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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br>어디선가 두런두런 소리만…

| | 2009-03-02 (월) 09:42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전당시 1책 권126, 왕우승집)

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란도란 사람소리

석양빛이 숲속 깊숙이 들어와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치네.

중국화가 오금목의 '상산채지도'라는 그림에 나타난 섬서성 남전산의 장관.크게보기

공산(空山)은 깨달음의 세계

푸른 이끼(靑苔)는 생명력 있는 민초(民草) 중생

<해설> 녹채(鹿柴)는 《망천집》에 나오는 다섯 번째 시로써 왕유의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대표적인 시이다.

왕유가 섬서성 장안(長安) 동남쪽의 남전현(藍田縣) 남전산(종남산) 기슭 남곡천(藍谷川)이 흐르는 곳에 망천장(輞川莊)이란 별장을 마련하여 은거하게 된 것은 1등으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현종(玄宗) 황제의 눈에 벗어나 제주(濟州)에 귀양살이 같은 좌천을 당하는 벼슬길에서의 실의(失意) 때문이다.

왕유는 현명한 재상이면서 자신을 후원해 준 장구령이 간신인 이임보에게 밀려서 파면당하는 일을 보면서 부귀공명의 덧없음을 깨닫고 마음의 안식(安息)을 찾아서 불교의 참선 수행에 깊게 심취하였다.

망천(輞川)이란 명칭은 남곡천의 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둥굴등굴 수레바퀴 테(輞) 모양처럼 휘돌며 흘러가서 생긴 것이다.

《구당서》에 의하면 “왕유는 망천 계곡의 어구에 있는 송지문(宋之問)의 남전별장을 샀다. 망천의 물이 집 둘레를 감싸며 흘렀고, 따로 물을 끌어 대나무 골, 꽃 언덕을 축조하였다. 함께 수도하는 친구 배적(裵迪)과 더불어 배를 띄워 왕래하고, 거문고 줄을 타고 시를 지으며 종일토록 읊조리고 노래하였다.

이렇게 하여 지어진 시를 모아 《망천집》이라 이름하였다. 조정에서 파하고 돌아오면 향을 피우고 홀로 앉아 참선독경을 일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유가 송지문의 남전별장(종남별장 또는 망천별장)을 사들인 것은 송지문(측천무후 때 궁정시인으로 명성을 날림)이 현종에 의해서 유배지에서 사사되고 난 후 10여 년이 지난 일이다.

흉가로 불길한 땅이라 사람들이 기피한 송지문의 별장을 사들인 것은 시인으로서 명성을 날린 송지문이란 연고 때문이라는 주장과 왕유가 장안에서 가까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벼슬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찌 하던 왕유가 만년에 배적과 함께 망천계곡에서 경치가 뛰어난 20경(景)을 택하여 5언절구로 각각 20수를 읊어 총 40수 의 시를 모아서 《망천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엮었는데 이 시들이 왕유의 최고 뛰어난 가작시로 평가받고 있다.

송(宋)나라 소동파(蘇東坡)는 〈소동파가 쓴 발문: 왕마힐의 남전연우도에 적다(東坡題跋: 書摩詰藍田烟雨圖)〉에서 왕유가 만년에 남전별장 즉, 망천장에서 지은 시에 대하여 평하기를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고 하였다. 시론(詩論)에서 최고의 품격으로 삼는 시화일치론(詩畵一致論)이 여기서 비롯하였다.

왕유는 망천장 벽에 망천계곡의 승경 20경을 그려 놓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유명한 왕유의〈망천도〉이다. 왕유가 산수화, 문인 남종화의 시조가 된 그림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명(明)나라 시인이며 문학평론가로 유명한 이동양(李東陽)은 성당(盛唐)의 시풍을 추구하는 당시(唐詩) 부흥운동을 부르짖었는데, 《회덕당시화(懷德堂詩話)》에서 “왕유의 시는 담백한가 하면 더욱 짙고, 가까운가 하면 더욱 멀구나”라고 평하였다.

청(淸)나라 황배방(黃培芳)은 왕유의 시를 평하기를 “한가로운 정경은 속세의 먼지와 소음에 찌들어 있는 자들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오직 평정한 마음에서만이 경물의 묘사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청(淸)나라 시인으로 신운설(神韻說)이란 시론으로 청나라 문단은 물론 우리나라 실학 북학파(北學派: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박지원)의 시에도 큰 영향을 준 왕사정(王士禎, 王士禛)은 왕유의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송(宋)의 엄우(嚴羽)는 시선일치(詩禪一致)를 주장하였으나 왕유와 배적의 망천(輞川) 절구(絶句)에는 글자마다 선(禪)에 들어가 있다”

왕사정의 신운설은 시의 풍격에 있어서 함축과 자연, 충담(沖澹), 묘오(妙悟)를 신운(神韻: 신비롭고 고상한 운치)으로 삼고 있는데, 왕유의 시를 으뜸으로 삼았다. 이른바 언어의 표현은 다했어도 그 뜻은 다함이 없고 여정(餘情)이 무궁한 맛이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하는 언외지미(言外之味)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물아일치의 경지이다.

녹채란 사슴을 키우는 울타리를 뜻한다. 아름다운 사슴동산이다. 녹야원(鹿野苑)이다. 시를 풀어서 해설해 보자.

텅 빈 산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란도란 사람소리 뿐인 고요한 망천계곡

낮은 곳 좋아서 계곡 음지에서 절로 자란 푸른 이끼 위에

석양빛이 숲속 깊숙이 들어와 비추니 더 아름답구나.

《당시전주(唐詩箋注)》에는 “‘인적이 없다(不見人)’와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다(但聞人語響)’라고 한 것은 숲이 깊기 때문이다. 숲이 깊어 햇볕이 덜 들면 이끼가 자라기 쉽다. 저녁에 되비치는 빛이 스며들고 빈 산은 고요하니 진실로 사슴이 터전을 삼기 알맞은 곳이다. 시가 매우 섬세하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 시에서 ‘텅 빈 산(空山)’과 ‘석양볕(返景)’ 그리고 ‘푸른 이끼(靑苔)’의 시어는 절묘하다. 불교에서 무었을 깨달음이라 하는가? 깨달음의 내용이 무었인가?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공(空)이다. 공 사상은 대승불교의 기본이 되는 핵심사상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하는 사물이 자기를 형성하는 고유한 실체가 없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따라 화합하여 일시적으로 모습을 이루고 있을 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존재의 실상(實像)을 밝힌 진리이다. 우리의 마음도 실체가 없다. 자성(自性)이 없다. 무자성(無自性) 즉, 공이다. 이 도리를 아는 것이 깨달음이고,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으려는 경계가 공의 세계이다.

1구에서 공산(空山)이 있는데 사람이 보지 못한다(不見人)고 했다. 공의 도리를 보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텐데, 그러나 2구에서는 어디선가 도란도란 사람소리가 들린다. 진리를 먼저 알고 있는 성문(聲聞) 선지식의 소리가 들린다. 마치 《십우도(十牛圖)》에서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는데, 소의 발자국을 보았고(見跡), 깊은 산속에서 소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1구와 2구의 ‘견(見)’과 ‘문(聞)’은 보는 것과 듣는 시청각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견성오도(見聲悟道) 즉,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는 세계로 이끌고 있다.

3구에서는 내 마음의 깊은 단계인 제8아뢰야식(深林)에 반야지혜(空觀)가 깊숙이 들어와(入) 회광반조(廻光返照)하는 것을 저녁 석양빛이 깊은 숲속에 들어온 것으로 표현하였다.

결구(結句)에서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추네(復照靑苔上)”는 압권이다.

‘푸른 이끼’는 왕유가 깨달은 인생의 모습이다. 왕유는 자연 속 이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천재 왕유의 위대한 통찰력이다.

이끼는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낮은 곳, 음지 습지를 좋아한다. 이끼는 큰 고목나무나 바위 틈에 붙어서 끝까지 죽지 않고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 남는다. 이끼는 혼자 살 수 없다. 여럿이 모여 군생(群生)한다. 연꽃처럼 고원(高原)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불교 경전에서는 연꽃을 더러운 연못 속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꽃을 곱게 피워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살에 비유하고 있다. 더러운 이 세상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그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는 보살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왕유는 온갖 난관과 고통을 감내하고 저 낮은 습지, 척박한 바위와 깊은 늪 속에서도 푸른 모습으로 무한한 생명력으로 생존 본능이 강한 성질을 가지고 부드러운 융단처럼 곱고 평화롭게 자라고 있는 하찮은 이끼를 통해서 민초(民草) 중생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푸른 이끼는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 민초 중생을 상징한다. 왕유의 위대한 발견이다. 왕유는 이끼를 통해서 위대한 중생을 발견한 것이고, 또 중생을 통해서 부처를 발견한 것이다.

사바세계에서 고통받고 살아가는 중생이야말로 부처나 보살보다도 더 소중하고 위대한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이 세상의 주인공들이다. 왕유는 연꽃보다도 더 위대한 푸른 이끼의 의미와 상징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깨달음이다.

이끼는 다른 식물처럼 햇빛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든다. 물론 햇빛이 너무 강하면 말라 죽지만 저녁 석양볕은 푸른 이끼를 더욱 살찌게 하고 푸르게 한다. 고통받고 있는 중생이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고, 해탈을 얻었다.

이 시를 천하의 시인 평론가들이 절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녹채는 깨달음의 경지 즉, 묘오(妙悟)의 경지를 읊은 오도선시이다.

엄우(嚴羽)가 말한 묘오(妙悟)의 경지이고, 왕사정이 말한 신운(神韻)의 경지이다. 오언절구 20자 글자 하나하나가 절묘하고, 절제된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언외지미(言外之味)의 극치를 보여주는 만금(萬金)의 시이다. 가히 시불(詩佛)이라 칭할 만하다.

〈한자풀이〉

(공): 비다, 텅 비다, 허공.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이 공 사상이다. 반야경 600부의 핵심사상. (산): 산, 뫼. 空山(공산): 텅 빈 산. (불): 아니다(부정사). (견): 보다. (인):사람, 3인칭 다른 사람. (단): 다만, 무릇. (문): 듣다. (어): 말씀, 어구. (향): 울림, 울리다, 음향(音響). (반): 돌아오다, 되돌아오다, 돌려주다, 바꾸다. (경): 볕, 빛, 햇살, 햇볕. (입): 들어오다, 들다. (심): 깊다, 매우. (림): 수풀, 숲. 深林(심림): 깊은 숲속. (부):다시, 돌아오다. (조): 비치다, 비추다, 햇빛. (청): 푸른빛, 푸르다. (태): 이끼. 靑苔(청태): 푸른 이끼. (상): 위.

공 모르면 깨달음에 한 발짝도 못 나아가

지혜의 칼로 번뇌 끊어내는 가르침 담아

〈화사족(花蛇足)〉선시의 시어에 공(空)이 많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공에 대한 이해 없이는 대승경전이나 선 사상과 깨달음에 대해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공 사상은 초기 대승경전인 반야경에서 비롯되었음으로 반야부 600부를 260자로 요약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타난 공 사상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반야심경》에 나타난 공(空)의 해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반야심경》은 팔만대장경 가운데서 260자로 된 가장 짧은 경이다.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서 설법했는데 《반야경》을 무려 21년이나 설했다. 600부 《반야경》은 대장경 가운데 최고로 많은 양을 차지하는데, 대승 불교의 핵심사상이고 밑바탕이 된다.

이것을 한 권으로 축약한 경전이 《금강경》이고, 또 이것을 260자로 요약한 경전이 《반야심경》이다. 또 이것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공(空) 사상이다.

공(空)은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자신을 형성하는데 독자적인 고유한 성질, 즉 실체가 없이 인연화합에 의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존재의 본질(본체)의 세계를 밝힌 교리(이론)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이 고유한 실체가 있다면 시간의 흐름에도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상하게 변화하고 결국은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형상이 있는 모든 사물은 결국 허망하게 없어지고 말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연연해 봐야 소용이 없다.

우리의 육신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흙 · 물 · 불 · 바람으로 흩어지고 만다. 아무리 육신을 사랑하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집착해 봐야 허무하게 소멸하고 만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러한 무상과 공의 도리를 깨닫고 소유(有, 있음)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인생은 꿈과 같고, 허공에 뜬 구름과 같이 허망한 것이다.

이러한 무상한 도리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생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다. 고통은 애착과 진리를 모르는 무지(無知, 無明) 때문에 생겨난다. 그래서 집착을 버리고 무지를 타파하면 고통도 사라진다.

《반야심경》에서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몸과 정신인 “오온이 모두 공하다”고 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작용으로 이루어진 진리와 사상까지도 공하여 실체가 없다. 망상과 집착으로 만들어 낸 허상이다. 그래서 객진번뇌라고 한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번뇌가 본래 실체가 없고, 잠시 내 마음 속에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고통은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고통도 고통을 없애는 진리인 사성제, 십이연기법도 모두 공하다. 이러한 공의 도리를 설한 것이다. 공의 이치를 터득하여 깨달은 지혜를 반야바라밀다라고 한다.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다.

《금강경》에서 “형상이 있는 모습을 보되 그것이 실체가 없는 형상(空)인 것을 보면 여래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였다.

형상을 떠나(離相) 공의 이치를 보면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안심을 얻을 수 있다.

선가의 가르침도 선정을 통해서 공의 이치를 깨달아 유상(있음, 형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면(放下) 안심을 얻고 해탈을 한다고 한다.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어 모든 중생이 함께 정토를 이루저 잘 사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를 금강석과 같이 단단한 반야 지혜의 칼로 끊어 없애는 길을 설하고 있다. 《반야심경》이 한국 · 중국 ·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모든 불교 법회의식에서 독송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반야심경》을 수지독송하고 사경하고 전파하는 공덕은 부처님을 예배 공양하는 일보다 백천 배 크다고 가르쳤다.<선시박사 김형중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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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보현행 2009-03-04 00:27:09
답변  
지난 일요일 동네 야산에서 보았던 소나무뿌리를 덮고 있는 푸른 이끼가 불현듯 생각이 나네요
눈에 잘 띄지 않아 무심코 밟으며 하잖게 여긴 이끼에게서 그런 심오한 불교의 의미가 있다니
또 한번 깨달음에 눈이 번쩍 띄이네요 연꽃보듯 푸른 이끼도 바라볼 것 같아요

이끼 인생 2009-03-02 10:57:34
답변  
푸른 이끼가 민초 중생을 상징하고, 중생이 역사와 우주의 주인공으로 위대한 존재임을 밝힌  왕유의 해설이 너무 감동적입니다. 연꽃보다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푸른 이끼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할 뿐입니다.
무상 2009-04-02 15:58:54
답변  
김형중 법사님의 선시 감상하는 재미로 미디어 붓다에 들어오는데 꽤 오랜 시간동안 새로운 선시 해설이 없네요. 바쁘셔서 그럴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글 좀 올려주세요.
평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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