찰을 지정해 개최하는 가장 큰 불교의식으로, 망자를 위한 제사와 살아있는 사람들의 복을 빌기 위해 주로 행해졌다. 600년 역사의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조선 건국 초에 태조에 의해 유일한 국행수륙재로 지정됐다. 태조가 진관사에 와서 직접 세웠다고 전해지는 수륙사도 현재 진관사 뒤편에서 그 터를 확인할 수 있다.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20세기 초까지 설행되다가 6.25전쟁을 거치면서 산일됐다. 이후 1977년 자운 스님과 진관 스님에 의해 본격적으로 복원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사)진관사국행수륙재보존회와 부설 진관사수륙재학교를 주축으로 재의 보존과 전승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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