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12 (금) 17:56
연재에 들어가며 -장용철(진각종 복지재단 기획이사)
해방 전 문헌들에 의하면 북한 지역에는 총 31본산 중 8개의 대본산과 403곳의 사찰이 있었다. 8개의 대본산은 패엽사(貝葉寺, 황해남도), 성불사(成佛寺, 황해북도), 영명사(永明寺, 평양시), 법흥사(法興寺, 평안남도), 보현사(普賢寺, 평안북도), 유점사(楡岾寺, 강원도), 귀주사(歸州寺, 함경남도), 석왕사(釋王寺, 강원도)이다. 이 가운데 오늘 날까지 현존하는 사찰들은 성불사, 법흥사, 보현사, 귀주사이고, 패엽사, 영명사, 유점사, 석왕사 등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되거나 사찰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16세기 초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불우조(佛宇條)>에 의하면 북한 지방에 소재한 사찰은 경기도 33개, 강원도 52개, 황해도 210개, 평안도 201개, 함경도 71개 등 모두 571개소였다. 그러나 1939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30개, 강원도 56개, 황해도 124개, 평안도 87개, 함경도 106개로 403개소로 줄어들었다.
1945년 분단 이후 북한 지역의 사찰은 종교적인 행위를 전면 금지시킨 북한의 정치 환경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화(戰火),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1945년 북한이 발행한『조선중앙연감』에 의하면 분단 직후까지 북한에는 8개의 대본산과 400여개의 말사가 그대로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도수는 37만5천명, 승려 수는 1,600여 명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1950년 『조선중앙연감』에 의하면 신도수는 37만 5천 438명으로 별 변동이 없으나 승려 수는 732명으로 대폭 감소하였다. 이로부터 45여년이 지난 1990년 현재 북한의 공식통계자료인 『문화공본연감』등에 따르면 사찰은 60여개, 승려 수는 약 300명, 신도 수는 1만 여명인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
필자는 1995년부터 남북한 불교교류 및 사회문화 교류에 관심을 갖고 약 20여 차례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동안 필자가 방문한 사찰들로는 평양 대성산의 광법사, 모란봉의 용화사, 용악산의 법운암, 역포구역의 정릉사 등이 있었고, 묘향산 보현사와 그 부속 암자들, 그리고 황해북도 사리원 정방산의 성불사, 구월산의 월정사 등을 방문하였다. 또한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평안북도 평성군 봉린산의 안국사를 방문하였다. 안국사는 필자를 안내한 조선불교도연맹 관계자들도 길을 물어야 할 정도로 북녘 땅에서도 ‘잊혀진 절’이었다. 특히 최초 방북 당시인 1995년 4월 금강산 개방 이전에 원산을 거쳐 신계사 터를 비롯한 금강산의 사찰들을 순례한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번 《북한의 현존사찰》목록에 포함된 북한 지역 사찰들은 필자가 10여년 간 북한을 왕래하며 최근까지 수집한 자료들을 분석하고 종합한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에 현존하는 사찰들은 대략 60여개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조선문화재보존사나 조선불교도연맹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2009년 현재 총 66곳에 이른다. 그러나 북한 측의 자료에는 이 외에도 5곳 정도가 더 등장하고 있어 추가 확인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그 자료들은 신빙성이 떨어져 일단 여기서는 제외시켰다. 미확인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5곳은 법련사, 령죽사, 동문사, 흥복사, 지흥사 등이다.
남과 북은 그 종교관은 다르지만, 현존사찰의 기준은 현재 불도량이 존재해야 하고, 도량 안에 불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어야 하며, 최소한 그곳을 지키거나 왕래하는 성직자와 신도들이 있어야 한다. 전각이 있더라도 존상(尊像)이 없으면 불도량이라 할 수 없고, 존상이 있더라도 경배의 대상이 아니거나 전각이 없다면 불도량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성직자나 신도의 경우, 북한은 조선불교도연맹이라는 엄연한 승단 조직이 있으므로 그 범주를 명확히 하기는 어렵다. 일부 유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으나 사찰의 기능을 잃어 현존 사찰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2009년 현재 북한에 현존하는 사찰은 평양직할시 5개, 개성특급시 5개, 평안북도 19개, 평안남도 3개, 자강도 2개, 황해북도 4개, 황해남도 6개, 양강도 1개, 함경북도 4개, 함경남도 8개, 강원도 9 개 등 총 65개소이며, 미확인된 5곳을 포함하면 70개소이다.
북한의 불교 역사는 대체적으로 혼란기(1945년~49년), 침체기(1950년~ 71년), 재생기(1972년~ 82년), 발전기(1983년~ 현재) 의 네 시기로 구분 할 수 있다. 북한불교는 1946년 3월부터 북한지역에 전면적으로 몰아친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 조치로 사찰들의 사유지도 몰수되면서 침체되어 갔다. 이 무렵 북한의 임시 정권이었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발표, 5정보 이상을 소유한 사찰의 토지재산을 무상으로 몰수하였다. 토지재산의 몰수는 곧 신앙의 몰수이기도 한 것이었다.
오늘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혹은 총무원 성격인 조선불교도연맹은 1945년 12월26일 창립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의 불교도들은 1,300여명이 인민자위대에 직접 참가하였다. 북한 당국은 전쟁이 끝나자 1953년부터 본격적인 종교활동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불교를 “지배계급의 착취적 본성을 가리우고 인민대중의 투쟁의식을 마비시키는 해독적 작용”을 한다고 규정하여 1965년부터는 조선불교도연맹을 비롯한 사찰들의 활동을 아예 중지시켜버렸다.
북한은 197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신헌법을 제정하여 새로운 지도이념으로서 유일사상의 일색화를 내걸면서 새롭게 북한 종교의 실체를 내세웠다.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조선불교도연맹도 이 때 다시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라는 긴 이름으로 그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개정된 헌법은 제5장 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명시적 자유와 권리는 통일전선전술에 부합될 때만 보장받게 되는 것이었다.
대외적으로 조선불교도연맹이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76년 7월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아시아불교도평화회의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조선불교도연맹은 이 대회에 홍화두 부위원장 등 3명의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홍화두 스님은 1942년 일본의 림제전문학교 불교학과를 나와 분단 이전 백양사 서옹스님과도 함께 수행했다는 북한의 대표적 스님으로 1998년 3월에 입적하였다. 홍화두스님에 이어 북한불교를 이끌어간 사람은 학림 박태화 대선사다. 박태화대선사는 1979년부터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장을 맡았으며, 1986년 12월에는 네팔에서 개최된 세계불교협회에 북한불교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기도 하였다. 박태화대선사는 2005년 9월에 입적하였다. 북한불교는 대선사, 선사, 대덕, 중덕, 대선 등의 품계를 갖는다. 승려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은 스님 대신, ‘선사’라고 부르나, 본격적인 남북교가 이루어지면서 스님이라는 용어를 병칭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북한불교가 분단 이후 남한 불자들과 최초로 접촉을 가진 것은 1988년 미국 하와이 대원사의 기대원스님의 방북이었으며,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은 1989년 신법타스님이 방북하면서 부터다. 신법타스님은 최초 방북이후 평화통일불교협회라는 통일운동 단체를 결성하여 황해북도 사리원에 금강국수공장을 설치하는 등 활발한 인도주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종단차원에서 남북 불교계가 직접 접촉, 교류한 것은 1999년 진각종대표단이 방북하면서 부터다.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 불교 사이에 가장 큰 교류협력사업은 대한불교조계종의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와 천태종의 개성 영통사 복원불사를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대작불사들은 분단체제하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을 위한 가장 순수하고 상징적인 종교교류협력 사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체제임에도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사찰들의 복구 혹은 보수불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북한당국은 전통문화재 보존원칙으로, ‘주체성의 원칙’, ‘인민성의 원칙’, ‘ 현대성의 원칙’, ‘역사주의의 원칙’을 내세운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사회주의 이념에 배치되는 것은 배제하고, 사회주의 문화건설에 유용하다고 인정되는 것은 문화유산으로 집중 복원하거나 보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56년 금강산 표훈사와 정방산 성불사를 보수하였고, 1961년에는 재해를 입은 황해도 자혜사를 보수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복구불사에 더 힘을 기울여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있는 용화사를 보수하여 조선불교도연맹의 임시 청사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1983에는 보현사에 팔만대장경 보존고를 신축하였으며, 1991년에는 대성산 광법사를 복원하여 북한의 대표사찰 가운데 하나로 중수(重修)하였다. 또한 1993년에는 평양시 역포구역에 있는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능찰(陵刹)인 정릉사를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주요 관광지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민족문화의 보존과 전통문화재의 관리 차원에서 사찰을 국보문화유물로 포괄 지정하고 있다. 2009년 현재 북한의 국보문화유물로 지정된 사찰은 총 45개소에 이른다. 북한 국보문화재의 70%정도가 현존 사찰인 셈이다. 북한은 인민들의 휴식공간 차원에서도 사찰들을 활용하기 위해 보수 및 복원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북한 내의 현존 사찰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문헌】
이 글은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의『북한의 불교사찰』(1989년),『불교도들의 참다운 삶』(2001년), 조선문화보존사의『조선의 절 안내』(2003년)『조선중앙연감』등을 참고로 하였으며, 남한의 문헌으로는 한국불교종단협의에서서 간행한『북한사찰연구』(1993년), 신법타『북한불교연구』(2000년), 국립문화재연구소,『북한문화재해설집Ⅱ-사찰건축편』현대불교미디어센터,『한국사찰』 등을 참고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