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소재 대학의 환경생태학과에 진학했다. 환경 관련 공부를 하다 보니 생태계와 환경을 망쳐놓는 인간의 이기심에 넌더리가 났다. 달마산에 오니 마음이 몹시 청명해졌다. 새들과 나무에 둘러싸인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인간도 생태계의 한 구성원임을 인정하자 그들이 밉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어 돌아가야 하는 때가 성큼 다가왔다. 달마산에 와 얻었던 평화와 행복이 사회로 돌아가면 무색해질까 조바심이 났다. 머리를 깎기로 결심했다. 난생 처음, 까까머리가 됐다. 청년출가학교 최초로 삭발을 감행한 여자 행자, 선재 조희재 행자(21)의 이야기다.

조계종 교육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공동주관한 2014 청년출가학교의 회향을 앞둔 7월 5일 해남 미황사를 찾았다. 지도법사 스님들과 간단한 대화를 한 후 인터뷰에 차출(?)된 세 행자를 만났다. 회색 조끼와 절바지를 입은 모습이 퍽 편안해보였다. 특히나 회향일을 하루 앞두고 삭발했다는 선재 행자는 무의식중에 합장반배가 나올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행자들의 입을 빌어 8박9일 동안의 청년출가학교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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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조희재 행자

일주일 이상 절밥을 먹은 지금이야 미황사 생활이 익숙해보였지만 처음부터 편하지는 않았을 터. 선재 행자는 “사실 첫 이틀에는 너무 힘들었다. 무릎이 나갈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남자친구, 부모님, 좋아하는 가수… 주위에 신경 쓸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딴 생각이 많아서 공부가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왔는데, 여기에 있으면서 내가 그동안 했던 생각들이 정말 별거 아니었구나, 여기 잠깐 있으면서도 다 잊을 수 있는 일들이구나 생각했어요.”

말문을 연 선재 행자는 여느 여대생과 같이 통통 튀는 어투로 스스럼없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자친구까지 있는 여대생이 머리를 깎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질문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결심이랄까.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시원하잖아요?” 했다. 시원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남자친구가 싫어하면 어떡해요?” 기자의 세속적인 질문에 선재 행자가 다시 답했다. “제 머리카락 때문에 저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거면 저도 뭐….” 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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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 김상형 행자

39명의 행자들이 지지고 볶은 일주일은 어땠을까. 밖에서 흔히 접하지 못했던 발우공양과 차담이 이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과에서 수학하고 있는 선명 박가람 행자(21)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도 발우공양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공양게송을 읊고 발우공양을 하면서 음식과 음식을 만든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고 했다. 선명 행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발우공양을 하겠다고 했다.

선덕 김상형 행자(29)는 차담의 매력에 빠졌다. 선덕 행자는 “원래 술을 좋아하는데 차를 마시면서 속에 있는 얘기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술을 마실 땐 돈 얘기, 여자 얘기, 취업 얘기 같은 이야기는 해도 완전 ‘꽐라(만취)’가 되지 않으면 속에 있는 얘기하기 어렵다. 밖에 나가면 술친구들이랑 차 마시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청년출가학교는 배움의 장이자 공유의 마당이다. 행자들이 공유한 20대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청년들은 세월호 시국의 아픔에 공감했다. 청년들은 7월 3일 진도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희생자와 실종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글천수경>을 합송하는 도중에도 청년들의 흐느낌은 끊이지 않았다. 떠나야 할 시간에도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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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 박가람 행자

선명 행자는 “바닷길 걷기 명상을 할 때 팽목항에 가서 다 울었다”며 “대부분 뉴스로 봤을 땐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 가보니까 나와 같은 또래라는 점에서 슬퍼하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선담 양동혁 행자(22)는 회향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세월호 현장에 갔다 왔는데, 우리가 거기에서도 애도의 시간을 가졌지만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무언가를 실천하도록 자발적으로 고민하자”고 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청년들의 주된 화두였다. 선재 행자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길에 확신이 있는 분도 있고 그냥 맞춰서 가는 분들도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부분이 많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 풍족하지 못해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라고 설명했다.

선덕 행자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감이 많이 됐다”고 했다. 그는 “여기 온 친구들 보면 책도 많이 읽고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너무 먼저 알고 먼저 고민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는 않고 알고만 있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산사를 떠나는 청년들은 저마다의 가방에 희망을 꾸린다. 내려놓고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의 내부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민낯을 마주함으로써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 대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아픔 위에 희망을 덧바른 청년들은 이제 다시 사회로 출가한다.

한편 청년들의 성장을 지켜본 청년출가학교장 법인 스님은 청년출가학교를 마무리하며 “굳이 삭발하지 않더라도 불교가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면 세속에 있어도 출가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청년출가학교가 각 교구의 자체적인 청년출가운동을 전개돼 상시 운영된다면 출가자 영입은 물론 지역불교 활성화, 젊은 층 포교 등 새로운 청년포교운동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계종 교육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올 하반기 제4회 청년출가학교를 개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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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청년출가학교를 회향하는 39명의 청년들이 서로를 향해 삼배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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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출가학교 지도법사 만초 스님과 삭발한 행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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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예불이 끝난 후 경행을 하고 있는 지도법사와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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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무엇으로 사는가?' 강연을 펼친 함돈균 교수가 우중에도 불구하고 질의응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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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청년출가학교 지도법사 원영, 만초, 금강, 가섭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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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경건한 자세로 저녁예불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