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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계시는 곳 묻지 말게<br>하늘땅이 누구의 몸인가

정찬주 | webmaster@mediabuddha.net | 2011-03-28 (월) 18:29

삼칠일기도 중에 백의관세음보살을 친견하다

법당에 보살 두 분이 불공을 올리고 있다. 촛불 조명이 은은한 불단 가운데에는 쌀이 담긴 소담스런 봉지가 놓여 있다. 나는 복전함에 늘 하던 액수대로 넣고 나온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복을 달라고 빌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를 불문으로 이끈 부처님께 용돈(?)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복전함을 이용하고 있다고나 할까. 무엇을 축원하고 빌지 않으므로 법당을 나서면 나는 금세 잊어버린다. 부모님 지갑에 용돈을 넣어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지갑에도 저승에 가시어 쓰시라고 일부러 신권으로 바꾸어 넣어드렸는데 지금도 그 일이 가끔 떠올라 나를 흐뭇하게 한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올리는 불공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기도가 됐건 그 파장은 다른 에너지로 바뀔 뿐 사라지지 않다고 믿는다. 질량불변의 법칙을 예로 들 것도 없다. 다만 불공에는 작은 불공, 큰 불공, 참 불공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작은 불공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비는 것이다. 그리고 큰 불공은 자기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웃, 혹은 뭇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성철스님은 그러한 불공을 참 불공이라고 하면서 절절하게 말씀하신 바 있다.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부모님입니다.

내 집 안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발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입니다.

날아다니는 생명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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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봉사 앞을 흐르는 강물.

뭇 생명을 위해 사랑과 헌신과 정성으로 기도하는 것이 참 불공이다. 영국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돌아와 뒤늦게 불교에 눈을 뜬 마하트마 간디가 기독교의 사랑은 접시의 물이이라면 불교의 자비는 바다와 같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무봉사에 머물던 경봉스님은 참선과 기도를 사람의 머리와 가슴으로 비유했다. 참선을 머리로 한다면 기도는 가슴으로 한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경봉스님은 선승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낙산사 홍련암으로 가 삼칠일기도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경봉스님의 기도체험을 스님의 일기 <삼소굴 일지>를 자료 삼아 글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줄여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경봉은 대오하고 나서 3년 만에 부산에서 양양 대포항을 오가는 배를 타고 낙산사 홍련암으로 가서 기도했다. 만행길에 들러 참배하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삼칠일기도로서 깨달음의 인연을 깊이 다지는 일환이었다.

경봉이 대포항에서 내려 홍련암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잔뜩 흐려 눈이라도 곧 내릴 것 같았다. 입춘이 지난 2월 말이었다. 홍련암 암주는 귀밑머리가 허연 응담(應潭)이었는데, 대오한 경봉의 소문은 이미 이곳까지 미쳐 정중하게 대접을 했다. 경봉은 다음날 바로 기도에 들어갔다. 1930년 3월 1일의 일이었다. 기도하는 첫날은 맑았으나 다음날은 비가 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눈발이 날렸다. 열흘째 되는 날에도 눈이 내렸다.

경봉은 선정에 들었다가 흰옷 입은 관세음보살이 바다 위를 걸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았다. 백의관세음보살이었다. 경봉은 법열을 가라앉히느라고 먹을 듬뿍 묻혀 ‘紅蓮庵’이라고 썼다. 눈발이 멎기를 기다렸다가 의상대로 올라가 소나무 한 그루도 심었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경봉은 삼칠일기도를 앞당겨 회향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포항에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조렸다.

여여한 묘한 도는 본래 깨끗하건만

모름지기 수행에 힘써야 크게 나타나리

10년 간 집안의 보배를 찾다가

이제야 겁 밖의 봄소식을 알았다네

가고 옴이 역력하여 다른 사람이 아니며

말할 때나 묵묵할 때나 분명한 주인일세

부처님 항상 계시는 곳 묻지 말게

큰 허공 하늘땅이 누구의 몸인가.

如如妙道本無塵 須得加行大現新

欲覓十年家裡寶 方知萬古怯外春

往來歷歷非他客 語黙明明是主人


참선 중에 마음부처가 방광하여 빛을 뿌리다

경봉스님은 전쟁 중이었지만 무봉사에서 통도사를 다녔다. 자운스님이 가사 75벌을 조성하고 회향한다 해서 참석하기도 했다. 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전쟁 중에 가사불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경봉스님은 통도사를 달려가 자운스님을 격려했다. 가사불사를 축하하러 온 선객 중에는 향곡스님도 있었다. 향곡스님은 경봉스님을 보자마자 다가와 인사했다.

“어째서 정상철가(頂上鐵枷)를 벗지 못합니까.”

정상철가란 중국의 선승 설봉과 운문의 선문답 중에 나온 말로써, 철가란 철가무공(鐵枷無孔)의 준말로 구멍이 뚫리지 않은 철로 된 칼을 말했다. 죄인은 구멍이 뚫린 칼을 쓰고 있는 법인데, 구멍이 뚫리지 않은 칼을 쓰고 있으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화두인 것이었다. 그러나 경봉스님은 가볍게 받아넘겼다.

“절을 하고 묻게나.”

“그것은 죽은 사자입니다. 어떤 것이 정상철가입니까.”

“눈이 열리지 못하였군. 손으로 잡아서 밀고 끌어 앞에 놔둘 테니 보게나.”

나중에는 오히려 경봉스님이 향곡스님에게 물었다.

“어째서 정상철가를 벗어버리지 못하는가.”

“땅을 파고 들어가도 피할 수 없습니다.”

“차나 한 잔 하시게. 석가여래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동서남북.”

경봉스님은 솔가지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여기에 조사의 뜻이 있는가, 없는가.”

결국 향곡스님은 대답을 못했다. 경봉스님보다 20년이나 나이가 어리고 저돌적인 향곡스님이지만 경봉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법거량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봉스님의 그런 인품에 감화된 향곡스님은 경봉스님을 가리켜 ‘통도사 스님 중에 자장율사 이래 가장 뛰어난 큰스님’이라고 평하고 다녔다.

무봉사에서 경봉스님은 한시도 참선과 기도를 놓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경봉스님 몸에서 빛이 날 때도 있었다. 점심공양을 한 후 좌선에 들었는데 갑자기 심신이 상쾌해졌다. 마음속에 해가 뜬 것 같았다. 이른바 마음부처(心佛)가 방광하여 빛을 뿌리고 있었다. 함께 일종정진(日終精進)하고 있던 밀양 신도의 눈에도 빛이 보였다. 신도가 밖으로 나가 소리쳤다.

“경봉 큰시님 보그래이. 빛이 난다.”

그러나 경봉스님은 모른 체했다. 신통을 과시하거나 그것으로 신도를 현혹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바른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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