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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의 진면목을 바로 보지 못함은<br>내가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네

| | 2010-07-05 (월) 11:47

항주 서호에 세워진 소동파 석상크게보기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당송시순 하, 권37 미산소식시 6, 제서림벽)
가로로 보면 첩첩이 산등성이고, 옆으로 보면 뾰쪽한 봉우리인데
멀거나 가깝게, 높거나 낮게 보아도 제각기 다른 모습이네.
여산의 참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은
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네.
〈한자풀이〉
(횡): 가로, 가로놓다, 옆으로 누이다. (간): 보다. 횡간(橫看): 가로로 보다. (성): 이루다. (령): 재, 산봉우리, 잇달아 뻗어 있는 산줄기. 成峰(성봉): 나란히 줄지어 있는 산. (측): 겉, 옆, 가. (봉): 봉우리, 봉우리 모양을 한 것, 홀로 우뚝 선 산봉우리를 가리킴. (원): 멀다, 멀리. (근): 가깝다, 가까이. 遠近(원근): 멀거나 가까이. (고): 높다, 높이. (저): 낮다, 밑. 高低(고저): 높고 낮음, 높낮이. (각): 각각, 각기. (불): 아니다. (동): 한가지, 서로 같게 하다. 不同(부동): 같지 않다, 다르다. 各不同(각부동): 무일동(無一同)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 각각이 다르다, 어느 것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는 뜻. (식): 알다, 아는 것, 인정하다. 不識(불식): 알지 못하다. (려): 오두막집, 주막, 여산(산이름). 廬山(여산): 중국 강서성 성자현(星子縣)에 있는 명산. (진): 참, 변하지 아니 하다. (면): 낯, 얼굴, 표면, 겉. (목): 눈, 보다. 面目(면목): 얼굴, 얼굴의 생김새, 사물의 상태. 眞面目(진면목):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나 참모습. 本來面目(본래면목): 진면목 또는 본래풍광(本來風光)이라고도 함, 인간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실한 모습. 《육조법보단경》에서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의 의발을 전수받아 남쪽으로 떠났을 때 혜능을 추격하여 대유령에 이른 혜명 스님을 상대로 설법한 내용이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이때 혜명상좌의 본래 면목은 무었인가?” 라고 묻자 그는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를 견성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지): 다만(어조사), 뿐. (연): 연줄, 연유(緣由)하다, 가선(옷의 가장자리선), 가장자리. (신): 몸, 신체, 나 자신. (재): 있다. (차): 이, 이것(가까운 사물을 가리킴). (산): 산, 뫼. 中(중): 가운데, 치우치지 않다. 山中(산중): 산속, 산속에 있다.

웅장기묘한 천하명산을 '원근간산각부동'으로 표현
진면목 알아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여산에 빗대 설명
〈해설〉여산은 천하 명산이다. 웅장하고 기묘하여 사람이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가기 다르다. 가로로 보면 산봉우리가 이어진 연산(連山)이고, 세로로 보면 홀로 우뚝 선 산봉우리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산을 바라봐도 다르고, 높고 낮아서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시인이 동적이고 가변적인 상황에서 여산을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여산이 기기묘묘하게 생동하고 있다. 시인의 기발한 발상이다. 시인은 승구가 원래 “멀고 가까운 곳에서 산을 보니 각기 다르다(遠近看山各不同)”라고 한 것을 “멀고 가깝고 높고 낮아서 같은 것이 하나 없네(遠近高低無一同)”라고 다시 고친 것이다. 거시(巨視)적 시각과 미시(微視)적 시각, 근시적 시각과 원시적 시각이 있다. 숲만 보면 나무를 볼 수가 없고 나무만 보면 숲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 시의 핵심은 전구와 결구이다. “여산의 참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은 내가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네” 이것이 소동파가 시에서 하고 싶은 내용이다. ‘여산의 진면목’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참된 안목’을 상징한 말이다. 사물의 참모습을 보려면 겉모습만 보면 안 된다. 겉을 드러나지 않은 이면(裏面)도 보아야 한다. 그 도리를 알려면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나 자신에 대한 참모습을 보는 것과 찾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산 속에서 갇히어 있으면 산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듯이 아상(我相)에 묻혀 있으면 나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부처를 볼 수 없다.
‘진면목(眞面目)’은 ‘본래 면목’, ‘본지풍광(本地風光)’과 같은 뜻이다. 인간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실한 모습이다. 인간이 본래 갖추고 있는 모습이 부처의 모습이다. 본래불(本來佛)이다. 아집과 아상 때문에 나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 소동파가 이 시에서 설하고 싶은 핵심 요지이다.
앞에서 살펴본 시 “여산의 시냇물소리는 부처의 설법이고 산의 아름다운 모습은 청정한 부처의 법신일세. 고요한 밤에 들려오는 팔만사천 법문게송 다음날 무슨 방법으로 사람에게 내보일 수 있을까”에 대한 후편이다. 불립문자 교외별전하는 선종의 깨달음의 세계를 소동파는 ‘여산의 진면목’에 비유하여 한 마디로 설하고 있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할 수 있는 문자반야(文字般若)이다. 오도송이다.
산 전체를 보려면 산에서 나와서 높이 올라가서 보면 볼수록, 가까이 가면 갈수록 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세상은 자신이 쓴 안경의 색깔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 마음의 깜냥으로 세상을 보고 사물을 본다. 제8아뢰야식에 입력저장된 오염된 업식(業識)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면 사물을 바로 볼 수 없다. 정견(正見)을 가지면 바로 볼 수 있다. 정견이 팔정도의 첫째 덕목인 ‘바른 견해’이다. 정견이 공의 이치를 깨달은 반야지혜이고, 선정과 지혜를 닦은 후 에 얻어지는 깨달음이다. 이것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중도가 깨달음의 지혜이다. 용수보살은 팔부중도(八不中道)를 제시하여 중관(中觀)사상을 주장했다.
승구와 결구의 운을 ‘동(同)’과 ‘중(中)’으로 압운한 것은 신운(神韻)이다. ‘횡(橫)’과 ‘측(側)’ 그리고 ‘원(遠)’과 ‘근(近)’, ‘고(高)’와 ‘저(低)’가 대구를 완벽하게 이루고 있다.
《금강경》의 핵심사상이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사상(四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깨부수고(破相),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제법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정견이 참모습(진면목)을 보는 거울이다.
다음 사구게가 형상을 떠나 부처가 되는 가르침이다(離相佛).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고 음성으로 나를 찾는 사람은 그릇된 노력을 할 뿐 참으로 나를 볼 수 없다.”
“무릇 형상을 가진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다.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이 형상이 없는 공임을 알면 깨달음을 얻어 여래를 보리라.”

소동파 3대 선시가 여산을 배경으로 나온 것 흥미로워
중국 3대명산 여산 찬양시 도연명 등 4000여 편에 달해
〈화사족〉이 시는 중국 강서성 성자현에 있는 여산(廬山)의 서림사(西林寺)에서 쓴 소동파의 대표적인 철리시이다. 시의 제목이 ‘서림사 벽에 쓰다(題西林壁)’이다.
앞에 시에서 ‘동림사 상총장로스님에게 주다(贈東林總長老)’와 함께 자신의 오도의 경지를 읊은 오도시이다. 소동파는 여산의 고승들과 많은 교류를 하였다. 여산은 동림사와 서림사 두 절이 있다.
두 편의 시를 이해하는데 먼저 여산에 대한 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산은 중국 3대 명산으로 진(晉)나라 이후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살았다. 특히 진나라 혜원(慧遠)법사가 390년 동림사에 있으면서 123인과 염불결사를 극락왕생을 기원하여 여산을 중국 남방불교의 성지로 만들었다. 유교의 도연명(陶淵明)과 도교의 육수정(陸修靜)과 교류하였는데, 혜원법사가 손님을 보낼 땐 이 시내를 건너지 않았다. 하루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기를 지나고 말았는데 문득 호랑이가 울었다. 그래서 세 사람이 시냇가에서 크게 웃었다는 ‘호계삼소(虎溪三笑)’란 고사가 유명하다.
풍경, 문화, 종교, 교육 등 유적지가 많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여산은 아열대계절풍으로 산지기후 특색을 가지고 있어 강수량이 연간 1917mm에 달해 운무(雲霧)가 빈번하여 연평균 안개 낀 날이 190일이 넘어 여름에 시원하고 상쾌하다.
여산은 볼만한 관광 특색은 풍광구내의 16개의 기이한 자연풍광과 474개 경관지점이 있다.
도연명, 사령운, 이백, 소동파, 왕안석 등 1500여 명의 유명한 시인, 예술가, 정치인이 유람하고 여산을 찬양하는 40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기원 4세기부터 13세기까지 여산은 종교가 흥성하여 사묘가 500개에 달하였다. 명나라 청나라 이후 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도 여산에 교회당을 세워서 선교하였다. 한 개의 산에 5개의 종교가 자리하고 있다.
여산의 오로봉(五老峰)과 삼첩천폭포가 천하 절경이고, 여산의 곡렴천(谷簾泉)은 육우가 《다경》에서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 품평하였다. 물은 차의 어머니이다.
“하나의 진주 같은 폭포를 감추기 위해 여산은 겹겹이 감싸고 있는가”라고 삼첩천폭포를 노래할 정도로 웅장함과 아름다운 풍광은 잘 어우러진 여산의 진면목 중의 하나이다.
소동파 선시의 대표적인 작품 3수가 여산에서 여산의 풍광을 노래하면서 자신이 깨달은 선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여산 동림사 상총 조각선사에게’, ‘여산 서림사 벽에 쓰다’, ‘여산의 비 온 후 물안개’가 선 수행 후에 나름대로 깨달은 경계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연작시(連作詩)이다. ‘여산의 비 온 후 물안개’는 다음 편에서 감상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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