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명품선시 100선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은 한가로운 데<br>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밤은 고요하고

| | 2009-09-19 (토) 09:00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할 일을 다 마친 사람 한가로운 데,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었네.
밝은 달이 중천(中天)에 떠오르자 산새는 놀라서
봄 물가에서 우짖고 있네.

〈한자풀이〉

(人): 사람, 3인칭을 가리킴. (閑): 한가하다. 선가에서는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으면 할 일을 다 마친 한가한 도인이라 하여 한도인(閑道人)이라 한다. (桂): 계수나무, 월계수, 달 속에 있다는 상상의 나무. (花): 꽃. 계화(桂花): 계수나무 꽃, 여기서는 승리자에게 수여하는 월계수꽃으로 깨달음을 상징하는 시어. (落): 떨어지다. (夜): 밤. (靜): 고요하다, 맑다, 정밀하다. 선가에서는 선정을 정려(靜慮)라고 한다. 이 시에서는 ‘고요한 밤’의 뜻과 ‘왕유 자신이 깊은 밤에 홀로 선정에 든 모습’을 뜻 한다. 야정(夜靜): 고요한 밤, 밤에 홀로 선정에 들다. (春): 봄. (山): 뫼, 산. 춘산(春山): 봄의 산. (空): 텅 비다. 없다, 왕유의 시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시어로 94번 사용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만물이 본질적으로 실체가 없는 텅 빈 존재라는 뜻으로 만유(萬有)의 실상(實相)이다. (月): 달, 달빛. (出): 나다, 나타나다. 월출(月出): 달이 나타나다.(驚): 놀라다, 겁내다, 두려워하다. (鳥): 새. 산조(山鳥): 산에서 사는 새. (時): 때, 시간, 때에 맞추다. (鳴): 울다, 울리다, 음향이 나다. (澗): 계곡의 시내, 여기서는 황보악의 운계 별장 계곡의 시내. 춘간(春澗): 봄 기운이 돋아나는 봄 물이 흐르는 계곡. (中): 가운데, 치우치지 아니 하다, 불교에서는 중도(中道)의 뜻으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을 말 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본래 마음자리의 모습을 나타낸다.

선적인 정한과 공적이 불심과 함께 우러난 시
운계별장 고요한 밤 풍광 보벼 깨달음을 읋다

〈해설〉왕유는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시조일 뿐만 아니라 중국 산수시(자연시)의 완성자로서, 도연명(陶淵明) · 사령운(謝靈運)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산수시인으로 손꼽는다.

왕유의 시에는 도연명의 시풍을 계승하여 세속을 초탈한 전원의 풍취가 흐르는 시가 많다. 그러나 도연명의 노장(老莊)적인 무위자연의 세계와는 달리 불교의 선적인 정한(靜閑)과 공적(空寂)이 불심과 함께 우러나 있다.

왕유는 맹호연(孟浩然) · 위응물(韋應物) ·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되어 당나라 자연시인의 대표이다.

왕유의 시는 산수와 자연의 청아(淸雅)한 정취를 노래한 것과 선가(禪家)의 공한(空閑)의 세계를 노래한 뛰어난 시가 많은데 특히 망천의 별장에서 읊은 ‘망천집 20수’가 유명하다. 또한 어떤 인물인 지 알 수 없는 황보악(黃甫岳)의 운계별장(雲谿, 황보악의 별장으로 장안 근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에 대한 감흥을 노래한 5수의 잡제시(雜題詩)가 있는데 ‘산새가 우는 계곡의 냇가(鳥鳴澗)’는 그 중의 대표적인 시이다.

왕유가 교우(交友)로서 교분을 가졌던 노상 · 왕창령 · 맹호연 · 배적 등은 당대의 산수자연파 시인들이다. 그의 시문에 이들과 주고받은 시와 교분이 기록되어 나타나 있다.

‘산새가 우는 계곡의 냇가’는 왕유의 산수자연시 가운데서도 왕유시 풍격 중의 대표적인 ‘공한(空閒)의 미’가 잘 묘사된 작품으로 소동파가 평가한대로 ‘그림같은 시’이다. 이 시의 배경은 황보악의 운계별장이다. 망천별장과 같이 풍광이 뛰어난 아름다운 별장으로 주인은 왕유와 같이 내적인 도덕적인 품격이나 외적인 풍채가 군자의 덕상을 갖춘 황보악이란 인물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왕유가 쓴 ‘황보악사진찬(黃甫岳寫眞讚)’에 보면 황보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도가 있는 선비의 고풍스러움에 기색이 맑고. 두 눈동자는 또한 맑고 시원스럽도다. 항상 기운이 온화한 모습이 마치 장강(長江)에 비친 달 그림자와 같고, 태화산(太華山)의 솔바람 소리와 같도다.”

도를 모두 닦아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도인(황보악)이 운계별장에서 고요한 밤중에 노닐고 있다. 온 산에 봄꽃이 피었으나 밤하늘은 텅 빈 공간이다. 마치 깨달은 도인을 축하하듯 계수나무 꽃만이 흩날리고 있다.

원래 월계수나무는 달 속에 있다는 상상의 나무로 승리자에게 수여하는 월계수관과 꽃은 선시에서 깨달음을 상징한다.

공산(空山)에 밝은 달이 중천에 떴다. 달은 불성(佛性)과 깨달음을 상징한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란 말이 있는데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 위에 떠 있다는 뜻이다. 부처의 불성이 모든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상징한다.

깨달은 부처가 나타났으니 산새도 놀라고 무정물인 계곡의 냇물도 놀라서 기쁨으로 노래한다. 깨닫고 보면 온 세상이 그대로 화엄(華嚴) 불찰(佛刹) 세계이고, 모든 중생이 부처가 아닌 이가 없다. 이 시가 깨달음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하더라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봄산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5언절구 20자는 근체시(近體詩) 가운데 최소의 시편(詩篇)이다. 시와 선은 말이 많고 길면 그 맛이 줄어든다. 시의 고수들은 긴 말을 늘어트려서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상징적인 글자를 골라서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왕유는 1·2구에서 선적인 시어로서 고요와 선을 상징하는 ‘한(閑, 한가함)’, ‘정(靜, 고요함)’, ‘공(空, 텅 빔)’의 글자를 통하여 선 수행의 고요함과 한가함을 읊었다.

3·4구에서는 불성을 상징하는 ‘달(月)’과 깨달음의 내용인 ‘중(中, 中道)’의 시어를 사용하여, ‘산새(山鳥)도 놀라고(驚)’, ‘봄 냇가의 물(春澗)도 노래하는(鳴)하는’ 동적인 변화를 통해 1·2구와 대구를 이루며 생동감을 나타내고 있다.

5언절구의 생명은 2·4구의 구말(句末)에 압운(押韻)을 잘 하는 것이다. 왕유는 ‘공(空)’과 ‘중(中)’ 자로 압운을 하였다. 이 두 글자는 이 시가 나타내고자 하는 시의(詩意)를 대변하는 두 눈과 같다. 왕유의 시가 깊고 완벽한 명품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운수를 읊은 산수시가 모두 선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왕유의 시와 같이 스스로 선의 체험을 통해서 깨달은 오도(悟道)의 경지를 거기에 딱 맞는 적절한 선적인 시어로 묘사했을 때 비로소 선시가 된다.

*왕유의 시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 회부터는 최초의 선시집이라 할 수 있는 《한산시집》에 나오는 한산시를 소개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ABCD 2009-09-20 09:37:17
답변  
앞으로도 좋은 글 잘 부탁드립니다.
의덕 2009-09-28 20:43:50
답변  
그 시대 그 왕유가 이 시대 김 형중 교수님으로 환생하신것 같읍니다.선시를 감상하면서 시상속의 화쟁이되어 한바탕 멋지게 놀다 갑니다. 김 형중 교수님,내내 건강하세요.
무상 2009-09-21 12:45:26
답변  
계속 글이 올라오니 이제야 미디어 붓다 들어오는 맛이 납니다. 건강하시고, 힘드시더라도 너무 늦지않게 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김형중 법사님, 홧팅~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