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미학이 있는가?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는 다시금 돌들이 되어, 인간의 손길로 닦여진 저 반드러운 손때를 이제는 다 버리고 자연 속으로 되돌아와 있다. 탕녀인 딸들의 귀향을 위하여 대자연의 꽃들을 아낌없이 피워놓았다. 고대 광장의 포석들 사이로 향일성 식물들은 둥글고 흰 머리통을 쳐들어 올리고 붉은 제라늄들은 옛적엔 가옥이요 사원이요 공공광장이었던 자리에 그들의 붉은 피를 쏟아 붓는다. 많은 지식을 쌓아 어떤 이들이 신에 이르게 되듯이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거쳐 이 폐허는 어머니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에야 마침내 폐허가 과거를 떠나버렸으니 무너지게 마련인 사물의 중심으로 폐허를 다시 인도해주는 저 심원한 힘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마음 쓸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중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나오는 구절이다. 필자가 2009년 1월, 북아프리카를 답사하기 전 읽은 책들 중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문구이다. 필자는 국내외 답사를 하면서 역사문화유적을 보존하거나 이전한 것, 복원을 한 것과 그대로 둔 것 등에는 나의 뇌와 눈, 카메라렌즈 방향이 동시에 그곳을 향한다.

고대 유적을 폐허처럼 그대로 두거나 최소한의 현대적 기술로 아주 느리게 재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필자는 한국의 상황을 비교했다. 카뮈학의 석학인 김화영 선생은 그의 책『알제리 기행』에서 고대 유적지 티파사에 대해 “대자연의 딸이었던 자연 속의 돌이 인간에 의하여 다듬어졌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금 자연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이 티파사의 폐허다. 반드러운 문명의 돌이 다시 대자연의 돌이 되어, 하고많은 돌들 중 하나의 돌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고대 궁전과 대로를 건설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인간의 척도로 재는 시간이다. 무너진 궁전의 돌이 자연 속의 돌로 변하는 데는 인간의 척도로 잴 수 없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필자가 서두에 장황하게 글을 인용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에게는 폐허를 볼 줄도 모르고, 느끼지도 못하며, 폐허에 대한 미학조차도 없음을 한탄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많이 하는 필자가 가장 질문을 많이 받는 내용은 “당신이 다녀본 중 어디가 제일 좋더냐.” 이다. 매우 종속적이고 당돌한 질문이지만 처음에는 응하지 않다가 가끔은 말한다. “나는 폐사지와 폐허(고대유적지)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달밤에 폐허에서 김민기의 ‘두리번거린다.’를 부릅니다”라고.

헐벗은 내 몸이 뒤안에서 떠는 것은 사랑과 미움과 배움의 참을 너로부터 가르쳐 받지 못한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 리 번 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무너진 내 몸이 눌리어 우는 것은 눈물과 땀과 싸움의 참이 너로부터 가리워 알지 못한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 리 번 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텅빈 내 마음이 굶주려 외침은 꿈과 노래와 죽음의 참이 너로부터 사라져 잃어버린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 리 번 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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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적을 느낀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찾는 것이요. 천박한 자본주의에 익숙해져버린 나와 우리들 자신을 여과해보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한국의 현실에서 그저 이상론자의 치기에 불과하다고 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유적지 원형보존과 이전보존의 철학

문화재청이 국회에 보낸 2004년부터 2007년의 유적 발굴 후 처리통계에 의하면 2004년 38건 중 원형보존이 30건이며 이전복원이 8건, 2005년은 원형보존 29건, 이전복원 13건, 2006년 원형보존 18건, 이전복원 10건, 2007년 원형보존 15건, 이전복원 17건으로 나타났다. 원형보존은 유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보다는 매립의 형태로 재매장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또 이전복원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엄격히 말해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몇 천 몇 백 년전의 역사적, 문화적 경관을 아울러서 복원할 수는 없다. 특히 당시의 시간과 공간적 의미를 복원하겠다는 것 자체가 현대인이 행하는 과거에 대한 폭력이며 역사에 대한 기만이다. 따라서 복원이라는 용어보다 「부분중건, 복구, 수복(수리후 복구)」이라는 용어가 합리적일 것이다.

발굴 유적이나 역사적 상황의 조각을 그대로 두면서 “폐허의 미학”을 퍼즐게임처럼 상상해 나가기보다는 무엇인가 보여주고 재현하려다 보니 일각의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행정기관과 건축업자들의 논리에 따라가기 마련이다. 이를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온갖 논리와 방법이 시도되고 있는데 그것이 소위 알량한 전시관이나 현지 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며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건립 과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또한 위치 선정이나 건축양식 논의로 실제 유적의 진정성을 간과한 채, 관람객의 문화향유권과 스토리텔링이라는 미명아래 교육과 홍보기능을 강화해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소위 한국의 전문가(문화재, 건축, 전시기획, 박물관 모두 포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발굴유적지 보존 방법”에서 박물관 건립, 전시운영지침 마련, 전시디자인 구성, 교육기능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상황이 발생하는 필요 충분한 조건들을 사전에 점검・분석 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계천이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는 조선시대 유적발굴이 확실하게 예상되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토목과 건축 설계가 완성됐다. 이렇게 설계 전 유적발굴과 발굴후 보존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설계와 공사가 시작됐다. 이후 유적이 발굴되자 설계안을 변경해야한다면서, 문화재 때문에 공사를 못한다는 등 온갖 억지를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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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경우 발굴유적에 대한 이전대상유적과 원형보존 유적의 판별기준이 정량화된 것은 없고 정성분석(역사적·문화적·예술적인 탁월한 가치)에 의존한다. 물론 정량분석보다 정성분석이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분석이 가능한 장점이 있지만 전문가의 작의적 판단에 치우쳐버리기 쉬운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매우 심각하다. 일부 문화재전문가들이 발굴전까지는 건축대상지에 대해 건축주입장에서 자문행위를 하다가 중요한 유적이 발굴되면 시행관청이나 건축업자들의 편에서 이 유적은 보존가치가 미미하니 건축을 해도 좋다는 실로 범죄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는데 있다.

그 예로 선사유적과 천혜의 자연경관을 사라지게 한 한탄강댐을 묵인한 문화재전문가들, 화성 융건릉 주변에서 발굴된 정조대왕의 초장지에 아파트 공사를 허락해준 문화재전문가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공사현장에서 발굴된 건물터를 현장보존보다는 이전하게 하는 문화재위원들, 세계문화유산 종묘 앞에 155m 건물 신축을 동의해준 세계문화유산전문가들, 종묘옆 어영청 터에 신축을 허락한 문화재위원. 서울시청을 사적으로 가지정한 후 다시 허물도록 한 문화재위원들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들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낮과 밤이 다른 카멜레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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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사람들은 광주를 생각하면 전남도청을 상징적으로 떠올린다. 전남도청은 광주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몇 남지도 않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징물 중 가장 핵심인 전남도청 증축 분을 “문화의 전당” 입구를 만들겠다고 철거를 감행하겠다고 한다. 이곳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피의 학살을 시작하며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적 장소다. 즉, 1925년에 지어진 전남 도청만이 아닌 증축된 이곳까지 전남도청이다. 전남도청이 없는 광주는 의미 없는 존재일 뿐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전남도청의 존재는 민주와 인권의 세계적인 상징이다. 그런데 전남도청의 증축 분을 철거하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이 광주의 문화·예술·건축전문가들이다.

또한 한반도운하의 변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강의 역사와 문화를 파괴하는 사업 불과한데 여기서 육안으로 발견된 유적지만 1,428곳인 상황이다. 이 유적지들을 원형보존 할 것인지 이전할 것인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문화재전문가들은 토목행정에 끌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지난 용산참화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민속이나 켜켜이 내려오는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파괴하는 “뉴타운”사업은 1970년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밀어버린 “새마을사업”의 변종임에 불과한데도 이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전문가들은 없다.

문명은 이성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이다

구호와 이론만 그쳤던 개발과 보존의 조화. 그 실례를 보여줄 만한 일이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다. 탑골공원 옆의 종로2가 40번지 대지 208평에 지하 3층, 지상 9층짜리 임대건물을 신축하려던 건축주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나타난 조선시대 육의전과 피맛길 일대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지하 1층 전체를 현장 박물관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처럼 현장의 유적을 보존, 전시하면서 건물을 지은 국내 사례로는 국립경주박물관이 미술관과 사회교육관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신라시대 도로유적을 강화유리로 덮어 보존하고 그 위에 미술관을 지은 것과 신문로에 위치한 일조각 출판사가 건물을 신축하면서 발굴된 유적을 강화유리로 덮어 전시한 것이 유일한 사례다. 그나마도 흉내만 냈고 면적도 1~2평으로 극히 제한적이어서 오히려 유적을 핍박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반면 종로 육의전터 일대 신축 건물은 지하 3개 층 중 1층(약 130평) 모두를 유적 보존을 위한 공간과 전시시설로 활용한다. 지하 2m 20㎝ 지점에서 노출되기 시작한 18세기 건물터와 추가발굴로 나타난 조선 초기의 건물터를 비롯한 유적은 그대로 떠서 경화 처리 등을 했다. 이를 지하 7m 지점까지 하강시켜 15세기와 18세기 건물터를 겹쳐서 층위를 전시 및 보존한다. 또한 그 주변에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한 각종 유물과 토층 단면을 전사해 전시할 계획이다. 건축주는 이런 방식의 유적 보존을 골자로 하는 건축 계획안을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에 제출해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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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는 자신과 부인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영동빌딩'이라는 신축 건물 이름도 역사성을 고려해 '육의전빌딩'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번 유적 보존 방식을 마련하는 데는 학계의 전문가가 아닌 문화유산 시민운동단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싸라기 같은 서울한복판의 땅을 신축도 못할 지경에 처하지 건축주는 여러 곳에 하소연을 했다. 그중 국가에서 부지를 시가보상후 매입하라는 것이었으며 한편으론 필자를 수소문해서 찾아와 해결방안을 달라고 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그동안 고민하고 생각해왔던 유적도 보존하고 개발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현장박물관 조성안에 대해 설명했다. 건축주는 알겠다고 해놓고는 연락이 없다가 숭례문화재로 필자가 자주 언론에 등장하자 다시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번일은 미디어의 도움을 받은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후 필자는 국내외 사례를 조사하고 유적보존의 원칙과 방법, 전시구성, 교육홍보 방안, 보존과 개발의 상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결과물을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하여 마침내 지하에 “현장유적 보존 박물관”을 만들고 지상에는 건물을 신축하는 결정을 받아내게 된다.

건축주가 이곳에 임대 전용 빌딩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은 2001년 무렵. 부지매입과 설계 확정 등의 제반 절차를 마친 다음, 2007년 10-11월에 그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발굴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했다. 하지만 지하에서 많은 유적이 확인되고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에서 현장보존을 결정했다. 이에 그가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문화재청 담당직원에게 하소연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땅을 잘못 사셨군요.

그러나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서울시나 공공기관, 대기업에서 신축하는 곳에서 발굴된 유적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이전하도록 조치했다.

반면 일반 민간인에게는 보존을 강요했다. 그렇다 해도 이번 사례는 민간인이 20여억 원 이상이 예상되는 자비를 들여 박물관을 만들어 유적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문화재도 보존하고 개발도 하는 대표적 모범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 국가에서 지원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사적지 탑골공원의 경관보존으로 앙각을 적용해 잘려나간 부분에 대해 앙각적용이 오히려 주변경관과 건물 외관의 전체 균형미와 주변경관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며 앙각적용을 유보해줘서 건축주는 약59평을 보전 받게 되었다.

한국은 전문가의 나라이다. 아니 전문가 독재가 판이 치는 나라이다. 특히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전문가 독점주의와 종속성은 그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문화이론, 건축이론 등을 대부분 외국에서 가져와서 마치 최고의 전문가인 냥 행세를 하고 있다. 역사유적의 발굴과 수복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에서 어느 유적을 이전해서 전시관을 지었다면, 몇 년 후 한국에서도 일본의 유적 이전 방법론이 검증도 제대로 못한 채 무분별하게 성행할 것이다. 이렇듯 각종 서구 이론들이 유행처럼 써먹다가 버려진다. 즉 깊이 있는 성찰도 없으며, 학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토대가 튼튼해야 줄기와 잎도 튼튼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학문이나 이론의 진정성을 추구하며 자신이 배워온 것을 사회의 토대에 접목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대신에 당장의 화려한 꽃과 열매만을 추구한다.

더 큰 문제는 학문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상실한 채 천박한 개발자본주의와 결탁되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유적의 입장이 아닌 개발지상주의와 인테리어 지상주의로 영혼을 매매한 대가로 가짜로 만들어진 유적을 양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화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자연을 자신들의 의지에 굴복시켜 스스로의 힘과 영화를 자랑하려는 듯 돌과 나무를 다듬어 궁전과 광장과 사원을 지었고 제국을 건설했었다. 그것을 문명이라 불렀다. 그러나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결국 승리하는 것은 호모 파베르의 힘이나 이성이 아니라 끈질기게 기다리는 자연의 힘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