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마애불이야기

이곳서 숙련된 조각가들이 석굴암 조성?

| | 2009-02-17 (화) 14:49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 사진=문화재청 제공.크게보기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 통일신라 8세기. 삼존불중 본존높이 2.7미터

사방불중 동쪽여래좌상 1.2미터. 보물 제200호.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지금의 통일전 뒤로 양지못(혹은 양피지)이라 불리는 서출지와 2기의 삼층석탑(8세기)이 배열된 양피사터를 지나 한 시간 가량 봉화골 깊은 송림을 따라 오르면, 큼직한 바위들과 산죽(山竹)과 노송이 어울린 색다른 공간이 열린다. 이곳이 칠불암(七佛庵)이다. 벼랑으로 선 바위의 삼존불과 그 앞의 네모난 돌 사면에 새긴 사방불을 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불암은 경주 남산의 동남쪽 계곡 봉화골 정상에 있고, 암봉(岩峯) 상단에는 신선사 마애불상군이 조성되어 있다. 칠불암은 삼릉계에서 용장사터를 거쳐 신선암을 보고 아슬한 암벽을 따라 내려와서 마주할 때 제격이다. 남산을 종주하면서 곳곳에 산재한 석불과 마애불을 눈에 담고 와야 신선암과 칠불암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선암과 칠불암에서는 신라 불교의 최전성기였던 8세기의 조각예술이 실현되어 있다.

크게보기

크게보기

칠불의 중심인 삼존불은 암면 전체를 다듬어 광배로 삼았으며, 입상의 좌우 보살상이 좌상의 본존을 협시하는 구성으로 최적의 공간배치를 보여준다. 동향한 삼존불의 주존은 석굴암 본존과 같은 복식과 자세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성도한 순간의 수인이다.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높고, 어깨와 가슴이 매우 풍만하고 당당하다. 눈이 약간 부은 듯한 얼굴에는 탄력이 넘친다. 그런데 불보살상의 깨진 코를 너무 높고 뾰족하게 보수하는 바람에 성형수술한 현대 미인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아미타본존보다 키가 작은 좌우의 협시보살입상은 좀더 고부조의 맛을 살려냈고, 자태 또한 육감적이다. 불교적 이상사회를 추구하려던 경주 귀족의 미의식이 잘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지극한 이상미는 8세기 중엽 석굴암에서 완성되었다.

크게보기

크게보기

크게보기

삼존불 앞의 사방불은 삼존불에 비하여 낮은 저부조이고 조각의 섬세함도 소홀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도톰한 얼굴의 중후한 표정에는 8세기 불상의 미감이 역력하다. 각 불상의 이름인 존명(尊名)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동면이 약합을 든 약사불좌상이고 서면이 구품인의 아미타불 좌상이다.

전체적으로 이곳 마애불상군은 탄력 넘치게 입체화된 중부조의 사실적 조각미를 뽐낸다. 특히 항마촉지인의 근엄한 본존좌상과 유연한 자세의 보살입상이 그러한데, 이 칠불암에서 숙련된 조각가들이 석굴암 공사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불상군 앞에는 석등의 연화대좌, 석탑재 등이 산재되어 있어 사세(寺勢)가 꽤 컸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서는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화려한 연화문이나 보상화문이 장식된 신라 전성기의 와당들이 출토되었다. 궁중의 귀인(貴人)들이 이곳을 기도처로 삼아 중병을 고쳤다는 내용을 담은 비석조각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비밀글

이름 패스워드

© 미디어붓다