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서 광주행 KTX에 몸을 실었다. 광주까지 3시간. 광주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버스를 타고 사평까지 가는 길. 벚꽃이 만개한 도로가 나를 반긴다. 유마사에도 꽃들이 만발할까? 비가 많이 내리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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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유마산 입구. 현 주지인 일장스님은 유마사 일대를 쾌적하게 조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민왕, 태후와 함께 홍건적 피해 피신…모후산(母后山) 돼다

유마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절을 품고 있는 모후산(母后山)도 이름처럼 포근했다.

“지난 겨울, 템플스테이 하러 온 아이들과 함께 꽁꽁 얼은 내남천에서 썰매타고 놀았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템플스테이 관련 공문을 하나 보낼 게 있으니 공양주 보살하고 같이 산책로에 다녀오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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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산 산책로 가는길' 솔나무, 삼나무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후산 산책로는 심신의 안정과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보살님과 함께 모후산 산책로로 향했다. 홍건적이 쳐들어오자 공민왕이 태후를 모시고 피난을 왔던 곳. 공민왕은 환궁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1년을 지냈다. 그런 이유로 원래 명칭인 나복산이 모후산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는 동복현감으로 부임했던 서하당 김성원이 노무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다 순절해 이 산을 모호산(母護山)이라 불렀다. 천년사찰 유마사가 폐허가 된 것도 모후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모후산은 빨치산들의 본거지였다.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해 활동한 빨치산들로 인해 유마사는 소각됐다. 산은 왕도, 태후도, 빨치산도 가리지 않고 품었는데 인간들은 그런 모후산을, 유마사를 마음대로 한 것이다.

木·水·石 조화 이룬 모후산 “무릉도원 따로 없네”

산책로에 들어서니 무릉도원에 온 느낌이었다. 솔나무, 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길. 대충 길을 가르쳐주고 떠난 보살님을 뒤로 하고 산책로를 걸으니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정상까지 잘 조성된 깔끔한 길들. 간간히 들리는 물소리는 청아했다. 이런 호사를 유마사에 누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한참 걸어올라 가는데 산 중턱에서 한 거사가 내려온다.

그저 산책로를 돌고 있다고 하니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든다. 나무와 바위로 뒤 덮인 산. 거기에 안개까지….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지나간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뭐에 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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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산 산책로는 깔끔했다. 등산객들을 위해 돌 하나, 다리 하나 세심하게 갖춰져 있다.

산책로를 뒤로 하고 다시 유마사로 내려와 샘물을 마시니 꿀맛이다. 이게 사는 것인데 산에 올라가기 전 “나는 세속이 무섭고, 별로 바랄 것이 없다. 반듯하게 절 다시 만들고 떠나려한다”는 스님의 말씀이 뇌리에 스친다.

그 마음을 아셨을까? “시간 되면 언제든지 오셔. 기다리고 있을 게” 8년 넘게 한 번도 찾아오지 못한 나에게 스님은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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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떠나고 한참 동안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적막함이 나를 더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내가 속세에 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 봄, 나는 잊지 못할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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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사를 관통하고 있는 계곡물. 물, 나무, 돌이 어우러진 유마사는 천연 자연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