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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사가 어디쯤인지 몰라<br>구름 속을 얼마나 헤맸던가

| | 2009-02-14 (토) 11:03

不知香積寺(부지향적사)

數里入雲峰(수리입운봉)

古木無人徑(고목무인경)

深化何處鍾(심화하처종)

泉聲咽危石(천성인위석)

日色冷靑松 (일색냉청송)

薄暮空潭曲(박모공담곡)

安禪制毒龍(안선제독룡)

(전당시 1책 권126)

향적사 어디쯤인지 몰라

얼마나 산등성이 지나 구름 속을 헤매였나.

고목만 즐비하고 사람 다니는 길조차 없는데

깊은 산속 어디에선가 은은히 범종소리 들려오네.

산골짝 물소리는 기암괴석 사이에서 흐느끼고

푸른 소나무 빛에 햇빛도 푸르네.

선승(禪僧)은 해지는 저녁 텅 빈 물가에 고요히 앉아

좌선하며 마음의 번뇌를 다스리네.

중국 시안에 있는 향적사 전경.크게보기

시율과 풍격은 물론 철리까지 담은 절창!

공한과 적정의 왕유 시격 잘 드러낸 시

〈해설〉송나라 소동파(蘇東坡)는 왕유의 시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왕마힐의 시 속에는 그림이 있고(詩中有畵-시중유화), 그의 그림 속에는 시가 있다(畵中有詩-화중유시)”

왕유의 〈향적사를 찾아서〉는 소동파의 시평처럼 깊은 산속 의 고사(古寺)의 경치를 읊은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은 듯하다. 그림 같은 시이다.

향적사는 현재 섬서성 서안시 남쪽 종남산에 있는 고찰이다. 깊은 산등성이 너머 구름 속에 고요한 향적사가 있다. 사람은 없는데 깊은 산 속 어디선가 범종소리가 들리니 더욱 적막하고 고요한 경지를 창출한다.

선에서는 알음알이 지식을 멀리 한다. 아는 것이 병 즉,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많이 알면 알수록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서 시비와 걱정이 생겨나는 법이다. 그래서 산사를 찾는 마음 자세는 말을 삼가고, 망상을 떨쳐버려야 한다. 절 문 앞에 “이 문 앞을 지나 경내로 들어오는 사람은 시비분별하는 알음알이를 일으키지 말라(入此門內-입차문내 莫存知解-막존지해)”라고 경구(警句)가 붙어 있다.

그래서 이 시의 첫머리에서 향적사를 알고 찾아가면서도 “향적사 어디에 있는 줄 몰라 얼마나 산등성이를 돌고 돌아 구름 속을 헤맸나” 하고 “不知香積寺(불지향적사, 향적사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라고 선적인 시어로 시작하며 독자로 하여금 향적사와 앞으로 시가 전개될 내용에 대해서 호기심을 일으키고 있다.

‘何處(어디선가)’라는 시어는 ‘無人(사람이 없는)’과 상응하여 첫 구의 ‘不知(알지 못한다)’의 시어와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연상적 이미지 효과를 주고 있다.

해가 지고 있는 석양에 푸른 소나무가 빛에 반사되어 더 푸르고, 산골짝에 흐르는 물소리는 기암괴석 사이를 흐느끼듯이 흐른다. 천연의 절경이 실로 탈속(脫俗)의 정취에 젖게 한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물가에 홀로 고요히 앉아 좌선을 하고 있는 선승을 바라보니, 세속(世俗)에서 묻은 마음의 번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산등성이 위에 흰 구름이 떠 있고, 멀리서 산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흰 구름과 푸른 소나무가 색깔의 조화를 이루고, 범종소리와 산골짝에 흐르는 물소리는 시를 읽는 독자를 색깔과 소리의 조화, 시각과 청각을 통해 색성오도(色聲悟道, 색깔과 소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의 경지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 시는 ‘향적사 앞의 텅 빈 물가에서 고요히 좌선을 하고 있는 선승의 모습을 통해 세속의 모든 먼지와 번뇌를 털어낸다’고 결구(結句)함으로써 산사를 찾아가면서 꼬불꼬불한 산길, 고목나무 그리고 기암괴석, 흐르는 시냇물소리 등 자연의 모습을 읊은 산수 자연시를 선적 수행과 철리(哲理)를 담은 선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마지막 연의 ‘해지는 저녁 텅 빈 물가(薄暮空潭曲)’의 ‘공담(空潭, 텅 빈 연못)’의 시어는 불교의 심오한 깨달음의 세계와 철학적인 깊이를 더해 준다.

왕유의 시 가운데 공(空)이란 시어가 94회 나타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공(空)자는 왕유 시문학에서 속세와의 단절과 신비의 정토(淨土, 이상세게)에 대한 희구라 할 수 있다. ․왕유의 시격(詩格)를 공한(空閒)과 적정(寂靜)이라 말할 수 있는데, ‘향적사를 찾아서(過香積寺)’는 이러한 시격을 나타내는 시이다.

오언율시에서 3, 4구(제2련, 함련)와 5, 6구(제3련, 경련)는 반드시 대어(對語)[上-下, 山-水]를 써서 연구(聯句)를 이루어야 한다. 압운(押韻)에 있어서도 오언율시는 제2, 제4, 제6, 제8구에 각운(脚韻)을 붙이는 것이 원칙이다.

이 시에서 운(韻)은 ‘봉(峰)’, ‘종(鍾)’, ‘송(松)’, ‘룡(龍)’ 으로 압운하였다. 또한 이 4운자는 이 시의 핵심 시어가 되는 신운(神韻)이다. 이것이 한시의 묘미이다.

함련(頷聯)의 ‘천성(泉聲)’과 ‘일색(日色)’ 그리고 ‘위석(危石)’과 ‘청송(靑松)’, ‘인(咽)’과 ‘냉(冷)’은 상응하여 대구를 잘 이루고 있다.

‘샘물(泉)’과 ‘해(日)’는 각각 땅과 하늘에 속하고, ‘바위(石)’와 ‘소나무(松)’는 무생물과 생물에, ‘흐느낌(咽)’과 ‘차가움(冷)’은 인간에 속한다.

결연(結聯)의 ‘안선제독용(安禪制毒龍)’은 절묘하다. ‘안선(安禪)’은 좌선을 통해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 이른 경지를 나타내고, ‘독룡(毒龍)’은 《열반경》의 “다만 내 거처에 독룡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성질이 난폭해서 해를 끼칠까 두렵다(但我住處有一毒龍 其性暴急 恐相危害)”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는데, 탐욕 ․ 분노심 ․ 어리석음 즉, 3독심(三毒心)을 뜻한다. 번뇌 망상을 상징한다.

이 시의 전반부 여섯 번째 구는 완전히 경치만 묘사하고 시인의 감정은 조금도 나타내지 않고 있지만, 그 경치 속에 왕유가 오직 조용한 것만을 좋아했던 정취가 잘 표현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구에서 ‘선정을 통해 번뇌 망상을 없애다’는 구도자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왕유의 이 시는 한시의 모든 시율(詩律)과 풍격(風格)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철리(哲理)까지 담은 절창 중의 명품이다.

이 시는 한 폭의 동양화를 언어로 시화(詩化)한 그림 같은 시요, 시와 선 그리고 자연이 합일된 품격 높은 묘오(妙悟)의 경지를 읊은 선시이다.

〈한자풀이〉

(불): 아니다, 말다(부정사). ‘不’자 다음에 오는 음이 ‘ㄷ’ 또는 ‘ㅈ’일 경우는 ‘부’로 발음하여 읽는다. (지): 알다, 깨닫다. 부지(不知): 알지 못하다. (향): 향기, 향기롭다. (적): 쌓다, 모이다. (사): 절, 사원, 정사(精舍). 香積寺(향적사):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의 남쪽에 있는 절. (수): 세다, 계산하다. (리): 마을, 촌락, 거리, 길이의 명칭. 數里(수리): 몇 리. (입): 들다, 안으로 들어가다, 들이다. (운): 구름. 峰(봉): 봉우리, 산. 雲峰(운봉): 구름 자욱한 산봉우리. (고): 옛, 오래다. (목):나무. 古木(고목): 오래 된 나무. (무): 없다, 말라(금지). (인): 사람, 타인(3인칭). (경): 지름길, 빠르다. 人徑(인경): 사람이 다니는 작은 길. (심): 깊다, 매우. (산): 산. 深山(심산): 깊은 산속. (하): 어느, 어찌, 무엇, 얼마. (처): 살다, 머물러 있다, 곳(장소). (종): 종, 쇠북. (천):샘. (성): 소리, 음향. 泉聲(천성): 흐르는 샘물소리. (인): 목구멍, 흐느끼다. (위): 위태하다, 위태롭다. (석): 돌. 危石(위석): 산골짜기의 기암괴석. (일): 해, 태양, 햇빛. (색): 색깔, 색채, 형상. 日色(일색): 햇빛. (냉): 차갑다, 차다. (청): 푸르다, 푸른빛. (송): 소나무. 靑松(청송): 푸른 소나무. (박): 엷다, 적다. (모): 저물다, 해 질 무렵. 薄暮(박모): 해 저물녘, 저녁 무렵. ‘박(縛)’은 가까워지다의 뜻. 潭曲(담곡): 구불구불 굽어진 연못 기슭. (공): 텅 비다.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으로 모든 사물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 따라 모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신을 형성하는 고유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담): 연못. (曲): 굽다, 휘다. 空潭(공담): 텅 빈 연못. 아무도 없는 조용한 연못. (안): 편안하다. (선): 마음을 고요히 정산을 집중하는 불교의 수행법. 安禪(안선): 선정, 참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선정.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여 잡념도 일어나지 않음. (제): 마르다, 자료를 필요한 규격대로 자르다, 억제하다, 누르다. (독): 독, 해독, 해악. (룡): 용, 임금을 상징. 毒龍(독룡): 온갖 헛된 욕심, 망녕된 마음을 비유함.

왕유의 그림은 남종화의 시조

시 속에 그림이, 그림 속에 시가 있다

화사족(花蛇足)〉왕유를 남종화(南宗畵)의 시조라고 한다. 그는 시도 최고였고, 그림도 최고의 화가였다.

시를 짓는 이론을 ‘시론(時論)’이라 하고, 그림을 그리는 이론을 ‘화론(畵論)’이라 한다. 소동파가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론하여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하였다. 그림 같은 시가 최고의 명품 시이고. 시가 있는 그림이 최고의 명화(名畵)이다. 중국 문학사와 미술회화사에 최고 성취를 이룩한 천재인 소동파가 왕유에 대해 내린 평가는 적절하다.

왕유를 남종화의 시조라고 칭한 사람은 명청(明淸) 시기에 관리로서 시와 서예, 문인화로 널리 이름을 날렸던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이다.

동기창은 선(禪)의 이론으로 그림의 이치(畵理)를 설명하는 이론을 주장하였다. 선을 회화에 비유하고 불교용어를 회화이론으로 적용한 것이 그의 화론(畵論)의 특징이다. 그는 중국 회화사(繪畵史)를 선종의 돈오를 추구하는 남종선과 점수를 추구하는 북종선의 특성에 비견하여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누어 분류하여 각기 다른 화풍, 화법에서의 심미(審美) 추구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동기창이 선으로서 화리(畵理)를 해석한 새로운 화파를 ‘화선파(畵禪派)’라고 부른다. 화선파가 청나라 화단을 풍미하였다. 특히 건륭황제는 동기창의 그림을 좋아했고, 동기창의 ‘화선실(畵禪室)’이라는 이름까지 가져다 자신의 서실에 걸어 놓았다.

동기창의 《화지(畵旨)》(訂補本, 1984)에 보면 남종화와 북종화의 유래를 당나라 때 선종의 남북 두 종파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향적사에 위치해 있는 중국 시안의 명산 크게보기

“선가(禪家)는 남북 두 종파가 있다. 이는 당나라 때 시작된 것이다.

그림도 남북 두 종파가 있다. 역시 당나라 때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물은 지역의 남북인이 아니다.

북파는 이사훈(李思訓)이고, 남파는 왕마힐(王摩詰)이다. 이때는 북파는 이미 쇠약해졌다. 이를테면 왕마힐의 운봉석적(雲峰石迹)이 천기(天機:자연계의 비밀)를 표현하였고, 그 의미가 종횡무한하여 미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소동파가 오도자(吳道子), 왕마힐의 그림을 칭찬하여 ‘나는 왕유와 아무런 간격이 없다’라고 했으니 옳은 말이다.

남종화는 문인화(文人畵)이고, 북종화는 장인화(匠人畵)를 가리킨다.

이렇듯이 선을 통해 그림을 비유하는 선화론이 있었고, 송나라 엄우(嚴羽)는 《창랑시화》에서 선과 시의 유사성을 주장한 ‘이선유시론(以禪喩詩論)이 있다. 선으로써 시를 비유한 선시론(禪詩論)이다. 선 사상이 동양 3국의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학박사 김형중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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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보현행 2009-02-14 12: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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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08산사 순례를 하면서 신라 최초의 절로써 이름도 아름다운 복숭아꽃 피어 있는 도리사를 다녀왔어요, 산 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수십대의 버스가  불자의 간절한 마음을 싣고 구름산을 넘어 천년고찰을 향해 달려갔어요. 우리의 인생길도 꼬불꼬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살이를 시불 왕유는 멋지게 산사순례를 시로 읊었네요. 108산사를 다녀오면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네요, 텅 빈 가슴에 충만한 기쁨이네요.
김태곤 2009-02-19 18: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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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마음모퉁이 바로 돌아서 있지 않을까요. 마음 모퉁이...
수심보살 2009-02-16 19: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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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의 시 속에는 그림이 있다해서 시를 읽으며 재주는 없지만 도화지에 그려봤어요. 유치원생 수준이지만 정말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네요. 요즘 참다운 내 마음을 몰라 구불 구불 구름 속을 헤매는 나에게 해지는 저녁 텅 빈 물가에 고요히 앉아있는 선승의 모습이 해답을 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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