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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노력으로 지혜를<br> 성취할 때 삶은 비로소 완성된다

| | 2008-09-08 (월) 00:00

쉐우민 명상센터 입구크게보기

쉐우민 명상센터는 순수위빠사나(純觀, suddha-vipassanā) 수행처이다.

선정의 성취로 이끄는 사마타 수행(止) 없이 열반을 성취하는 방법으로, 순수하게 주시(sati, 念)를 통해 지혜를 계발하는 위빠사나(觀)만 행한다고 해서 순수위빠사나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수행자는 집중을 통한 몰입에 비해, 현상의 생멸에 대한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수행자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위해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사념처(四念處)를 모두 활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마음을 따라서 관찰하는 심념처(心念處)가 가장 발달된 수행처로 유명하다.

수행자는 마음을 통하여 모든 대상을 알아차린다. 쉐우민 명상센터의 수행자는 관찰대상을 마음으로 주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알고 있는 마음 역시 바라봐야한다. 수행자가 수행을 할 때 나타나는 마음은 여러 가지이다. 먼저 대상을 주시하는 마음이 있고, 대상과 더불어 주시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대상을 주시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는 마음까지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다. 아는 마음 즉, 주시하는 마음을 그 대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방법처럼 들숨과 날숨을 통해 발생하는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수행처에서는 그 현상을 주시하는 마음이 수행의 주요대상이고 다른 모든 마음들도 대상이 된다. 처음에는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배의 움직임처럼 선명하지 않겠으나 점차 마음 역시 신뢰할 수 있는 수행의 대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몸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보다 마음을 지속적으로 조용히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통증이 나타나면 통증 자체에 대해 신경을 쓰기보다 통증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대한 마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는 대상을 아는 마음을 보기 어렵다. 따라서 시작의 단계에는 느낌의 관찰과 병행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마음 자체를 관찰하기보다, 어떤 감정이 일어났을 때 몸에서 어떤 느낌으로 나타나는가를 살펴보면 마음과 느낌을 동시에 보게 되는 것이다. 시작의 단계에서 마음을 직접 볼 수 없기에 마음과 느낌의 연계를 시작으로 마음에 대한 관찰이 시작된다. 경행을 하는 경우도 몸과 마음을 모두 관찰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관찰하고 그것을 아는 마음도 관찰한다.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몸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그리고 무엇을 보게 된다거나 느낌으로 인해 발생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아는 마음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심념처 수행의 시작에 있어 수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긴장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쉐우민 사야도는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강요하지 않고, 긴장하지 않으면서 가장 위대한 노력이 가능해야 한다.” 수행자는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아주 편안한 자세가 필요하다. 한 가지 대상을 집중적으로 보기위해 긴장하거나 애를 쓰면 한 곳에만 집중되어 다른 곳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긴장감은 수행자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하는 의욕이 만들어낸 모습을 보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든 후에 알아차림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시하는 마음과 주시하는 마음을 관찰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려면 지나치게 힘을 주지 말고 지나치게 열심히 시도하지도 않으며, 통제하려거나 조정하려말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또한, 쉐우민 사야도는 관찰대상에 명칭을 붙이거나 관찰을 위해 인위적으로 동작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부정하신다. 다시 말해, 집중을 유지하기위해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일부러 천천히 걷는 등의 집중을 위한 테크닉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관찰했을 때 지혜의 법이 일어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현상을 통해서는 법의 이치를 알기 어렵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 걷기위해 다리를 들고자 할 때 들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다리를 들게 되고, 앞으로 밀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앞으로 밀게 된다. 그리고 걷는 중에 한 쪽에서 소리가 들리면 수행자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왜 소리가 나는지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소리가 일어난 곳을 보면서 보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보고 나서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계속 연계되어 알아차림을 지속하게 된다. 이 방법을 통하여 수행자는 모든 현상들이 이와 같은 조건으로 인해 이와 같은 결과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 수행자의 명상홀크게보기

수행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데 있어,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있거나 내가 어떻게 변화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과 결과의 연속으로 현상들이 나타난 다는 사실. 즉, 연기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성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위적인 동작을 만들어내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보기 어렵게 만든다. 느낌에 집중하여 그 느낌을 아는 것은 가능하나 그대로의 성품을 보기는 어렵다. 단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 소리를 들으면 단지 들음을 알기만 하고, 들리는 소리가 무엇인지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를 판단한다면 그것은 심념처 수행이 아니다. 사야도께서는 수행자에게는 아는 마음(knowing mind, noting mind, 주시하는 마음)과 관찰하는 마음(observing mind, watching mind)의 두 가지 마음만 있어야 하며, 둘 중에 하나의 마음만 있다면, 다른 자리를 ‘나’라고 하는 자아관념이 항상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하신다. 따라서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어느 자세와 어느 수행방법에서이든지 마음으로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관찰한다는 부분에 있어서 아는 마음과 망상 사이에 혼동이 올 수 있으나, 아는 마음은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을 말하고 망상은 그냥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망상은 마음이 대상을 놓쳐버린 상태이다. 수행자는 물론 망상의 성질 역시 알아야 한다. 수행자는 망상을 무조건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의 성품을 알아차리고, 망상을 주시하여 망상의 소멸을 보는 것이다.

수행은 열심히 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렇게 되기 더 어려울 수가 있다. 따라서 하려고 하지 말고 기대하지 않으며 단순하고 편안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쉐우민 명상센터의 수행자들은 수행처 안에서 수행을 하며 일어난 모든 마음과 감정을 지도자 스님께 보고한다. 2002년 쉐우민 사야도의 서거 이후, 현재 우 떼자니야(U Tejaniya) 사야도께서 수행을 지도하고 계신다. 마음을 관찰하는 쉐우민 명상센터의 인터뷰 시간에서 긴장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벌레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일어난 혐오스러운 마음, 듣기 싫은 법문을 들으며 일어난 성냄의 마음, 그 마음들을 관찰한 마음 등, 수행자에게 일어난 마음들에 대하여 편안하게 논하는 자리가 바로 인터뷰시간이다. 또한 우 떼자니야 사야도께서는 그 마음들이 법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다.
우 떼자니아 사야도크게보기

쉐우민 명상센터는 수행의 결과에 대해 체험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수행자가 경험하는 특정의 현상보다 지혜가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수행자들은 집중에 힘을 쓰고 집중으로 인해 새로운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물론 올바른 집중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자칫 의도된 집중은 가상의 현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는 특정의 현상이나 체험에 집착하거나 만족하여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에 쉐우민은 특정의 체험이나 수행의 단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에 대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을 수행의 발전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의 체험을 통하여 성인(聖人)의 도과(道果)를 얻었다는 것은 쉐우민 명상센터에서 듣기 어려운 설명이다.

쉐우민 사야도는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알아차림 없이 지혜를 성취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알아차림이 함께 할 때 지혜는 함께하며, 이로 인해 삶은 완성된다.”

정준영(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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