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4 (화) 12:26
동화사는 493년 극달(極達) 화상이 유가사(瑜伽寺)로 창건한 것을 832년 심지(心地)대사가 중창했다는 팔공산의 대찰이다. 절 주위 오동나무꽃의 만발한 모습이 장관이어서 동화사라 했다고 전한다. 후삼국시대에는 견훤과 왕건의 격전지로도 유명하며, 파계사와 함께 법상종 사찰로 모두 견훤의 세력권이었다.
동화사 일주문 오른쪽 암벽에 북서쪽을 향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바로 사문(寺門)에 앉아 늘 절에 드나드는 대중과 함께 하면서, 그들에게 불법과의 인연을 깊게 해주는 부처라고 할 수 있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암벽의 높은 곳에 앉아 있다. 항마촉지인은 석가모니가 6년의 고행을 끝내고 중인도 부다가야의 강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하였을 때의 자세이다. 팔각형 대좌에 앉은 마애불은 오른발을 옷 밖으로 내밀어 대좌에 살짝 걸친 편안한 자세이다. 대좌 밑으로는 파도처럼 출렁이는 구름이 새겨져 있으니 석가모니상은 아닐 테고, 아마도 56억 7천만 년 뒤 석가모니처럼 성도할 도솔천의 미륵불이라 여겨진다. 얕은 돋을새김의 구름문양을 자세히 보니 팔공산 정상쪽으로 나는 듯하다. 두광과 신광에서는 불꽃문양이 화사하게 뻗어 빛너울을 이룬다.
이처럼 동화사 입구의 마애불좌상은 저부조이면서도 볼륨감을 잘 살리고 있어 신라후기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석굴암 조각 이후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유행한 경주불상의 도상적 특징을 잘 계승한 마애불이다. 약간 무덤덤한 상호의 표정이나 번잡스럽게 잔주름이 많은 법의, 그리고 장식적인 광배의 화염무늬와 연화대좌의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그러하다. 이 마애불은 북서향의 벼랑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맑은 날 오후 햇살이 잠시 드는 해거름 때라야 그 찬연한 형상미를 눈에 담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