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황평우의 문화재이야기

아쉬운 한국정부의 약탈문화재 환수운동

| | 2010-04-09 (금) 11:31

해외로 불법 약탈당한 각국의 문화재를 되찾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되었다. 이집트 고(古)유물최고위원회 주최로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한국·그리스·중국 등 세계 21개국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약탈문화재가 많은 국가들이 공동 전선을 구축해 국제사회에 문화재 반환 여론을 조성하려는 이집트의 제의로 열렸다.

이 위원회는 30개국에 회의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총 21개국 대표들이 이번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우리 한국도 대표단을 보내서 외규장각과 조선왕실 도서를 반환 목록에 올리겠다고 한다.

필자(황평우)는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 정부의 아쉬운 약탈문화재 환수 대응에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에서 정부는 해외 다른 나라들과 공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한국의 경제력과 국가 위상이라면 얼마든지 국제기구나 국제회의를 주창할 수 있다.

민간(시민단체)의 약탈문화재 반환 운동이 활발하고 진취적인 나라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이러한 민간운동에 더해 한국 정부가 약탈문화재 환수를 위한 국제회의나 국제기구를 선도한다면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구를 한국에 둘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멀리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제기구를 경험할 수 도 있으며, 한국은 무엇보다도 약탈문화재 환수에 실질적인 외교적, 문화적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탄식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이미 2006년부터 이런 주장을 했다.

2006년 2월 23일 한겨레신문에 “약탈당한 문화재가 많은 나라(이집트·인도·중국·베트남·멕시코·에티오피아)들과 연대한 공동대응과 반환 성공사례 발표회를 개최하고 ‘문화재반환 요구 국제기구’를 우리가 주창하고 관련 기구도 유치해야 한다. 유네스코나 국제기념물유적협회, 세계박물관협회 등을 통해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반환 요구 실무진도 외교부가 아니라 문화재청이나 관련 전문가가 주축이 되고 외교부는 지원하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 라고 주장했으며, 2006년 6월 14일 동아일보를 통해 “이제부터라도 국제법, 문화재관계법 등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와 외교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을 다각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국제회의나 포럼에 한국의 문화재 상황을 알리는 홍보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이집트 인도 중국 베트남 멕시코 에티오피아 등 약탈당한 문화재가 많은 나라와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들과 함께 ‘문화재 반환 국제기구’를 만들도록 주창하는 것도 시도할 만하다.” 라고 제안했다.

국회도 필자의 이런 제안을 듣고 몇몇 의원이 질의를 했으나 한국 당국은 말로만 해보겠다라고 했지 실질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번 이집트 회의를 보면서 우리정부의 약탈문화재환수 노력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깝고 아쉬운 날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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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환수 대응 이대로 좋은가 (한겨레-2006. 2. 23)

2005년 4월25일 세계 문화유산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쪽에 빼앗긴 에티오피아 고대 악숨 왕국의 오벨리스크가 67년 만에 반환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이집트는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은 문화 사대주의 번역이다)에 있는 로제타석을 돌려달라고 했고, 페루도 마추비추 유물을 미국 대학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이탈리아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불법매입 문화재를 반환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약탈 문화재 반환사례를 보면, 1953년 덴마크에서 독립한 그린란드는 84년부터 2001년까지 3만5천여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다. 2차대전 후 독일은 43년 ‘런던 선언문’ 규정에 따라 강제로 약탈된 문화재와 원산국의 수출법에 위반되는 방식으로 유출된 문화재까지 반환에 포함했다.

2002년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의 한국 담당 학예관 피에르 캄봉은 경기도의 한 발표장에서 필자와의 공개 질의를 통해 외규장각 고서에 대해 당시 프랑스 제국주의 시절의 약탈을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에 약소국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를 ‘보편주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프랑스에 둬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또 ‘문화재 귀화주의’를 주장하며 이미 수십년이 지났기 때문에 귀화 문화재로 봐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아,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는 문화재 관리 능력이 없음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문화 보편주의는 문화 민주주의와 문화 다양성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반영해야 한다. 문화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보편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으며, 강제로 약탈한 것은 귀화될 수 없다. 한국도 각종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할 능력이 있다. 오히려 국립도서관 관장이 우리의 옛 고문서를 불법으로 팔다가 적발된 문화 후진국이 오늘날의 프랑스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재 반환정책 역시 연구·조사 예산 및 인력 부족과 전문성 없는 정치인들의 정략적 접근으로 안일하게 국제협상을 진행해 부작용만 양산하게 됐다. 대외협상 전문가가 부족하며, 국제 교류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고, 국제협약 가입에도 능동적이지 못했다. 전문가인 학자들도 자기 목소리 내기에만 급급했을 뿐 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한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정책 개발에 안이하게 대처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국제 회의·포럼에 한국 상황을 알리는 홍보 전략이 부재했던 것도 주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돼야 한다.

[문화칼럼/황평우]문화재환수 ‘민-관-국제연대’ 필요하다 (동아-2006.6.14)

문화재 약탈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재 약탈은 원산국의 국가적 자존심뿐 아니라 문화재의 가치를 짓밟는 비문화적 행위이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는 문화재 약탈의 정의에 ‘무력분쟁, 점령, 식민지배의 결과 반출하는 것은 물론 불법 거래로 가져가는 것’까지 포함시켰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 등에서 약탈 도굴한 것뿐 아니라 강압적으로 매입한 것도 포함된다. 영국 박물관(흔히 대영박물관으로 잘못 번역되고 있음),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외국산 소장품은 대부분 ‘불법 취득 장물’인 셈이다.

이들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해 간 문화재를 “보편주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자국에 둬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또 옮겨온 지 오래됐기 때문에 ‘귀화 문화재’로 봐야 한다는 궤변도 늘어놓는다.

그러나 문화보편주의는 기본적으로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다양성을 이해하고 반영해야 한다. 문화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보편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으며, 특히 약탈을 두고 이런 용어를 쓰는 것은 문화보편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이들은 “약탈 덕분에 문화재가 잘 보존되고 관리됐다”며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문화재 관리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 정족산에 잘 보관돼 있던 규장각 도서 6000여 권 중 300여 권은 빼앗아 가고 나머지는 불태워 버린 것이 ‘프랑스식’으로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방식인가? 프랑스는 국립도서관 직원이 우리의 고문서를 불법으로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또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약탈당한 미술품을 대부분 돌려받았다. 약탈 문화재에 대한 일관된 논리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동안 문화재 환수에 역량을 보여 주지 못했다. 협상 전문가가 부족하고 국제적 반환 정보 수집에 능동적이지 못했다. 규장각 도서의 경우 ‘장기간 전시’ ‘디지털화’ 등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번 합의로 ‘온전한 환수’가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많다.

중국은 정부 간 협상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정부(국방부)와 기업이 나서서 수만금을 주고서라도 경매장에서 사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최근 국내 모 방송도 세계 경매장에 나도는 우리 문화재를 구매해 들여오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려고 관련 부서에 기부금품 모금 허가 신청을 했다. 약탈 문화재를 국민모금으로 구입해 국가기관에 관리를 맡기는 것은 문화재 환수운동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민간 주도의 문화재 반환은 데라우치 문고에서 시작됐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1910년부터 5년간 문화재 조사 사업을 실시해 1500여 점의 문화재를 반출했다. 야마구치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이들을 찾아내고 1995년 돌려받은 것은 민간 차원의 노력 덕분이다. 당시 야마구치대는 정부가 아닌 대학 차원에서 보내 주며 ‘반환’ 대신 ‘기증’이라는 용어를 썼다. 최근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북관대첩비의 환수도 민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민간의 노력으로 시작됐지만 최초로 국가기관 간에 주고받았다는 큰 의미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국제법, 문화재관계법 등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와 외교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을 다각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국제회의나 포럼에 한국의 문화재 상황을 알리는 홍보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이집트 인도 중국 베트남 멕시코 에티오피아 등 약탈당한 문화재가 많은 나라와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들과 함께 ‘문화재 반환 국제기구’를 만들도록 주창하는 것도 시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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