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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깨끗한 흰 돌과 같아서<br>누런 황금은 싫어한다네

| | 2009-10-15 (목) 13:41

寒山深(한산심)

稱我心(칭아심)

純白石(순백석)

勿黃金(물황금)

泉聲響(천성향)

撫伯琴(무백금)

有子期(유자기)

辨此音(변차음)

(한산시집)

한산은 깊어

내 마음이네.

내 마음은 순수한 흰 돌과 같아

누런 황금은 아니어라.

맑은 샘물소리가

백아(伯牙)의 거문고에 실리면

종자기(鍾子期)가 있어

금방 그 소리의 뜻을 아네.

세속적 재물과 명예, 미인을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구도자는 이미 출가 사문의 본분이 무너져 버린 것

<해설> 한산의 시는 선시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한산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억지가 없다. 다시 말하면 속기(俗氣)가 없다. 이것이 명품 선시의 첫 번째 조건이다. 어린아이의 자연스런 무위(無爲)가 천진불(天眞佛)이다.

한산(寒山)은 한산자(寒山子)의 이름이며, 선의 깨달음을 찾는 구도자의 이상향이다. 왕유 시에서 마치 텅빈 산인 공산(空山)과 같은 선적(禪的)인 상징을 갖는 시어이다.

자비는 따뜻한 정(情)이 많아야 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얼음처럼 차갑고, 칼처럼 날카롭다. 그래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상(중국 오대산 문수보살상)을 보면 칼을 들고 있는 것이다. 냉철한 이성에 의해서 나타나는 지혜는 칼날처럼 예리하다.

양산 원동 신흥사의 한산습득도 벽화.크게보기

《한산시집》의 서문에 보면 풍간대사가 “한산은 문수보살의 화신이고,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이다”고 하였다.

능히 번뇌를 끊을 수 있는 금강석과 같은 단단한 지혜의 칼(般若劍)을 설한 경전이 《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이다. 한산은 냉철한 깨달음의 경지를 이룬 마음의 세계이다. 한산시에서 ‘한산’은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위의 시를 우리말로 의역하면 다음과 같이 명료하다.

내 마음은 한산(寒山)

황금보다도 흰 돌이 더 아름답네

청아한 샘물소리 백아(伯牙)의 거문고에 실으면

종자기(鍾子期)가 그 소리 안다네.

한산의 마음은 한산처럼 맑고 깨끗해서 세상 사람들이 사족을 못쓰는 황금보다도 흰 돌을 더 사랑한다. 고려 때 최영 장군이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을 하였다. 깨달음을 찾는 구도자가 세속인의 이상인 재물과 명예 그리고 미인을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출가 사문의 본분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출가 구도자는 재물과 명예를 버림으로써 세속인의 귀의처가 되고 삼보 예경을 받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출가 수행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노예가 될 것이 우려되어 무소유를 율법으로 정하신 것이다.

이 시의 전반부에서 한산의 마음의 경계가 황금보다는 순수하게 흰 돌을 사랑할 수 있는 경계를 읊은 것이다. 후반부는 샘물소리에서 부처의 설법을 듣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듣는 깨달음의 경계를 읊고 있다.

무정설법이란 산천초목 등 의식과 분별이 없는 존재들도 각자의 본분에 머무르면서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말로써 깨달음의 지혜를 갖춘 사람은 그것을 보거나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청정법신인 자연의 말 없는 화엄의 설법을 뜻한다.

“맑은 샘물소리를 백아의 거문고에 실으면 종자기가 있어 그 소리를 안다네”는 소동파가 “시냇물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의 아름다운 빛깔은 청정한 법신일세(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라고 한 무정설법을 읊은 것이다.

《열자》에 나오는 백아와 종자기의 거문고 일화는 지음(知音)이란 고사(故事)를 만들었다.지음이란 선가에서는 부처님께서 영산에서 설법을 할 때 우담발화 꽃송이를 들어 보였는데 마하 가섭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말이 없이 마음으로 서로의 하고자 하는 마음의 뜻을 알아차리는 선가의 불립문자의 세계를 나타낸다.

한산은 무정설법을 하고 있는 샘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은 문수보살의 화신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이렇듯이 현자가 우리 곁에 있어도 우리는 마음이 어둡고, 나 잘났다고 하는 아상(我相)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자풀이〉

(한): 차다, 차갑다, 얼다, 차게 하다.(산): 산, 뫼(산의 옛말). 寒山(한산): 산이 깊고, 높아서 기온이 차고 봄이 되어도 눈이 녹지 않은 산.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산 국청사(國淸寺) 당흥현(唐興縣)에서 서쪽 70리에 있는 한암(寒巖)에서 은거했던 은자(隱者). (심): 깊다, 깊게 하다, 깊이, 매우. (칭): 일컫다, 부르다, 설명하다, 저울. (아): 나, 우리. (심): 마음, 심장. 아심(我心): 내 마음. (순): 생사(生絲), 순색의 비단, 순수하다, 착하다, 오로지, 모두. (백): 희다, 흰 빛. 순백(純白): 모두 흰색. 석(石): 돌. 백석(白石): 흰 돌. 물(): 말다(부정사), 말아라, 아니다, 없다. 황(): 누르다, 누른 빛. 금(): 금, 황금, 돈, 쇠(금속 광물의 총칭). 성씨(김). 황금(黃金): 누런 금덩이, 황금. 천(): 샘, 땅속에서 속는 물. 성(): 소리, 음성, 음향, 소리를 내다. 향(): 울림, 음향, 울리다. 음향(音響): 울리는 소리. 무(): 어루만지다, 손으로 누르다. 백(): 맏, 우두머리, 일가를 이룬 사람. 여기서는 《열자》에 나오는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伯牙)를 가리킴. 금(): 거문고. (유): 있다, 존재하다. (자): 아들, 자식, 어조사로 쓰임. (기): 기약하다, 만나다, 정하다, 약속에 따라 만나다. 자기(子期): 《열자》의 〈탕문(湯問)〉편에 나오는 거문고의 명인 종자기(鍾子期)를 가리킴. (변): 분별하다, 분명히 하다, 나누다. (차): 이, 이것, 이곳, 가까운 사물을 가리킴. (음): 소리.가락, 음악. 知音(지음): 소리를 듣고 알다. 《열자》에 나오는 고사인데,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백아의 마음을 저절로 알아차렸다고 한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를 뜻함.

<화사족(花蛇足)>

한산시(寒山詩)는 정통시단에서 소외된 것과는 달리 선가(禪家)에서는 대대로 전승되어 왔다. 한산시는 그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탈속한 무애(無碍) 자유인이 선의 삼매경에서 노니는 열락(悅樂)의 심경과 깨달음의 세계를 아무런 수식 없이 토해내는 파격적이고 초월성을 지닌 시이다.

그의 시는 이해하기가 난해하고, 근체시(近體詩)에서 절대적으로 중요시하는 압운(押韻)이나 성률(聲律), 평측(平仄), 대구(對句) 등의 율격에 스스로 구애받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당시(唐時)에는 한산시가 인정받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선일치론(詩禪一致論)이 발흥하던 송대(宋代)을 지나 법에 이르러서야 『전당시(全唐詩)』(1707년 편성), 『사고전서(四庫全書)』「별집류」(1782년)에 비로소 열입(列入)되게 된 것이다.

한산시가 정식으로 중국시단에 들게 된 것은 청대(淸代)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산시는 당시의 문학비평가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산과 그의 시가 문학비평가나 문학사가에게 주의를 끌게 된 것은 1921년에 호적(胡適)이 한산(寒山)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이후부터가 된다.

한산에 대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실제 인물이 어떤지는 불분명이며, 한산시가 그의 저작이다. 일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가의 경전을 두루 읽으면서 입신공명의 포부를 지닌 선비로 성장하여 30여 세에 4, 5차례 과거시험의 실패를 거쳐 마침내 형제와 처자로부터의 냉대로 인해서 절속하여 천태산(天台山) 한암(寒岩)에 은거한 은사 또는 미치광이 선비[貧人風狂之士]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한산이 출가하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천태산 국청사(國淸寺)에서 풍간(豐干), 습득(拾得)과 오랫동안 교류하였으며, 불교에 귀의한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

한산의 시 속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유․불․선 삼가사상을 모두 겸하였다. 한산시는 분명히 불교의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유가, 도가의 교의(敎義)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의 학자 황영무(黃永武)는 당대의 선적인 시의 중요 인물이 한산임을 전제하고 한산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인(前人)이 한산시를 오직 경세적(警世的)인 게어(偈語)로만 간주한 것은 모두 옳다고 할 수 없다. 근인(近人)이 한산시를 순수한 시로 간주한 것 또한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한산 자신은 600여 수의 시를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존하는 300여 수의 시는 암석과 집의 벽에다 기록해 두었다지만, 한 곳에만 기록한 것도 일시에 지은 것도 아니며, 그 중에는 한산이 어렸을 때 배웠던 유(儒)와 도(道)의 흔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오도의 송(頌)을 구가하였는데, 순시(純詩)도 있고 게어(偈語)도 있으며, 부녀자와 어린아이에 대해서 쉽고도 분명하게 인과응보를 말한 것이 있는가 하면, 또한 불학의 매우 깊은 설리(說理)를 말한 시도 있다. 한산의 시는 심로(心路)의 역정이 장구한 것으로 말미암아 유․도․불의 경계 변화가 크고, 시의 뜻(詩義)이 때로는 얕고 때로는 깊어 그 차이가 엄청나다. 그러므로 한산시의 가치와 경계를 시론하는 데 있어서 단순한 감상의 안목으로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산시집』은 천태산에 은둔해 살았던 한산, 습득, 풍간의 시집으로『삼은집(三隱集)』이라고도 한다.

여구윤(閭丘胤)이 쓴『한산시집』의 서문에 보면 한산과 습득과 풍간에 대하여 그들의 불가사의한 언행을 몸소 보고 들은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전기풍(傳記風)으로 엮고 있다. 이 서문은 전기풍이기는 해도 상당히 신화적인 기술로 한산을 문수보살 그리고 습득을 보현보살의 화신이라 하였다.

습득(拾得)은 풍간(豊干)이 어릴 때 주워 국청사에서 길러 승려가 되었음으로 이름을 ‘습득’이라 하였다.『한산시집』에는 한산의 시 312수와 풍간의 시 2수, 그리고 습득의 시 54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들은 모두『전당시』에 실려 있다.

한산의 시 가운데 자신의 시에 대하여 읊고 있는 시가 있다.『한산시집』에 나타난 모든 시들은 시 제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산의 다음 시는 습득의 시 뿐만 아니라 한산의 시 성격과 특성에 대해서도 대변해 주는 시라 할 수 있다.

我詩也是詩 내 시(詩)는 본래 이러한데

有人喚作偈 사람들이 내 시를 게(偈)라고 하네.

詩偈總一般 그러나 시나 게송은 원래 같은 것이라.

讀者須子細 읽는 사람이 자세히 보아야 하네.

緩緩細披尋 천천히 자세히 살펴서

不得生容易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말게나.

依此學修行 시의 뜻을 따라 배우고 수행하면

大有可笑事 크게 웃을 만한 성과가 있으리라「전당시 6책, 권807, 습득, p.4252」

이 시는 한시의 가장 초보적인 압운(押韻)이나 대구(對句)나 상징적 비유도 없다. 그냥 자신의 생각을 오언시(五言詩)의 형식을 빌어서 읊은 것이다. 읊고 전하고자 하는 의를 중시할 뿐이지 형식은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선(禪)이 추구하는 깨달음이다.

시의 파격은 오늘날 초현실주의시와도 상통한 점이 있다. 이것이 선시의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런 선시는 훌륭한 시라고는 볼 수 없다. 의(意)도 좋고 시격(詩格)도 좋아야 금상첨화다.

『한산시집』에 한산시에 대한 성격과 특징을 스스로 밝힌 시가 있는데 이 시는 그대로 선시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有人笑我詩 사람들이 내 시를 비웃으나

我詩合典雅 내 시는 고상(高尙)하고 법(法)에 맞다네.

不煩鄭氏箋 정씨(鄭氏)의 주석(註釋)도 번거롭게 할 것 없고

豈用毛公解 모씨(毛氏)의 해설도 힘입을 것 없네.

不恨會人稀 알아주는 사람 드물어도 한스러울 것 없고

只爲和音寡 다만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적은 것이 안타깝네.

若遣趁宮商 만일 오음(五音)을 찾는다면

余病寞能罷 내 병은 영원히 그칠 때 없으리.

忽遇明眼人 어쩌다 진실로 눈 밝은 사람을 만나면

卽自流天下 이내 저절로 천하에 퍼지리.「전당시 제6책, 권806 한산, p.4251」

有箇王秀才 왕수재(王秀才, 왕유)가 지금 있다면

笑我詩多失 나의 시가 맞지 않는다고 비웃을테지.

云不識蜂腰 이를테면 시의 병종(病種)인 봉요(蜂腰)도 모르고

仍不會鶴膝 또 학슬(鶴膝)도 알지 못하며

不側不解壓 평성(平聲) 측성(側聲)의 압운(押韻)도 모르고

凡言取次出 무릇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고 …

我笑你作詩 나는 너의 시를 비웃나니

如盲徒詠日 장님이 해를 읊는 것과 같네.「전당시 제6책, 권806 한산, p.4250」

한산은 자신의 선시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 것을 한스러워하지 않지만 다만 진정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적은 것을 안타까워한다고 읊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선의 오도(悟道)를 이룬 눈 밝은 시인이 나타나면 자신의 시가 천하에 퍼지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왕유(王維)같이 시를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의 시를 보면 남조(南朝) 양(梁) 때 문단의 영수 심약(沈約, 441~513)이 내세운 사성팔병설(四聲八病說)과 같은 성률론(聲律論)에 크게 어긋나므로 자신의 선시를 비웃겠지만 한산(寒山)은 오히려 시의 성률(聲律)을 의식적으로 따져서 조작적인 음률(音律) 조정을 통해서 자연스럽지 못한 시를 짓는 사람들을 맹인이 해를 읊는 것과 같이 우스꽝스런 시인들이라고 비웃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시의 성률을 의식적으로 따져 음률미(韻律美)를 추구하는 것을 영명체(永明體)라고 한다.

영명(永明)은 제 무제(齊 武帝)의 연호(483~483)이다. 엄격한 사성팔병설(四聲八病說)에 입각하여 시를 짓는 것은 시의 자연성을 저해하고 창조성과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시의가 크게 손상당한다고 하여 반대하는 비판을 받는 면도 있기는 하였으나, 영명체는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활동의 산물로 그 조건은 결국 진(陳)과 수(隋)를 거쳐 당대(唐代)에 내려가 율시(律詩)라는 정형체의 시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율시에는 전고와 대구를 활용하는 기법까지 채용되었다.

한산은 시불 왕유의 시세계와 심약(沈約)의 사성팔병설에 이르는 일반적인 시론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시풍인 한산시풍을 창안했고 이러한 시풍은 선가 시승들의 선시풍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고려의 선시나 조선조 이르러 서산대사 휴정의 시풍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산에 관한 기록은 모두 여구윤(閭丘胤)의 서문에 근거하나, 문헌의 성질에 따라 다소 윤색이 가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조당집(祖堂集)』권16이나『송고승전』권11에는 위산(潙山)선사(771~853)가 천태산에서 한산을 만났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또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권14과 지남(志南)의『천태산국청선사삼은집기(天台山國淸禪寺三隱集記)』에는 조주(趙州)화상(778~897)도 그를 만나 문답을 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위 문헌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한산이 선종의 조사인 위산(潙山)선사와 조주(趙州)선사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도 선가에서 한산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한산시집』은 중국, 한국, 일본의 선문에서 지속적으로 유통되고 애독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한산시집』은 최초의 선시집이라 할 수 있다. 시의 수준은 작품마다 고저(高低)가 크다. 『한산시집』전체를 통해 볼 때 한산은 중국 정통 선맥인 6조 혜능의 돈오(頓悟) 남종선 종지를 드러냈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선의 묘오(妙悟)를 나타내는 ‘무생(無生)’, ‘백운(白雲)’, ‘한암(寒岩)’, ‘공산(空山)’, ‘명월(明月)’, ‘자(自)’, ‘한(閑)’ 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화두(話頭) 공안(公案)이 시 속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남악 회양선사가 마조선사를 일깨워준 마전(磨磚)의 화두를 인용한 시가 1수 있음). 한산의 선시는 세속의 부도덕에 대한 경세적인 시와 운수자연을 읊은 운수시가 중심이 되고, 선시와는 다소 동떨어진 도가적(道家的) 시, 유교 경구가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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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의덕 2009-10-19 19: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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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를 통하여 구도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여 주셨읍니다. 다시금 나침판의 방향을 확인하고 초심으로 정진하겠읍니다. 교수님의 박학다식하고 열정적인 강의 잘 배우고 갑니다. 지금처럼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선시의 세계 2009-10-17 13: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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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묘한 경계입니다. 김형중 법사님의 덕분에 문외한도 선시의 맛을 엿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불자 2009-10-17 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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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에 김형중법사와 같은 분이 있어 이런 글을 읽는 복을 누리누나. 고맙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그네 2009-10-15 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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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릇만큼 되는 것, 무엇을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요, 두 눈 똑바로 박힌 법우님들네여, 한산시나 읊으며 내앞가림이나 잘하세나.
아이바이 2009-10-15 23:35:51
답변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무상 2009-10-15 15:58:14
답변  
"깨달음을 찾는 구도자가 세속인의 이상인 재물과 명예 그리고 미인을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출가 사문의 본분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출가 구도자는 재물과 명예를 버림으로써 세속인의 귀의처가 되고 삼보 예경을 받는 것이다" -  폐부를 찌르는군요. 한국불교를 아시는 분이라면 이 글을 읽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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