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이학종의 스리랑카 순례
‘담불라’의 뜻은 ‘마르지 않는 샘’
2008-06-16 (월) 00:00
아유보안? 인사말 건네면 해맑은 미소로 답변
크게보기
아유보안?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인사말이다. 인도의 ‘나마스테’나 한국의 ‘안녕하세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스리랑카 주민들의 해맑은 미소는 ‘아유보안’이라는 인사말을 건네면 눈부시게 빛난다. 순박한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고나 할까.
담불라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담불라 로드) 양편으로는 야자나무가 늘어서 있다. 야자나무 잎 사이로 스며 나와 레이저 광선처럼 밀려오는 아침햇살이 해맑고도 강렬하다. 야자나무 아래로 군데군데 민가가 들어서 있는데, 생활수준은 생각보다 높아 보인다.
평온한 시골풍경이 이어지다가 이따금씩 읍면 수준의 다운타운이 나타나곤 하는데, 교차로 등 곳곳에 불상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불교의 나라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담불라로 가는 길 도중에는 유서 깊은 도시를 하나 지나치게 된다. 구루네갈라(Grunegala)라는 이름의 고도인데, 한 때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 도시는 큰 호수를 끼고 형성돼 있는데,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산 정상에 엄청나게 큰 대불을 세워 놓았다. 도시의 주민들은 늘 하루를 산정의 대불을 향해 합장배례하며 시작한다고 한다.
크게보기
산 전체가 하늘로 솟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
이윽고 담불라. 소동 아닌 소동을 겪은 끝에 도착한 시골도시 담불라는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이 있는 곳이다. 그 이름은 ‘랑기리 담불라 비하라(Rangiri Dambulla Vihara)’. 아누라다푸라와 캔디를 이어주는 간선도로 중간 즈음에 위치하고 있어, 베이스캠프를 치고 스리랑카의 유적지를 순례하기에는 적격인 곳이다. 옛 수도 캔디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스리랑카 전체의 중간쯤 되는 곳에 해당된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원이 거대한 하나의 바위에 건설된 곳이다.
담불라에 들어서면 거대한 병풍같은 바위산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바위산의 높이는 180여 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평지에 솟은 터라 그 웅장함은 어느 고산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 짙은 갈색의 바위 덩어리 산은 평원 한가운데 불쑥 솟아있다. 산 전체가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른 웅장한 바위덩어리다. 바위산을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신이한 기운이 전해져 온다. 하긴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이 자리한 산이니, 산의 크기가 저 정도는 돼야 하리라.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는 경관은 장관이다. 문득 이곳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다보는 망루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산 아래 담불라 사원, 즉 라자마하(Rajamaha) 템플이 있고, 사원의 중심에 위치한 대불(大佛) 뒤쪽의 산정(山頂)에 있는 석굴사원은 걸어서 30분 안팎의 거리에 있다. 제법 경사도 심하고 군데군데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사원까지 도착하려면 땀을 제법 흘려야 하지만 그리 험하거나 가파른 곳은 아니다. 석굴사원으로 참배를 가는 인파가 제법 많다. 군데군데 틈이 있기는 하지만 참배행렬은 긴 끈처럼 줄지어 있다. 저마다 부처님께 올릴 예쁜꽃을 들고 석굴사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지극한 불심이 넘쳐흐른다. 밝고 화사하고 평화로운 표정이다. 그저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기에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표정은 무엇을 이뤄달라고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는 표정들이 아니다. 얼굴 하나하나가 평화, 공경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만다라다.
왓타가마니 왕의 보은으로 담불라 불사 본격화
이곳에 석굴 사원을 조성한 이는 왓타가마니 아브하야(Vattagamani Abhaya) 왕이다. 그는 기원전 103년 왕위에 올랐다가, 타밀족의 침입을 받아 이곳 담불라까지 밀려 내려왔다. 수도 아누라다푸라를 빼앗긴 왓타가마니 왕에게 랑기리 바위산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적의 공격을 감시하면서 몸을 숨길 수 있는 좋은 피난처였다. 이곳에서 그는 왕위의 탈환을 위해 무려 14년간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기원전 89년 드디어 아누라다푸라를 탈환했다. 그는 그곳에다 불교의 꽃을 피웠다.
왓타가마니 왕은 쫓겨난 시간동안 자신을 보호해주고 도와준 담불라를 잊지 않았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곳 바위산에 석굴사원을 조성하고 불상을 조각해 사원의 스님들에게 진 은혜를 갚았다. 그 보은의 흔적이 지금의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고, 외국에서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문화유산답게 2천년이 넘은 랑기리 담불라 비하라는 잘 정돈되어 관리되고 있다. 바위 를 지붕으로 삼고, 벽을 쌓아 그 공간에 사원을 삼았다. 벽을 쌓아 만들어진 석굴방에는 아름답고 거대한 불상들이 즐비하다. 이곳에는 모두 다섯 개의 석굴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입구에 있는 첫 번째 석굴부터 다섯 번째 석굴까지 조성된 순서대로 역사가 길다. 규모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석굴이 가장 크다.
첫 번째 석굴 안에는 거대한 열반상이 조성돼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조각한 것이다. 바위를 파들어 가면서 열반상 부분만 남겨 놓고 조각을 한 것이니 그 정성과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황금색 열반상의 발바닥은 붉은색이다. 스리랑카에서는 불상의 발바닥을 붉게 물들이는데, 싱할라 왕조의 시조인 스리 위자야가 기원전 6세기 인도로부터 이곳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그의 손바닥과 발바닥이 붉었다는 데서 유래한 전통이다.
제2동굴 물이 솟아나는 바위서 담불라 명칭 유래
두 번째 석굴은 다섯 개의 석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폭이 약 52미터, 깊이 25미터, 입구의 높이는 6미터에 달하고 그 안에는 56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석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석굴 내벽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화려한 채색 벽화들이다. 벽과 천장 어디에서도 빈틈을 찾아 볼 수없는 이 벽화들을 살펴보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비교적 잘 보존되어 색감도 생생한 이 벽화들은 부처님 생애와 스리랑카 역사 를 그린 것이다.
크게보기
벽화 가운데에는 싱할라족과 타밀족 사이의 전쟁을 묘사한 그림도 있는데, 기원전 2세기 아누라다푸라를 침략한 타밀의 엘랄라 왕에 맞서 “불교 수호를 위해 싸우겠다”며 자신의 창끝에 부처님의 사리를 넣었다는 둣타가마니 왕(Dutthagamani. B.C.E 161~137)의 전쟁 장면이 그 백미다.
한가운데는 철조망으로 보호된 커다란 돌확이 있는데, 아마도 천장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받아내고 있는 것 같다. 이 물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고, 특히 이 물을 받고 있는 돌 항아리에서는 물의 양이 줄거나 늘어서 넘치는 법 없이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보세요. 배수구가 없는데도 바닥에 물이 넘친 흔적이 전혀 없는 불가사의한 돌확이다. 여기에 고인 물은 담불라 사원의 성스러운 보물로 여겨져서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에 큰스님들이 직접 물을 떠 사용한다. ‘담불라’라는 이곳의 지명은 ‘물이 솟아나는 바위’(Damba-Rock and Ulla-fountain)라는 뜻의 이 돌확에서 유래된 말이다.
세 번째 석굴은 네덜란드의 침략기였던 18세기에, 제4석굴과 제5석굴 또한 열강의 식민 지배시기에 조성됐다. 석굴을 조성할때마다 앞서 지어진 석굴을 보수하고 벽화를 새로 그려 넣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위기가 있을 때 마다 이곳 동굴에 석굴과 불상, 벽화를 조성하며 붓다의 붉은 발 아래서 싱할라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으곤 했다.
제5동굴 부처님 진신 정골사리 1과는 한국에
크게보기
아주 오래 전부터 최근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의 동굴사원이 차례로 건설된 담불라의 동굴사원은 세계에서 불자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기고 있는 불교사원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싱할라족 불교도가 이룩한 예술의 기원을 잘 보여준다.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긴 역사와 함께 어우러져 간직된 곳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곳의 동굴사원에는 무려 153개의 불상과 3명의 왕의 조상, 4분의 신과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여기에는 4개의 주요사원이 있고, 이곳에서는 1848년 영국에 맞서 승려들의 무장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80여개의 조상(彫像)들은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들이다. 다섯 번째의 동굴에는 부처님의 유골(사리)를 모신 스투파(탑)이 있는데, 이것의 유래는 AD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동굴에는 부처님과 관련된 여러 개의 오랜 벽화가 남아 있는데, 그 그림들 중에는 마라가 부처님을 유혹하는 장면과 부처님이 성도한 후 첫 설법을 하는 두 개의 중요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 동굴사원의 스투파는 십여 년 전 한 도굴범에 의해 파괴되어 사리를 도둑맞았는데, 다행히 현장에서 도굴범을 붙잡아 되찾았다. 사리병에는 부처님의 정골 사리 3과와 부처님의 사리임을 밝히는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문자가 발견되었다. 이 중 1과가 군불교후원회 고문 이재성 거사의 원력으로 현재 한국으로 이운돼 모처에 잘 봉안되어 있다.
크게보기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