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사라진 인도. (물론 석가족 등 일부 불교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유의미한 비중은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경전을 읽거나 불교사원을 찾는 이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 불교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경전이든, 사원이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곳이고, 그 가르침은 보살행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도에 반드시 불교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불교를 모르지만 스스로 존귀한 존재이며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불자로 부른 들, 무슨 문제가 있으랴. 불교를 만났고 사원을 제집 드나들 듯해도 하는 행동이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십만팔천리 떨어진 사람들도 있는데….

불교는 모르지만, 석가모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즉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삶 속에 석가모니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선지식들이다.

크게보기맨발대학. 영어로는 Bare foot college(옆 사진은 로고)이다. 최근호(8월호)에서 다큐작가 김은중 씨의 취재를 통해 맨발대학을 소개한 월간 〈불교문화〉에서는 맨발대학을 ‘인간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채우는 장소’로 표현했다. 인간의 자존과 자신감을 채우는 장소야 말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선언하면서 인간의 자존과 자신감을 천명했던 석가모니의 제일성과 너무나 빼닮지 않았는가.

맨발대학의 설립자는 ‘산지트 벙커 로이’라는 인도 브라만 출신의 부유한 계급 출신의 남자다. 그는 청년시절이었던 1965년 여름 봉사활동을 위해 인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의 하나인 비하르주의 팔라무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비참한 농촌사람들의 삶을 목격했다. 최고 상류층 출신인 그에게 같은 나라, 같은 땅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 목도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상상도 못한 비참한 삶을 보면서 그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이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문유관을 연상시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벙커 로이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대안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발견한 위대한 대안이, 틸로니아의 농부 메그라즈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그들만의 특별한 지식과 기술’이었다. 이 특별한 지식과 기술이 주류로 나오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할 뿐 다른 어떤 지식이나 기술보다 뒤지지 않는 가치를 갖고 있음을 벙커 로이는 확신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72년에 세운 것이 맨발대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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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대학 전경. 사진= 월간 불교문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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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에서 온 여성 입학생 두 명이 태양에너지 집열판에 대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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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대학의 학생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지만 열정 하나로 태양에너지 전자부품 회로를 들여다보고 있다.


크게보기수많은 시행착오과 난관을 거치면서 벙커 로이(오른쪽 사진)는 프로페셔널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리했다.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능숙함과 자신감과 확신’만 있으면 정규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누구나 교수가 될 수 있게 한 것은 벙커 로이의 전문가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 때문에 가능했다. 대학의 이름을 ‘맨발대학’이라고 한 것은 벙커 로이가 “세계 어디를 가나 가난한 농촌 사람들은 맨발로 걷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렇다고 해서 맨발대학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상징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태양에너지와 물 얻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 맨발대학에서는 인문학이나 첨단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세계의 저개발국에서 온 가난한 지역출신 사람들이 와서 그들이 사는 지역과 마을에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맨발대학이 다루는 영역은 대단히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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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대학에서 여성들이 수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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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여러 마을에 빗물탱크를 설치하고 그 물을 길어올리는 시범을 보이는 맨발대학의 여성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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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힘. 맨발대학 입학생 중에는 할머니들도 있다. 이 할머니들이 태양에너지 장치를 만들어 마을을 바꾼다.

어느 덧 맨발대학을 다녔다는 것은 졸업장 학위 이상의 자부심을 갖게 한다. 벙커 로이가 굳이 이 교육기관에 대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대학은 배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시민행동과 관련해서 맨발대학은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을 따른다. 특히 간디의 가르침인 “세상을 당신이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기도 하다.

불교의 실천강령으로 육바라밀이 있듯이 이들에게도 여섯 개의 가치를 실천하는 덕목이 있다. 이 가치는 맨발대학 초창기에 마련된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이다. 즉 청빈, 평등, 집단 의사결정, 분산, 자기 평가, 그리고 투명과 책임인데, 내용상 불교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지 않다.

생활비 정도만 벌고 생활방식을 단순화하며 대학 자체에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청빈, 교육이나 성별, 신분 등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다고 믿는 평등, 모든 사람이 사안에 관여하게 하고 동시에 책임도 지게 하는 집단적 의사결정, 권력 집중이 되는 것을 철저히 지양하는 분산,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지키고 평가할 것을 요구하는 자기 평가, 투명한 처리와 동시에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투명과 책임 등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곳, 맨발대학. 불교라는 상징은 없으나 지극히 불교적인 공동체. 맨발대학을 보면서 불교정신이 어떻게 사회에 실현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오늘을 사는 한국의 불자들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