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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안의 미소년이<br>순식간에 백발이 되었구나

| | 2009-02-01 (일) 02:47

宿昔朱顔成暮齒(숙석주안성모치)

須臾白髮變垂髫(수유백발변수초)

一生幾許傷心事(일생기허상심사)

不向空門何處銷(불향공문하처소)

(왕우승집전주, 전당시 1책 권128)

홍안의 미소년이 늙은이 되어

어릴 적 다박머리가 순식간에 백발이 되었구나.

일생 동안 가슴 아팠던 일 그 얼마였던가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위안을 받았을꼬.

청(淸) 만소당화전(晩笑堂畵傳) 왕유상크게보기

상처 받은 한 사람의 인생이

부처님 법 만나 위안 받는 격조 깊은 귀의송

〈해설〉인생은 무상하고, 아침 이슬과 같이 허무한 것이다. 세월이 나는 화살보다도 더 빠르다고 한다. 하룻밤 자고 나니 백발의 노인이 되는 것이 인생이다. 부처님은 《아함경》에서 인생의 무상을 마치 ‘칡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매달려 있는데,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밤낮으로 번갈아가면서 갉아먹는 모습’에 비유(黑白二鼠)하였다. 결국 죽음은 시간 문제이고, 그 시간은 찰나 인생이다.

왕유의 인생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어려서 아버지가 죽었다. 뿐만 아니라 32세에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평생을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동생 왕진(王縉)과 함께 고향을 떠나 낙양에서 살면서 벼슬을 얻기 위하여 권문세도가의 집을 출입하였다. 그는 9세에 글을 지을 줄 아는 신동이었다.

《태평광기》에 보면 “약관에 문장으로 이름을 얻었고, 음률에 밝고 비파를 잘 타서 귀인들의 집에 출입하였다.”고 하였다.

《신당서》에는 “왕유가 초서와 예서를 잘 썼고, 그림도 잘 그려서 이름을 떨쳤는데, 영왕(寧王, 현종의 형)과 설왕(薛王, 현종의 아우) 등 이 그를 스승처럼 친구처럼 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유는 20세(721년)에 진사 시험에 급제하여 대악승(大樂丞, 궁중의 음악을 관장하는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제주(濟州)로 좌천되어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유배지 같은 제주에서 6년을 살다가 벼슬을 버리고 장안으로 돌아온다. 왕유는 의기소침해졌고, 탈속은둔을 지향하게 된다.

33세(734년)에는 장구령(張九齡)이 재상이 되자 우습유(右拾遺)에 발탁되어 조정에 복귀하나, 얼마 안 되어 장구령이 좌천되자 왕유도 양주(凉州)로 좌천된다. 이렇듯 인생의 부침(浮沈)을 거듭하면서 인생의 무상과 허무함을 뼈저리게 체득했다.

안록산의 난(755년)에는 장안에서 반란군에게 포로로 잡히어 곤혹을 치렀다. 관군이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 후에는 반란군에게 부역(附逆)했다는 죄명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아우 왕진이 자신의 벼슬을 깎아서 대속(代贖)하여 현종을 감동시켜서 왕유의 목숨을 구명한 것이다.

안사의 난은 왕유에게 커다란 좌절과 죄책감을 주었다. 그 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불교에 본격적으로 귀의하여 수도 정진의 길을 간다.

본문의 시 7언절구 ‘백발을 한탄한다’는 왕유의 이와 같은 인생행로에 대한 회한을 읊은 시이다.

늙음을 상징하는 신체적 변화는 흰 머리털과 흔들리고 빠진 이빨이다. 무상한 인생을 사실적으로 실감나게 읊은 시이다. 자칫하면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인생을 한탄하는 타령조가 될 것을 “일생의 상심사(傷心事)를 녹여주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있었다”고 결구(結句)하여 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인생은 고해(苦海)다. 그러나 부처님의 반야지혜가 있어서 피안(彼岸)에 건너갈 수가 있다. 이 시는 상처받은 인생이 불법을 만나서 위안을 받는 멋진 귀의송(歸依頌)이다. 찬불가 가사로써 손색이 없는 멋진 한 가락 한 곡조가 된다.

인생의 무상한 시간의 흐름을 기승구(起承句)의 ‘숙석(宿昔, 잠깐 사이)’과 ‘수유(須臾, 순식간)’ 그리고 ‘주안(朱顔, 붉은 얼굴, 홍안)’과 ‘백발(白髮, 노인의 머리털)’, ‘성(成, 이루어지다)’과 ‘변(變, 변하다)’, ‘모치(暮齒, 늘그막, 만년)’와 ‘수초(垂髫, 유년시절)’가 대구(對句)를 이루게 하여 홍안이 백발로 변하는 기법이 기발하다. 뜻글자인 한자를 사용하는 한시에서 이러한 함축과 상징 그리고 대구가 멋지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백발변수초(白髮變垂髫, 백발이 변하여 다박머리가 되었다)’는 ‘수초변백발(垂髫變白髮, 다박머리가 변하여 백발이 되었다)’의 도치(倒置)이다. 평측(平仄)과 운각(韻脚)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이 시의 운자(韻字)인 ‘초(髫)’와 ‘소(銷)’는 모두 하평성(下平聲) 소운(蕭韻)에 속한다.

시의 생명은 운율(韻律)이다. 시가 사람을 격동시키는 것은 음악성 때문이다. 시로써 사람을 교화시키고 감동시킨 것이다. 시는 문학의 꽃으로써 옛날에는 과거시험의 필수과목이었다.

왕유는 시 ․ 서 ․ 화 삼절 뿐만 아니라 비파의 명인으로 음악에도 조예가 있었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첫 벼슬이 궁중의 음악을 관장하는 대악승(大樂丞)이었다. 왕유는 시를 잘 지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구족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부처님 ‘불(佛)’ 자 등 불교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깊은 불심과 오묘한 선리(禪理)가 품어 나오는 ‘언외지미(言外之味)’의 시격(詩格)을 갖추고 있다.

<한자풀이〉</strong>(탄): 한탄하다, 탄식하다, 읊다, 노래하다. (백): 희다, 흰색, 흰빛. (발): 머리털, 터럭. 宿(숙): 묵다, 머무는 집. 별자리(수). (석): 옛(예), 옛날, 오래 되다. 宿昔(숙석): 여기서는 ‘숙석(宿夕)’과 통하여 ‘잠깐 머무는 저녁 시간’을 뜻하는 극히 짧은 시간을 이름. 곧, 잠깐 사이. (주): 붉다, 붉은빛, 붉은 빛깔. (안): 얼굴, 낯, 안면. 朱顔(주안): 홍안의 젊은 시절을 이름. 얼굴빛이 붉어 젊음을 뜻함. 成(성): 이루다, 이루어지다. 暮(모): 저물다, 해가 질 무렵. 齒(치): 이, 어금니, 나이. 暮齒(모치): 늘그막, 만년. (수): 모름지기, 마땅히, 수염, 머무르다. (유): 잠깐. 須臾(수유): 잠시, 순식간. 불교 용어로는 눈 깜짝할 사이와 같이 짧은 시간인 찰나(刹那)의 뜻. 白髮(백발): 흰 머리털, 노인을 상징함. (변): 변하다, 달라지다, 변경되다, 화(化)하다. (수): 드리우다. (초): 다박머리. 垂髫(수초): 옛날 어린이가 길게 늘어뜨린 다박머리. 또 전의되어 어린아이, 유년사절의 뜻도 있음. (생): 나다, 태어나다, 낳다, 살다. 一生(일생): 한 평생, 살아 있는 동안. (기): 몇(얼마), 어찌, 기미, 낌새. (허): 허락하다, 승인하다, 약속하다. (상): 상처, 이지러지다. 傷心(상심): 상처 난 마음, (슬픔 ․ 걱정 등으로) 속을 썩이는 것. 傷心事(상심사): 마음 아픈 일. (불): 아니다, 말다(금지의 뜻). (향): 향하다. (공): 비다, 비게 하다, 텅 비다, 내실이 없다, 부질없다. 불교 용어로는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으로 모든 존재가 자신을 구성하는 고유한 성품과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화합에 의한 소산물로써 실체가 없음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상(幻像)과 같은 것이다. (문): 출입문, 집안. 空門(공문): 불교 집안 즉, 불문(佛門)을 뜻함.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이 공 사상이므로 불교 사상을 대표한다. (하): 어찌, 어디서, 무엇. (처): 살다, 머물다, 장소. (소): 녹이다, 녹다, 다하여 없어지다. 여기서는 (속세의 온갖 번뇌를) 녹여서 없앤다는 뜻으로 쓰인다. 해탈의 뜻임.

왕유의 불심(佛心)과 대선사와의 교류

보적-의복선사에 귀의, 신회 마조와도 인연

〈화사족(花蛇足)〉왕유(王維, 701-761)는 어머니 최씨(崔氏)가 불심이 돈독하여 불교에 일찍이 귀의하여 참선을 열심히 수행한 재가불교의 거사(居士)였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王處廉)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다섯 형제의 맏이로 자랐기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고 효성이 지극한 효자였다.

어머니 최씨는 호북성의 호족(豪族) 출신으로 북종선의 7대조사인 대조(大照) 보적(普寂)선사에게 귀의하여 30년 동안이나 사사(師事)한 돈독한 보살의 표상이었다. 왕유가 마련한 망천별장에서 왕유의 나이가 50세가 넘을 때까지 왕유와 함께 살다가 죽었다.

《신당서(新唐書)》에 보면 어머니가 죽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자신이 살던 집(망천장)을 절(淸源寺)로 만들어 나라에 희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왕유 형제(아우 왕진은 대종 때 재상이 됨)가 독실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받들면서 비린 것을 먹지 않으며, 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다. … 아내가 죽자(왕유 나이 32세) 재혼하지 않고 외롭게 30년을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황제에게 글을 올려 망천별장을 절로 만드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청원하였으며, 그 절 서쪽에 장사를 지냈다.󰡓

《구당서》에는 구체적으로 그의 불교 신행생활과 불심 그리고 검박한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왕유 형제는 모두 불교를 신봉하였다. 평소에 채식을 하면서 비린 것을 먹지 않았다. 만년에는 줄곧 불도에 정진하면서 무늬가 있는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다.…

장안 도성에서는 매일 십여 명의 스님들에게 식사를 공양하고 깊은 뜻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서재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차를 볶거나 끓이는 솥, 약 만드는 절구, 경상(經床), 줄로 엮은 침상이 있을 뿐이었다. 조정에서 파하고 돌아오면 향을 피우고 홀로 앉아 참선과 독경을 일삼았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재혼하지 않고 30년을 홀로 외롭게 지내며 세속과의 인연을 끊었다.

임종 때에는 아우 왕진과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에게 작별의 글을 몇 통 썼다. 대부분 친구들이 부처님을 신봉하고 마음을 닦아 나가기를 간곡하게 권면하는 내용들이었다.󰡓

《전당시》에는 동생 왕진이 왕유에게 준 시 ‘수왕유병서(酬王維幷序)’가 있다.

“왕형은 천축서(불경)를 배우고 선리(禪理)에 정통하여 당대 시장(詩匠)으로 그 정신과 시 세계는 선지(禪旨)가 있다.”

왕유의 시집에는 사찰을 순례하고 고승 선사를 찾아서 그것을 소재로 읊은 시가 20수 정도 있다. 보적선사와 함께 북종선의 대선사였던 의복(義福)선사의 절(난야)를 찿아서 읊은 ‘과복선사난야(過福禪師蘭若)’가 있다.

어머니와 아우 왕진과 함께 당시 장안에서 선풍(禪風)을 일으켰던 신수대사의 수제자인 보적선사와 의복선사에게 귀의하여 불교 신행을 돈독히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사의 난(755년) 이후에는 남종선의 기수인 혜능대사의 수제자인 신회선사와의 교류가 있었고, 8대조사 마조 도일선사(709-788)와의 인연이 있었다.

마조대사에게 귀의하는 자신의 심경과 마조대사의 높은 덕을 읊은 ‘투마조도일사난야숙(投馬祖道一師蘭若宿)’이란 5언율시의 시가 있다.

“一公棲太白(일공서태백)

高頂出雲煙(고정출운연)

梵流諸壑遍(범유제학편)

花雨一峰偏(화우일봉편)…

向是雲霞裡(향시운하리)

今成枕席前(금성침석전)

豈惟留暫宿(기유유잠숙)

服事將窮年(복사장궁년)

(왕우승집전주 권11)

스님께서 태백산(태백산)에 머물자

높은 산마루 구름 위로 솟았네.

불법이야 모든 산에 두루하지만

꽃비는 이 봉우리만 내리네.…

지난날에는 아지랑이 속에서 헤매었는데

오늘은 스님의 베갯머리에 와 있네.

어찌 잠시 머물겠는가

여생(餘生)을 스승으로 모시고 받들리라.󰡓

호적(胡適)의 교사본(校寫本) 《신회화상유집(神會和尙遺集》에 보면 왕유와 신회대사의 대화에서 ‘중생의 심체(心體)가 본래 깨끗하기 때문에 다시 청정한 마음을 닦을 필요가 없다’는 남종선의 불성 본래 청정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왕시어(王侍御)가 화상(신회)에게 물었다.

“수도(修道)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중생은 본래 자신의 마음이 깨끗한데, 다시 마음을 일으켜 닦음이 있으면, 이것이 곧 망심(妄心)이므로, 해탈을 얻을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왕시어(왕유)가 놀라며 “지금까지 여러 큰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모두 이와 같이 말함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내용은 그 동안 북방선에 훈습(薰習)된 왕유가 신회대사의 남방선에 대한 법문을 듣고 놀란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전당문》327권에 나오는 ‘육조혜능선사비명’(육조 혜능대사의 전기로는 가장 오래된 기록임)을 왕유가 썼는데, 이것은 신회대사의 간청으로 당대의 최고 문장가인 왕유가 쓴 것이다.왕유는 중국 선종사에서 북종선과 남종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지식과 교류하였고,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대표적인 재가불자였다. 스스로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힐거사를 자처하여 자호를 ‘마힐(摩詰)’이라 한 중국의 유마거사였다.

이와 같은 왕유의 불교 신행 경력과 참선 수행이 그의 시 속에 녹아나서 불후의 선시를 많이 남겼으며, 시불(詩佛)이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왕유의 대표적인 선시 ‘과향적사’, ‘녹채’, ‘조명간’, ‘추야독조’를 다음 6회부터 감상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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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월의코스모스 2009-02-02 11: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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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가슴 아팠던 일 그 얼마였던가 라는 구절이 가슴에 푹푹 꽂힙니다. 불교를 만났으되 위안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어찌할 것인가.

보현행 2009-02-03 17:28:49
답변  
소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정해놓은 목적지가 고달프고 험난할 때 시간은 왜그리 길고 더디가는지 원망하고 한숨쉬며 보낸 세월를 어찌할꺼나,  홍안이  백발되는 건 순식간이라는데.....
인생의 무상함을 알게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게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심보살 2009-02-02 01:12:40
답변  
예전에는 선시가 심오하고 어려워서 범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인 줄 알았는데, 왕유의 선시를 보니 이해할 만해요. 앞으로도 난해한 선시보다는 쉬우면서도 무언가가 의미가 있는 시를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후륜구동 2009-02-06 19:06:44
답변  
가슴에 묘한 외로움이 파고드는 시 입니다. 귀의불로 승화시켜서 더욱 사무치는 그리움과 찬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격득수지.  옴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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