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양양 낙산사 홍련암 법당에서는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홍련암 법당 불단에 도예가 박명숙(무량광도예 대표)씨가 자신의 작품 ‘연꽃잎 큰항아리’를 기증하여 올리는 공양의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기도하는 신도들과 함께 조용하게 끝났으나 이 도자기에 얽힌 이야기가 홍련암 불자들 사이에서 미담으로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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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암 법당에서 연꽃모양의 항아리 도자기 기증식을 갖고 있는 정념스님과 박명숙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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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도예가가 홍련암에 기증한 연꽃모양의 도자기. 붉은 빛이 도는 홍련의 모양을 하고 있다.


박 작가는 작년 12월초에 인사동에서 ‘연꽃에 내린 달빛’이란 주제로 도예전을 열면서 크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전시한 작품 모두가 낙산사와 인연이 있었다. 지난 2005년 낙산사 화재로 부득이하게 베어냈던 소나무를 당시 낙산사 주지였던 정념 스님(현 흥천사 주지)이 장작 가마 연료로 사용하라고 박 작가에게 보내주었던 것이다.

이날 박명숙 작가의 작품을 기증받은 정념 스님은 “낙산사 소나무가 환생한 도자기”라며 ‘2005년 화재 때의 낙산사(의상대) 소나무가 도예가 박명숙 님의 손으로 연꽃잎 큰항아리 되어 홍련암에 환생하다’라고 상찬하며 불단에 올렸다.

박 작가도 작년의 도예전이 비로소 아름답게 회향하는 것 같다며 연꽃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도예전을 마치고 바로 오려고 했지만 강원도 폭설 때문에 이제 왔습니다. 작품을 불단에 올리고 보니 비로소 마음이 놓입니다. 제 작품은 소나무를 주신 정념스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정념 스님께서는 저에게 꿈을 이뤄주신 분입니다.”

정념 스님도 “매주 주말마다 홍련암에서 낙산사 복원에 성원을 보내준 전국의 불자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홍련암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믿음이 훈습돼 있는 것을 느낍니다. 화마도 비껴가는 성지가 홍련암입니다. 성지에 인연이 있어 도자기를 기증한다는 것은 복 받는 일입니다”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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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터의 흙을 거둬내니, 기암괴석이 나타났다. 홍련암 법당을 떠받치고 있는 연꽃대좌의 모양을 하고 있다.


2005년 화재와 최근 홍련암 인근 초소에서 불이 났다가 꺼진 것을 보면 믿음이 성지라는 불가(佛家)의 금언이 다시금 떠오른다. 홍련암 초입의 소실된 요사터 흙은 정념 스님의 결단으로 지금은 모두 비워내고 없다. 혹시라도 홍련암 법당에 피해를 줄까 하는 우려로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지만, 정념 스님은 홍련암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요사터 흙을 비우는 것이 맞다는 소신으로 이 불사를 진행한 것이다. 요사터의 흙을 걷어내자 대신 암자를 떠받드는 기암괴석들이 홍련의 꽃받침처럼 아름답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과정에서 무위자연의 바위가 드러날 때까지 한 삽 한 삽 정성을 다해 흙을 퍼냈다고 하니 우공이산의 마음이 따로 없다.

화마로 부득이하게 베어진 낙산사의 소나무가 박명숙 도예가의 손을 빌어 제 몸을 달궈 빚어낸 연꽃 모양의 도자기 ‘연꽃잎 큰항아리’가 홍련암으로 돌아오던 날, 홍련암은 오랜 세월 흙에 가려져 있던 아름다운 홍련의 꽃받침 기암괴석을 드러내며 맞이했으니, 어찌 이곳을 최고의 기도처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