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윤남진 칼럼

개신교의 미국 보수개신교 추종 전략보다<br>가톨릭의 토착화 전략이 더 효과적이었다

윤남진소장 | stupa21@hanmail.net | 2011-07-07 (목) 12:39

지난 글[주류 개신교, 불교와 전방위 갈등전략‘으로 가나?]에서는 한기총 등 개신교 주류 연합세력이 현 장로대통령 임기 종료 시까지 불교계와 관계된 문제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전방위 갈등전략’으로 가는 듯한 징조에 대해 언급하고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한국종교시장의 경쟁상황, 특히 개신교의 공급포화현상을 중심으로 종교갈등, 개신교의 권력지향의 기저요인, 개신교의 내부적 변화가능성, 이런 것들이 타 종교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탐구해 보기로 한다. <필자>

크게보기종교사회학에서 종교다원화 현상을 가리켜 ‘종교시장상황(religious market situation)’이라고 부르고 그런 경쟁이 심화되는 것을 ‘시장상황의 강화’라고 한다. 쉽게 설명해서 선택할 교단 혹은 종파가 다양해져서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가 마켓(market)에서 팔리듯 되었다는 것이다. 서양학자들이 만들어 낸 말인데, 아무리 그래도 미국이든 유럽이든 서양 국가들은 대체로 그리스도교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세계평균 종교 인구는 약85%이고 미국의 경우도 종교 인구는 85%(2001, 미국인구조사국)며 대부분 개신교와 가톨릭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 나라 특히 미국에서 종교의 시장상황이라면 가톨과 개신교, 특히 여러 개신교 종파가 난립하여 경쟁적으로 영적 마케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겠다. 다분히 종파적 시장상황이다.

진정한 종교시장상황이 존재하는 곳은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면 한국의 종교인구가 전체인구의 53.1%이고 무종교인이 46.9%로 종교인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종교인구 85%에는 미치지 못한다. 종교 인구는 각각 불교 22.8%, 개신교 18.0%, 가톨릭 10.9%로 매우 균형적이다. 다른 기회에 설명할 것이지만 무종교인 46.9%는 생활종교(시민종교)화된 유교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어서 전통과 습합(토착화)되지 않은 종교(문화)로는 급격하게 쏠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무종교는 특정 종교(개신교)와는 경쟁관계다. 근대화의 후기부터 20년간 종교 인구는 42.6%(85년), 50.7%(95년), 53.1%(05년)로 비록 과반수를 넘어 증가는 하고 있지만 그 성장률은 완만해 졌다. 더구나 인구의 자연증가율의 감소 등도 종교시장상황을 강화하는 중요한 압력요소다.

이처럼 경쟁이 뜨거워진 상황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기름을 부은 종교가 있으니 바로 개신교다. 유독 개신교의 시장상황이 격화된 데는 대략 3~4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자기 통제력 부재로 인한 목회자의 과잉공급문제다. 둘째는 시스템교회 전략 등에 따른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양극화 문제다. 셋째는 대체재와의 경쟁에서의 실패인데 그 첫 번째가 종교 형식(문화나 정서도 포함)의 토착화에 주목한 가톨릭과의 경쟁 실패다. 넷째는 또 다른 대체재라 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인해 제3섹터(사회복지 등 비영리) 영역에서 오랜 개신교 독점상황이 균열이 가는 등 새로운 비종교적 경쟁세력의 등장 문제다.

보다시피 열거한 모든 요소가 불교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사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더라도 불교 인구는 현상유지 수준이다. 그런데도 주류 개신교는 왜 불교를 걸고 넘어가려는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일단 앞에 열거한 사항을 하나씩 확인해 가보자.

먼저, 자기 내부 통제력 부재로 인한 목회자 공급과잉문제. 이 문제를 개신교는 인정하고 정리해야 한다. 특히 진보 개신교계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해야 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무허가 신학대학의 인가는 개신교계의 숙원이었고 김영삼 장로 대통령 시설 그 숙원을 이뤘다. 그 후 내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수급조절이 안 된 것이다. 그 결과 목회자 비례 신도수가 현저히 줄었다. [표1]을 보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성직자라고하더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 종교시장에서 평가되기로 한 교회나 사찰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체로 신자가 150명 정도 내외는 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표1]에서 산술적으로 05년 인구센서스 결과 개신교인 수를 한미준 조사 목회자 수로 나누면(도표의 ②÷⑥) 144.8명이다. 단순 산술적 계산으로도 150명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 두 번째 문제, 즉 시스템교회 전략으로 인한 대형교회화의 문제가 있다. 한미준의 조사 결과(04년 보고서)에 의하면 신도1,000명 이상 교회 수는 1,538개(5.0%)였다. 이들 신자 1천명 이상 교회 수에서 예수교장로회 8개 종파가 838개로 전체 수(1,538개)의 54.5%를 차지하고 있다. 알다시피 예수교장로회는 주류 보수 개신교의 좌장이다. 그리고 등록 신자 수 75만 명으로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있다. 전형적인 시스템교회, 백화점이나 할인마트는 금지되어 있지만 이런 종교단체는 수도권 지역 곳곳을 버스로 누비며 합법적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휴일에는 도로 1개 차선을 조례제정을 통해 합법적으로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결과는 어떤가? 신도 1천명 이상 교회의 평균 신자수를 2,000명으로 한참 낮추어 잡고 신도 1천명 이상 교회 1,538개와 곱한 총 신도 수는 3,076,000명이다. [도표에서 ⑦×2,000명] 그리고 총 교회수(⑤41,703)에서 신도1,000명 이상 교회 수(⑦1,538)를 빼면 신도 1천명이 되지 않는 교회수가 40,165개다. 2005 인구센서스 결과 개신교인 총수(8,616,438명)에서 신도1천명 이상 교회의 신도수를 뺀 수를(5,540438명) 신도 1천명 미만 교회수로 나누면 137.9명이 나온다. 물론 소형 독립교회들이나 개척교회들의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그래서 안정된 대형교회의 지회 담임목사 자리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 말대로 ‘목사’가 아니라 ‘먹사’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크게보기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는 범그리스도교라는 측면에서 가톨릭이라는 우군을 잃었다. 굳이 통계치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2004년 이래 각종 사회조사들에서 개신교인과 가톨릭인의 친화력 격차는 불교인과 가톨릭인의 격차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다.

필자가 2007년도에 직접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님과 신부의 정서나 인식 격차가 스님과 목사보다 큰 경우는 단 하나 생명복제 문제였다. 신도들도 마찮가지다. 그 결과는? 불교 텃밭인 영남과 개신교 텃밭인 호남에서 가톨릭 교세의 상승이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 영남권에서 개신교는 18.1%로 줄었고 가톨릭은 13.2%로 현격히 늘어 조만간 개신교를 밀어내고 제2종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남/제주권에서도 개신교는 42.4%로 줄었고 가톨릭은 21.5%로 85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 32.2%인 불교에 조만간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톨릭의 토착화 전략이 주류 개신교의 서양(미국 보수 개신교) 추종전략에 비해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정부로의 수평적인 정권교체, 연이은 참여정부의 탄생으로 절차적 사회민주화가 진전되었고 지방자치 실시와 분권화로 인해 시민사회단체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림1]과 같이 참여정부 시기에 이르면 지방에 등록된 시민단체가 2006년도에 6,738개에 이르고 중앙 등록 단체도 740개에 이른다. 등록된 경우만 그러하지 <시민의 신문사>에서 비증록 단체까지 조사한 <2006년 민간단체총람>에 의하면 총 단체가 23,017개에 이른다.

크게보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간에 시민사회다운 시민사회역량이 형성되기 전에는 개신교가 사회복지 등에서 상당부분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경쟁대상 혹은 대체재가 진입한 것이다. 일례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지원하는 방과 후 공부방에 대한 실태조사(2004년 4~6월간 실시, 총336개 시설) 결과에 따르면 공부방 운영주체의 종교적 배경을 물었을 때 61.0%가 개신교 배경이었다. 무종교가 20.8%, 가톨릭이 12.8%였고 불교 배경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확인해 보아야 하겠지만 아마도 이런 비율도 참여정부 말기에 이르면 상당한 변화(비 개신교 배경시설의 증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류(보수) 개신교로서는 채택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이었겠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무엇이겠는가? 시민사회적인 색깔의 ‘뉴라이트’를 내세운 주류 개신교의 결집을 통한 권력지향, 이를 통한 양극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작은 개교회의 원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직하는 것, 뭐 이런 것이 아니었겠는가. 현재 한기총 해체운동 등 개신교계의 개혁운동이 다시 불붙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통제가능한 시스템, 즉 긍정적 의미의 교회연합운동의 성공이 없이는 한국 개신교의 연착륙은 기대하기 어렵고, 나아가 한국 종교의 조화로운 발전은 개신교에 의해 저당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는 어떻게 풀릴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다음번에 생각해 보기로 하자. <<STRONG>NGO리서치 소장>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아난다 2011-07-12 09:56:08
답변 삭제  
언제나 글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내공있는 글 고맙습니다.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