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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의 아름다운 풍광(風光)<br>보지 못할 땐 온갖 한이 남더니만…

| | 2010-08-17 (화) 10:37

廬山煙雨浙江潮(여산연우절강조)

未到千般恨不消(미도천반한불소)

到得還來無別事(도득환래무별사)

廬山煙雨浙江潮(여산연우절강조)

(蘇東坡 廬山煙雨)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용출하는 조수(潮水)

천하의 절경을 보지 못할 땐 온갖 한이 남더니만

실제로 와서 보고 나니 별 것 아닐세 그려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용출(湧出)하는 조수

중국 강서성 성자현에 있는 명산 여산의 아름다운 풍광크게보기

〈한자풀이〉

(여): 산 이름. 廬山(여산): 중국 강서성 성자현에 있는 명산. 연평균 안개 낀 날이 190일이 넘어 雲霧(운무)가 천하 절경이다. (연): 산수(山水)에 끼이는 흐릿한 기운. 놀 ․ 운무(雲霧) ․ 이내 따위. 연기, 연기가 끼다, 담배, 그을음. 烟(같은 글자). (우): 비. 煙雨(연우): 는개(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 무우(霧雨), 연우). 廬山煙雨(여산연우): 여산의 안개비, 여산은 연중 비가 200여 일이 내린다. 연우는 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다. (절): 강 이름,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전당강(錢塘江)의 하류. (강): 강, 큰 내. 옛날에는 양자강(揚子江)을 강이라고 하였음, 후세에 와서는 장강(長江)을 강이라고 함. 浙江(절강): 중국 절강성의 성도(省都) 항주(杭州)에 있는 양자강 하류 전당강(錢塘江)을 말함. 절강은 수나라 때 황하와 양자강을 남북으로 연결한 대운하의 마지막 종점이고, 항주는 이렇게 도시로 형성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양자강 물은 항주를 통해 바다로 흘러간다. 절강성 항주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고, 소동파가 관리를 역임했던 곳이다. 중국 4대호수 중의 하나인 서호(西湖)에는 소동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절강의 조수(潮水)는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면서 바닷물이 역류하는 풍광이 웅장하고 기세가 절묘하여 세계 최고이다. (조): 조수, 조수가 일다, 밀물. 潮水(조수): 바닷물, 해수(海水), 주기적으로 간만(干滿)의 현상을 이루는 바닷물. 浙江潮(절강조): 절강성 항주시 전당강의 조수(潮水). 未(미): 아니다, 아직=하지 못하다. (도): 이르다. (천): 일천, 천 번. (반): 돌다, 돌림, 무리, 종류, 때(全般), 시점(時點), 범위(全般). 千般(천반): 천 가지. 未到(미도): 이르지 못하다. (한): 한하다, 원통하다. (불): 아니다, 말라. (소): 사라지다, 없어지다, 멸망하다, 보이지 아니하다. 不消(불소): 없어지지 않다, 남아 있다. (득):얻다, 이득. (귀): 돌아가다, 돌아오다. (래): 오다. 到得(도득): 가서 보다, 가서 체득하다. 歸來(귀래): (밖에서)돌아오다. (무): 없다, 말라. (별): 다르다, 틀림, 갈래, 계통, 나누다, 헤어지다. (사): 일. 無別事(무별사): 다른 일이 아니다. 같은 일이다.

절강성의 명물 서호. 소동파와 깊은 인연이 있는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호수다. 크게보기

‘여산연우’는 소동파 선시의 최고 결정체

고수의 곡예를 보는 듯 대가의 예술성 나타내

〈해설〉‘여산연우’는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성 항주시 전당강의 조수(潮水)의 풍광을 선의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경지를 선 이론에 입각하여 읊은 완벽한 선시이며 철리시이다. ‘여산연우’는 앞에서 살펴본 ‘여산 동림사 상총 조각선사에게’, ‘여산 서림사 벽에 쓰다’와 함께 여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읊은 소동파 선시의 최고 결정체이다.

소동파의 인생은 귀양살이로 고달팠다. 왕안석의 신법에 대항하여 싸우느라 목숨을 부지한 것이 천행이었다. 소동파 스스로 자신의 시에서 “ 그대가 평생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황주이고, 혜주이고 , 담주라고 하겠네.”라고 했듯이 남해 고도 오랑캐 땅 해남섬을 떠돌면서 만년을 지독스럽게 살았다.

소동파가 44세에 지은 시가 조정을 비방했다고 탄핵을 받아 감옥에 갇히었다. 황주(黃州)에 안치되는 유배령을 받고 49세에 풀려나 황주를 떠나, 여산을 유람하면서 읊은 시가 ‘여산연우’ 등 3수이다.

소동파는 황주에서 직접 동쪽 언덕에서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다. 동파설당(東坡雪堂)을 짓고 스스로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칭하였다. 이때 그의 최고 절창인 불후의 명품 ‘적벽부’를 지었다. 소동파 시에서 절정기였다.

소동파는 유배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불교 사상 특히 선 수행에 심취하여 마음의 안정을 이루어 낙천적으로 생활하여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사찰을 찾아 불법에 귀의했고 고승들과 교류하며 선 수행에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여산은 중국 강소성 성자현에 있는 천하 명산이다. 연평균 안개 낀 날이 190일이고, 연중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 일이다. 여산의 연우(烟雨)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연우는 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보이는 비이다.

여산의 비 온 후 물안개는 몽롱(朦朧)한 미와 미리적(迷離的) 체식(體識)을 표현한 것이고, 절강(浙江)의 전당강(錢塘江)의 조수(潮水)는 천군만마와 같은 용용팽배(湧湧澎湃)한 장엄미를 표현하고 있다. 이 두 곳은 천변만화의 경관으로 전형적인 자연의 풍광이다.

절강은 중국 절강성의 성도(省都) 항주(杭州)에 있는 양자강 하류 전당강(錢塘江)을 말한다. 절강은 수나라 때 황하와 양자강을 남북으로 연결한 대운하의 마지막 종점이고, 항주는 이렇게 도시로 형성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양자강 물은 항주를 통해 바다로 흘러간다. 절강성 항주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고, 소동파가 관리로 통관, 지주를 역임했던 곳이다. 중국 4대호수 중의 하나인 서호(西湖)에는 소동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절강의 조수(潮水)는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면서 바닷물이 역류하는 풍광이 웅장하고 기세가 절묘하여 세계 최고이다.

‘여산연우’는 송나라 청원 유신(靑原 惟信 ?- 1117)선사가 자기가 수행한 선의 경지를 세 단계로 말하고 있는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나중에 직접 선지식을 만나 공(空)의 이치를 깨치고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참선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산을 보니 다만 산이요 물을 보니 다만 물이다.”라고 한 내용을 가져다 시화(詩化)하였다. 성철 스님의 종정 취임 법어로 유명했던 내용이다.

1구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용출하는 조수”는 아직 보지 못했을 때의 경치이다. “참선하기 전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중생은 중생이고 부처는 부처이다.

그러나 4구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용출하는 조수”는 직접 가서 본 풍경이다. 2구와 3구 “보지 못했을 때는 온갖 한으로 남았는데 와서 보고 나니 별 것 아니네”는 깨닫고 보니 “중생은 그대로 중생이면서 부처이다”의 경지이다. 깨닫고 보면 별 것 아니다. 그러나 처음 1구와 나중 4구의 경계는 하늘과 땅, 중생과 부처의 차이이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가 무엇인가? 진리를 깨달아서 알면 부처이고, 모르면 무지한 중생이다. 소동파는 1구와 4구에 완전히 동일한 시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1구의 “여산연우절강수”는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경치이고, 4구의 “여산연우절강수”는 직접 체험해 본 경치이다. 글자는 같으나 내용이 전혀 다른 뜻이다. 이는 대가의 고도의 예술성을 나타낸 고수(高手)의 곡예(曲藝)이다.

한시 역사에서 소동파는 당나라 왕유, 이백, 두보를 능가하는 최고의 철리시를 구가하였다.

소동파는 산문, 시, 사(辭) 등 문학과 그림과 서도의 모든 분야에 높은 성과를 이룩한 천재 작가이다. 풍부한 사상과 내용과 독특한 예술 수법 및 호매(豪邁)로운 품격과 멋진 비유는 북송(北宋) 문학의 최고 성과였다. 중국 역사상 과거시험에서 최고 득점을 했던 천재이고, 시서화 그리고 음악, 음식요리, 건축, 토목 수리공사, 의학에 이르기까지 전천후적 능력의 소유자였다. 유교, 불교(선), 도교 신선술까지 모든 영역을 망라하였다.

소동파가 고려, 조선 시학에 미친 영향은 두보나 이백에 뒤지지 않는다. 소동파가 생존하고 있을 때 이미 그를 사모하여 김부식(金富軾) 형제가 소식(蘇軾) ․ 소철(蘇轍) 형제의 명자(名字)를 따서 그들의 이름으로 삼았다.

문병(文柄)을 쥐고 있던 김부식의 소동파의 시풍은 조선 초까지 세에서 학소(學蘇)의 밑받침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조선에서 ‘소동파의 열풍’이 불었다. 소동파 열풍의 진원지는 청나라 대학자이며 서도가인 옹방강(翁方綱)이다. 그는 서재 이름을 ‘보소당(寶蘇堂: 소동파를 보배롭게 여기는 집)’이라고 짓는 등 소동파의 시와 서도에 열광하였다.

조선 문인으로 옹방강과 최초로 만난 인물은 박제가와 추사 김정희이다. 헌종 임금은 자신의 처소에 ‘보소당’이란 당호를 붙인 못 말리는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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