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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 우리는 어디에…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투영한 빛의 음영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다녔다. 불안했다.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깨어있어야 했던 눈의 감각을 멈추는 것은 심리적 불안을 야기했다.

이윽고 소리가 들렸다. 자박자박, 누군가의 맨발이 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무수했다. 소리들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멀었다 가까워졌다. 옷자락이 스치기도 했고 스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타인의 몸이 가진 물리적인 공간이 멈춰있는 자신의 주위를 지났다. 그들이 내뿜는 숨과 체온이 느껴졌다. 불안하지 않아졌다.

“Open your eyes(눈을 뜨십시오).” 나지막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다시 열렬한 색과 형체의 향연. 그리고 이번에는 모두가 정지한 채 눈을 감았다. 그곳은 말레이시아 빠잠에 위치한 청년 캠프의 강당이 아니었다. 그곳은 나라는 유기체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이었고 37개의 싱싱한 유기체들이 비죽비죽 제 모양대로 솟아있는 우주였다. 10월 27일, 청년들은 시각에만 집중됐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는 ‘그림자 걷기’로 자신의 존재감과 타인의 존재감을 익혔다.

“눈을 떠봐”

그림자 걷기 훈련은 10월 28일 나와 너를 넘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는 ‘자연과 교감하기’로 연결됐다. 이번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앞뒤로 섰다. 뒷사람이 앞사람의 어깨를 잡자 앞사람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사람은 뒷사람의 손길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었다. 잔디. 푸른 잔디가 자신의 발걸음을 지탱하며 어떤 소리를 내는지, 마른 나뭇가지를 밟으면 어떤 감촉인지, 스치는 바람에선 어떤 냄새가 나는지, 내 어깨를 잡은 손의 체온과 질감은 어떠한지가 눈이 아닌 몸 전체로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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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파트너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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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캠프에 참가한 미얀마 스님은 잔디밭에 누워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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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 모두도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짝이 인도한 곳에서 “눈을 떠봐”, 귓가에 속삭이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눈을 뜨면, 원래부터 거기에 존재하고 있던 자연의 푸름이 눈동자를 덮쳤다. 이제 막 손가락만한 바나나를 열매 맺고 있는 바나나 나무와 수액을 흘리고 있는 나이든 나무, 비온 뒤 수분을 머금고 있는 공기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은 것들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었다.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와 같이 지구를 이루고 있는 생명체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는 듣고 말하고 숨 쉬고 걷고 보고 냄새를 맡고 만지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연과 연결돼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감동과 에너지와 열정과 감사를 느끼고 평화를 되찾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이런 교감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 나 자신에게 매몰돼있지는 않습니까?”

태국에서 온 청년 캠프 지도자 옴의 말을 시작으로 청년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을 불현듯 알게 됐다”
“내 몸의 순수한 감각을 믿고 파트너를 믿음으로써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 모두도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자연을 잘 이해하면 사랑의 감정이 더 깊어지고 더욱 평화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 존중, 사랑, 평화. 청년들이 자연에서 느낀 감정은 그 감동의 깊이만큼 오래도록 청년들의 마음에 남으리라.

청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

세계 자원의 80%는 20%의 인구가 소비한다.

세계는 개발도상국 원조금의 10배를 무기 증강에 사용한다.

매일 5천 명이 오염된 식수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10억 명에게는 안전한 식수원이 없다.

세계에서 거래되는 곡물의 50% 이상은 동물사료나 생물 연료로 쓰인다.

10억 명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매년 1천 3백만 헥타르의 숲이 사라진다.

포유류의 1/4, 조류의 1/8, 양서류의 1/3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빙원은 40년 전보다 40% 얇아졌다.

2050년까지 적어도 2억 5천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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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저녁, 청년들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2009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발표한 다큐멘터리 은 그가 세계 54개국에서 217일 동안 작업한 항공촬영으로 제작됐다.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이윽고 인간의 급진적인 삶의 방식에 의해 망가지기 시작하는 지구의 모습을 꺼내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가는 지구 환경과 악화되어가기만 하는 내 삶의 터전이 여과 없이 프로젝터 스크린을 수놓았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과 씻을 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청년들,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지구에서 까무룩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같은 날 오전 눈을 감고 느꼈던 평화로운 자연과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자연이 둘이 아님에 막연한 절망과 비애를 느낀다.

“라다크 홍수, 누가 책임질 수 있나?”

환경 파괴다 자연 보호다, 구호처럼 외치는 말에 익숙해진 머리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은 강렬한 자극이 됐을 터. 청년들은 이튿날인 29일 오전,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상을 풀어놓았다.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에서 온 세왕 돌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히말라야 4천 미터 고지에 위치한 고산지대 라다크. 겨울이면 매섭게 내리는 눈을 제외하고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조한 지역인 라다크에 2010년 여름, 유례없는 홍수가 발생했다. 비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흙산은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아름다운 마을 레(Leh)는 졸지에 거대한 초상집이 되고 말았다.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는 라다크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2010년 여름에는 큰 홍수가 났어. 여느 때와 같이 잠들어 꿈을 꾸고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토사에 휩쓸렸어. 불시에 집과 삶의 터전과 목숨을 잃은 라다크 사람들은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야? 라다크 홍수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는 거야? 라다크 홍수는 누구의 탓이야?”

세왕 돌마의 말에 분위기는 일순 숙연해졌다. 세왕 돌마는 말을 이었다.

“미국, 중국 등의 개발과는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라다크가 그 영향을 받는 건 무서운 일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 있을 거고. 환경에 대해선 전 세계가 함께 하는 운동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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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활동을 마친 후 동그랗게 둘러 앉아 자신의 느낌을 친구들과 공유한다.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사정은 같았다. 청년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인 무엇을 잃었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청년들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절제한 삶을 통제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뭔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나부터, 우리부터,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해 세계적인 공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캠프에 참가한 청년들은 그 개개인이 하나의 씨앗들이다. 말레이시아에, 인도네시아에, 인도, 네팔, 한국에 파종되어야 할 ‘평화’와 ‘희망’이라는 이름의 씨앗.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