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정찬주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

“쇤네가 대사님으로 변장을…”<br>정찬주 장편 ‘천강에 비친 달’-31

정찬주 | ibuljae@naver.com | 2014-06-27 (금) 11:02

천강에 비친 달 〈31〉


소쩍새 울음소리


세종 20(1435).

대자암 뜰에 매화나무 꽃이 가지마다 피어나고 있었다. 매화향기가 법당 안으로 밀려들곤 했다. 대자암 뜰에는 주지의 취향대로 이식해 온 청매, 백매, 홍매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청매는 흰 꽃에 꽃받침이 연둣빛이었고, 백매는 흰 꽃에 꽃받침이 연분홍빛이었고, 홍매는 선홍빛의 꽃에 꽃물이 든 듯 꽃받침도 붉었다. 매화향기를 맡고 있으면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졌다. 신미는 이 시기를 일 년 중에 가장 좋아했다.

그러나 이 무렵 신미는 대자암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흥천사에서 임금의 명을 기다리라는 교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교지의 내용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집현전 학사를 파직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정음청 학사로 제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청계천변의 정효강 집에서 수양과 회동했을 때 정음청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교지의 내용이 이미 오고간 얘기였으므로 신미의 마음은 담담했다.

올해 신미의 나이는 33세였다. 14세에 출가했으니 어느 새 승랍이 20년이나 된 셈이었다. 신미에게 흥천사는 어느 때나 감회가 새로워지는 절이었다. 원경왕후 천도재를 지내면서 세종을 친견한 곳도, 스승 함허를 다시 만난 곳도, 세종의 지시를 받아 우리 글자를 처음으로 궁리한 곳도 흥천사였던 것이다.

크게보기


신미가 흥천사에 온 지 열흘이 됐을 때였다. 마침내 제학 최흥효(崔興孝)가 찾아와 내불당으로 입궐하라는 세종의 명을 전했다.

내불당에 주석하라는 전하의 명이오.”

알겠습니다.”

내불당은 나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오.”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최흥효는 일찍이 세종의 명을 받아 내불당에서 금자 <</SPAN>법화경>을 쓴 장본인이기도 했다. 세종이 최흥효를 보낸 것은 그가 비록 유생이기는 하지만 불경을 사경한 인연이 있어서였다.

나으리께서 쓰신 금자 <</SPAN>법화경>이 내불당에 봉안돼 있다는 것을 알고 진즉 뵙고 싶었던 차였습니다.”

불씨(佛氏;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고 쓴 글씨라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되오.”

사경의 공덕은 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수승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나으리께서는 크게 복을 지으신 것입니다.”

하하하.”

최흥효는 큰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내불당 불상 안에 불골(佛骨)이 있다는데 기분이 개운치는 않았소. 헌데 전하께서는 귀하게 여기시는 것 같았소.”

전하께서 석가모니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누구시오?”

조그만 천축국의 왕자로 태어나 태자 때 출가하여 도를 이룬 성인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알 수 있는 족보가 있소?”

신미는 갑자기 족보를 묻는 최흥효의 물음에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최흥효가 신미를 몰아붙이듯 말했다.

석가모니의 선조가 누구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아내가 누구인지, 형제자매가 누구인지를 밝힌 족보가 있을 것 같아 물어본 말이오.”

석교는 전생과 내생을 믿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생을 얘기하는 경전은 있습니다만 족보는 없습니다.”

왕족 출신이 족보가 없다니 의아하오.”

최흥효는 차를 좋아하지 않는지 처음 잔만 마시고 두 잔째는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고 절에서 술을 내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족보라기보다는 부처님의 계보를 밝힌 경()은 있습니다.”

무엇이오?”

“<</SPAN>원각선종석보>라는 경입니다.”

나 같은 석교의 문외한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경이오.”

순간 신미의 머릿속에 불이 하나 켜지는 듯했다. 유생이 관심을 갖는다면 무지렁이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미는 최흥효가 알아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부처님 가르침을 알기 전에 부처님의 뿌리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무지렁이 중생들을 위해 우리 글자로 <</SPAN>원각선종석보>를 만들어보자.’


그날 밤이었다. 소쩍새가 사리전 용마루 위로 날아와 울었다. 경계심이 많은 소쩍새가 사리전까지 가까이 온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신미는 입궐하기 위해 바랑을 정리했다. 옷가지와 범자 서책들과 경전을 챙겼다. 그래도 남은 짐은 날을 잡아 말구종이 나르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신미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소쩍새 소리가 더욱 크고 구슬프게 들려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소쩍새 울음이 뚝 끊어지더니 발걸음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신미 방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신미는 걸음걸이로 보아 늙은 말구종이라 짐작했다. 말구종은 늙은 나이답지 않게 다리에 힘을 주듯 겅중겅중 걸었다.

사간원 구실아치가 대사님을 뵙겠다고 왔습니다요.”

데리고 오너라.”

잠시 후 신미는 말구종을 따라온 사간원 구실아치를 바로 알아보았다.

아니, 그대는 정 지평 댁에서 보았던 사람이 아니오?”

그렇습니다요. 대사님께서 수양대군마마의 칼에 죽을 뻔한 저를 살려주었습니다요.”

중의 도리를 했을 뿐인데 그게 어쨌다는 것이오.”

은혜를 갚고자 찾아왔습니다요.”

이 밤중에 고마움을 잊지 않고 찾아왔으니 됐소. 그러니 돌아가시오.”

대사님께서 내일 입궐하시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요.”

아니, 그걸 어찌 안다는 말이오. 누구한데 들었소.”

사간원에서 우헌납을 지내셨던 최흥효 나으리와 최수 헌납 나으리가 하는 말씀을 들었습죠.”

뭐라고 하였소.”

대사님이 내불당으로 가는 것을 막고자 흥천사와 육조거리 사이 숲에 자객을 보낸다고 하였습니다요.”

자객이 태조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능찰인 흥천사에 들어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만약 들어온다면 이는 태조를 능멸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흥천사 밖의 숲에서 신미의 목숨을 노리는 게 분명했다.

한때는 사헌부의 관원들이 나를 탄핵하려고 애를 쓰더니 이제는 사간원 관원들이 내 목숨을 노리는구나.”

신미가 얘기할 때 좀처럼 끼어들지 않는 말구종이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대사님 목숨이 위험하니 입궐하시는 날짜를 바꿔야 합니다요.”

전하의 명을 어찌 거역하겠느냐.”

내일 입궐하시는 것은 칼잡이에게 목숨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요.”

사간원 구실아치도 만류했다.

대사님은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입니다요. 저도 대사님의 목숨을 구하고자 아무도 몰래 이곳까지 달려왔으니 입궐을 미루셔야 합니다요.”

알겠소. 그러니 그대는 돌아가시오.”

신미는 사간원 구실아치가 돌아간 뒤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임금의 명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내불당으로 가야 했다. 그것만이 신하들의 의견과 달리 해인사의 대장경판을 왜국에 보내지 않고 지켜준, 흥천사 사리전을 태조 때보다 더 장엄하게 중건해준, 우리 글자를 만들도록 자신에게 학사 벼슬을 제수한 세종에게 신하된 도리를 다하는 일이었다.

말구종은 방문 밖에서 물러가지 않았다. 신미가 입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라는 듯 고집을 부리며 시위했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잠은 저만큼 달아났다. 할 수 없이 신미는 말구종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전하의 명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불구덩이 속이라도 들어갈 것이다.”

대사님은 나라의 큰일을 하고 계신 분입죠. 그러니 더욱 목숨을 아끼셔야 합니다요.”

그렇다면 네가 어찌 해야 하느냐?”

대사님께서 반드시 내일 입궐하시겠다면 약속을 한 가지 하셔야 됩니다요.”

그것이 무엇이냐?”

쇤네가 대사님의 삿갓을 쓰고 승복을 입고 역마를 타겠습니다요.”

그건 안 된다.”

쇤네야 다 산 늙은이입죠. 반면에 대사님은 임금님을 도와 나랏일을 하실 분입죠.”

순간 신미는 자신을 위해 죽겠다는 말구종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신미의 생각은 말구종과 달랐다.

비록 신분을 다르지만 네 목숨이나 내 목숨의 값은 같은 것이다. 부처님은 미물의 목숨까지도 사람만큼 귀하게 여기셨던 분이셨다.”

쇤네는 한때 무술을 연마한 적이 있습죠. 한두 명 자객의 칼쯤은 피할 자신이 있습니다요.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지나가는 길이니 목숨은 잃지 않을 것입니다요.”

말구종은 한밤중이 됐는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신미는 말구종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네 뜻을 알았으니 돌아가거라.”

신미는 말구종이 돌아간 뒤 좌복을 꺼냈다. 눈을 반쯤 감고 좌선에 들었다.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좌선이 최고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들끓었던 생각들이 저만큼 달아났다. 머릿속이 허공처럼 텅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고요한 호수처럼 텅 비워진 머릿속에는 소쩍새 울음소리만 오롯이 남았다. 신미는 자신이 소쩍새 울음소리가 되어버린 듯했다.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한글창제의 주역 신미대사가 한양에 올라왔을 때 자주 주석했던 고찰, 정릉 흥천사가 협찬합니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청현 2014-06-27 11:09:24
답변  
우리 인생은 내면의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엮어지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영향 또한 크지요. 말구종이 목숨을 내놓길 주저하지 않으니 신미 스님의 대업이 어찌 하찮다 하리오? 목숨을 목숨으로 갚는 말구종이 깊은 감명을 줍니다.
안담 2014-06-28 10:56:25
답변 삭제  
석가모니 부처님의 족보를 따지는 최흥효의 의식에서 세상 모든 것을
유교적 잣대로 들이대는 신분 차별주의가  확연히 들어납니다.
당시 백성들의 생각도 그랬을 터이니 이를 포교에 활용하려는 신미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군요. 자객을 보내서라도 불교의 싹을 밟으려는 숭유가 마치 종교전쟁 같습니다.
무진 2014-07-09 15:58:10
답변 삭제  
얼어 있던 것이 녹아서 풀리듯
소쩍새 울음소리에 그리운 님 맞이하듯
남실대는 매실 꽃향기를 뽀얀 봄빛 아지랑이에 실어 보내듯
우리글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민초들에게 다가서고 있고나
행여 가슴조리며 먼 지평선에서 다가올 기다림을 배워본다.
비밀글

이름 패스워드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