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대웅전

보물 제 408 호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연 대 : 1739년 (영조 15년)

종아리가 무거웠다 !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물을 마시는 지역의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연륜이 차면 차곡차곡 쌓인 체내의 석회성분 때문에 노인들의 종아리가 두껍고 굵다고 하더니 꼭 그 경우 같다.

첫 느낌치고는 독특했다. 쌍계사 대웅전이 눈앞에 나타나자 육중한 폼새에 덩달아 몸과 마음이 침잠되고, 다가서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차분해진다.

쌍계사라는 절 이름(寺名)은, 하동 지리산의 쌍계사가 워낙 지명도가 높기 때문에, 오늘 소개하는 논산의 불명산 쌍계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속세의 번잡스러움에 지친 이들에게는 적막한 산사의 호젓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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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절이나 있을 법한 전설이나 번창했을 때의 규모가 대단했다는 기록은 이곳 쌍계사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쌍계사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다른 전각의 규모에 비해 안 어울릴 만치 웅장한 대웅전은 홀로 예전의 대규모 사격을 웅변해주는 듯하다.

주석하는 스님 왈 “대웅전만큼은 본사급입니다. 허허”. 자랑스러운 말씀이시다.

과거 600여 칸의 대찰이었던 쌍계사였기에, 조선 숙종 때 소실된 절을 사세에 걸맞도록 중층대웅전으로 중창했으나 20년 만에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지은 것이 현존하는 쌍계사 대웅전이다.

다른 전각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를 펼 수 없던 조선의 불교 상황에서 소실되었는데도 유독 대웅전에 대해서만큼은 집요한 불사의 의지를 보인 듯하다.

중층으로 계획했으나 높이를 감당할만한 고주의 재목이 없어서 단층에 그쳤다하니 요즘 식으로 말하면 2층짜리 건물의 기초에 1층을 세운 격이다.

때문에 기둥들은 하나같이 육중한 두께를 가졌으며, 마름질하지 않고 생긴 대로 치목한 제멋대로의 기둥들이지만 각기 형상에 따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산만할 뻔했던 거슬림을 훌륭하게 극복했다.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을 건립함에 있어 꾸불꾸불한 자연목을 사용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목재가 없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고, 중층건물을 포기해야 했음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산천은 쓸 만한 나무가 부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같은 사례는 다른 고찰에서도 능히 찾아볼 수 있지만 쌍계사 대웅전이 갖는 압권은 우악스럽게 코끼리 다리 같은 기둥사이에서 더없는 화려함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꽃 창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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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두껍고 귄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대웅전의 기세는 화사한 꽃 창살로 인하여 금세 품격 있고 친근한 부처님의 미소로 화답하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쌍계사를 찾아온 이들에게는 비록 머리에 이고 온 공양물도 없고, 주머니 사정이 옹색하여 불전을 마련치 못했다 해도, 부처님 전에 다가서는 걸음 속에는 이미 형형색색의 꽃다발이 한 아름 주어진 셈이다.

문창살에 아름다운 꽃을 현란하게 수놓듯 새겨 넣은 것은 단순히 건물을 장엄함을 넘어서 지극한 불심과 예술혼이 묻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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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며 진리를 위한 정진으로 상징되는 바, 드나드는 문에 꽃을 새기는 간절함은 부처님 전에 올리는 숭고한 공양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궁궐이나 일반 건축물에는 꽃 살을 새기지 않고 사찰의 주요전각에만 등장하는데 유존하는 꽃 창살 중에는 내소사 대웅전이나 통도사 금강계단, 신흥사, 성혈사, 정수사 등에서 사시사철 부처님 전에 시들지 않는 꽃을 공양하고 있는 것이다.

쌍계사 대웅전은 무궁화, 국화, 매화, 연화, 목단을 수놓고 있는데 전면 다섯 칸의 문짝 열개를 매우 섬세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짜맞춤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오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내소사와 통도사 창살이 목질이 드러나도록 채색이 씻겨 내려간 반면 쌍계사의 창살은 더러는 무디어지고 맨살이 드러나기도 하였지만 꽃마다 뽐내듯 어김없는 빛깔로 화려함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 감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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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간문 앞에 바짝 다가서서 올려다본다. 애초에 꽃을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모를까 거개의 남자들에게 여러 가지 꽃이 만발한 꽃 천지를 만난다는 것은 마냥 즐겁거나 가슴 울렁이는 순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과 함께하는 오늘은 이 화사하고 사치스러움이 조금도 불편하지가 않다.

원색의 꽃밭 가운데에 파묻혔다는 착각이 들만치 빗꽃살문의 꽃문양들이 사방으로 뻗혀있는 가운데 양팔을 들고 고개를 쳐들자, 꽃 잔치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부자가 된 듯 포만감이 가득 밀려온다. 창살이 꼭 화과자 세트 같아서 마냥 달다. 이런 법당에 계신 부처님은 참 복도 많으시다.

창은 건물에서 개방성과 폐쇄성을 공존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바깥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또 창을 통해 안의 존엄을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 창살의 문양은 섬세한 조각과 세밀한 맞춤, 빼어난 구성으로 예술적인 조형미를 나타내지만, 곧 해당건물의 격을 상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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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대웅전의 건축은 당연히 대목장의 몫이로되, 창호에 대해서는 별도의 창호장인이 제작하게 된다. 4년을 정성스레 말린 소나무는 톱밥가루 잔뜩 묻어 땀 젖은 장인의 머리칼과 여기저기 상처 난 거친 손을 만나면서, 고아한 매화도 되고 수수한 국화도 되며, 풍만한 목단도 된다.

햇빛을 유인하고, 달빛에 젖으면서 이 꽃들이 법당마루에 마음껏 꽃가루를 뿌리면, 애절하게 모은 손끝 손끝들에게 한량없는 환희와 법열로 이끌어 줄 것이고, 해탈의 문은 열릴 것이다.

쌍계사 대웅전은 육중한 기둥과 꽃 창살의 수려함 뿐 아니라, 찬란한 자태를 보이는 닫집과 그 주위를 나르는 극락조가 신비롭고, 코끼리 다리 같은 기둥에 어우러진 공포와 처마 끝에 숨어있는 용의 얼굴까지 만나다보면, 어느새 대웅전을 두고 강강수월래하는 스스로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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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기둥의 하단이 흰개미의 공격으로 상해있는 모습이다. 대대적으로 보수를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행여 창살과 단청이 원만히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문짝을 모조리 떼어다가 경성 한복판에서 전시를 했던 무식한 기록도 있으니, 대웅전도 다행이지만 창살 나름대로도 풍상을 잘 견뎌온 것이다.

교구본사 급 대웅전이라 자랑했지만 한적하기만한 쌍계사의 스산한 분위기는 대웅전 기둥처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처럼 훌륭한 법당에 왕성한 법향이 그리운 것이다.

쌍계사를 가노라면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의 묘를 지나게 된다. 거열형, 그러니까 사지가 수레에 묶인 채 찢겨서 죽임을 당한 성삼문의 시신은, 역적의 말로가 어찌된다는 본보기 삼아 말에 매단 채 온 나라를 끌고 다녔는데, 이곳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남아있는 살덩이가 없어 그의 다리한쪽을 묻었으니 성삼문의 여러 묘 중(?) 하나가 예인 것이다.

크게보기그만 고초를 멈추고 예서 쉬라고 부처님께서 막아 주셨는지 성삼문의 절개와 한이 남아있는 건 지 쌍계사의 단청은 유독 검붉다.

오대산 월정사에 가면 세조 임금이 입었던 내의가 피고름자국이 남겨진 채 전시되어 있다. 자신의 정적을 잔혹하게 멸하고, 조카를 내치면서 앉은 용상! 말년에 부처님께 참회하였다하여, 월정사에서는 문수동자가 나타나 등허리까지 닦아 주며 보듬어주셨는지 몰라도, 오늘 쌍계사 부처님께는 과연 그래도 좋은 것인지 따로이 여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